의미와 태도
한국에서 가톨릭 교회의 반주자로, 지도자로 오랜 기간 지내오면서 최근에서야 이 "미사 반주를 잘한다"는 의미를 제대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1980년대 중반 꼬꼬마 시절부터 성당에서 반주를 하면서 " 너 반주 잘하는구나"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오르간을 전공하고 유학까지 다녀올 때까지도 " 반주를 참 잘하시네요"라는 칭찬을 들어왔다. 내가 오르간을 전공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사람들이 다들 꺼려하는 반주를 나한테 떠넘기려고 우쭈쭈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반주가 맡겨졌고, 내가 없으면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우리 동네에는 없었다.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이가 설마 없었겠나, 여러 가지 책임감과 실력을 저울질을 당하는 것 같은 그 자리에 있고 싶은 사람이 없었던 것이리라.
반주를 잘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악보를 잘 읽는다? 레가토를 잘 연결해서 친다? 너무 크거나 작지 않게 적당한 템포로 연주한다? 미사에 방해되지 않게 연주한다? 묵상곡을 다양하게 잘 친다? 빠지는 일 없이 내 개인 스케줄 희생을 기꺼이 잘한다? 성직자들과 베테랑(?) 신자들의 딴지를 묵묵하게 잘 참아 낸다? 아무 때나 맡겨도 별 마찰 감 없이 순순히 한다?
위의 의문들을 보면 성당에서 반주깨나 했다는 분들은 다 고개를 끄덕이고 계실 것 같다.
실제로 반주를 잘한다는 것은 연주와 충실도의 두 부분이 모두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를 의미한다.
미사 중에는 반주를 통해 신자들이 노래를 잘 부를 수 있게 정확한 연주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기똥차게 손가락을 잘 돌린다고 해서 2주일이 멀다 하게 땜빵 반주자를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반주자라는 말을 할 순 없을 것 같다.
물론 반주를 하다가 오르간이 좋아져서 미사나 예배에 제대로 된 오르간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지는 것은 너무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마 반주라는 규칙적이고도 복잡한 행위가 내 생활에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후에 일어날 일일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악기를 켜고 끌 줄 알아야 하고, 4 성부 화성이 붙은 성가를 올바르게 연주할 수 있어야 하고, 미사 중에 사람들이 노래 부르는 데에 방해되지 않고 아니 오히려 이끌어주는 모범이 되는 연주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먼저 생각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좋은 반주자, 잘하는 반주자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 말이다.
왜 우리는 오르간 음악이나 교회음악을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미사에 매일 참석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잘한다"는 말을 듣고 좋아하고 " 좀 그랬다"는 말을 듣고 얼굴이 뻘게질까?
내가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미사 반주는 개인적인 취미로 오르간을 연주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매주 혹은 일정 기간 꾸준하고 성실하게 미사에 참례할 수 있어야 하고 말 그대로 미사 안에서 음악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미사가 무엇인가?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의 제사이다.
이끌어 가는 사람이 제대로 그 자리에서 역할을 해 주어야 그것이 제사로서의 격을 갖추게 된다.
미사에 참례하는 사람들에게 내 연주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신부님 수녀님 신자들 눈치 보며 그분들에게 거슬리는 걸 피하는 것은 더더욱 아닌 자리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니 입장을 바꾸어서 내가 죽어 후손들에게 제사상을 받게 된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이것이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와 비교할 대상이 절대 못 되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음식 준비하기 싫어서 모여서 싸우면서 전을 부치고, 누구는 뒤에서 빈둥거리고, 마음속에 불평불만을 담은 채로 후손들이 밥상을 차려주면 그 상을 받는 나는 기쁠까?
그렇다면 마음에 불평불만을 갖고 반주에 임하면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미사에 참석해서 앉아있으면 하느님도 유쾌하진 않으시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성경 어딘가에서 들은 가락에 의하면 하느님은 제사도 번제물도 즐기지 않으신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고 분명히 적혀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미사 반주하다가 좀 틀리면 어떤가? 정성스럽게 연습하고 준비해서 생기는 실수가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반주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당장 가르치는 내 입장에서만 봐도 아빠미소가 지어진다.
그런데 쉽게 입 터는 사람들이 와서 -왜들 그러시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치면 안 된다느니, 미사에 분심이 들었다느니 하는 말들을 한다. 반주자들의 십중팔구는 그런 말을 듣고 밤잠을 설치다가 트라우마까지 생기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서 미사가 신자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다 분명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다. 내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그분께 드리는 내 작은 선물이다.
물론 함부로 말하지 않는 침묵의 신자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나도 화를 좀 눌러본다.
잘한다, 못한다는 말에 휘둘리지 말 것을 모두에게 부탁드린다.
잘한다고 잘난 척할 일도 못되거니와 못한다고 해서 위축될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휘둘리는 마음이 진정으로 타인의 탓이기만 한 것인지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기 스스로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레슨 하면서 만난 수많은 반주자들의 상당수가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쉽게 포기하거나 아니면 자기를 들들 볶는다. 오르간을 배우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거나 쉽게 포기하거나 둘 중에 하나인 경우가 참 많다. 이것은 비단 오르간 레슨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쉽게 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쉽게 얻어지는 것 -예를 들어 돈으로 살 수 있는 일-이 나에게 남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내가 고군분투하고 공들여서 힘들게 이룬 일만이 나에게 남는다.
오르간을 배우는 일이 결코 쉽진 않다. 자리표가 다른 음표 두줄 보는 것도 힘든데 발로 연주하려고 세줄을 보고 사지를 따로 움직이는 것이 어디 그리 쉽겠는가? 그렇지만 오르간을 연주하는 일이 불가능한 사람은 결코 없다고 난 단언할 수 있다. 심지어 좋아지기까지 한다.
스스로에게 쉽게 허용하거나 너무 완고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다음 편에서는 실제로 연주하는 부분에서 미사 반주를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많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