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바케로 굴러가는 회사

같은 규정, 다른 적용이 만든 불신

by 기록하는노동자

‘케바케’라는 말이 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뜻이다.


이 말이 우리 회사만큼 잘 어울리는 표현이 또 있을까 싶다.


우리 회사에서는 본사 팀장이 누구냐 공장장이 누구냐에 따라
아랫사람에게 적용되는 규정이 달라진다.
같은 취업규칙을 두고도 같은 인사규정을 두고도
현장의 체감은 전혀 다르다.

지시는 하나였지만, 적용은 제각각이었다

분명 공식적인 흐름은 존재한다.
CEO에서 관리담당임원으로

관리담당임원에서 인사부서 팀장으로
그리고 현장으로.


규정에 대한 지시는 이 라인을 타고 내려온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지시가 현장에 도착한 이후부터

각 본사 팀장과 각 공장장의 성향에 따라
적용 방식이 제각각 갈라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본사와 사업장 사이의 불신은 쌓였고
심리적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신뢰는 바닥을 보였다.

손익 책임이 내려오자 벌어진 일들

어느 순간부터 손익에 대한 책임이
각 공장장의 몫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 책임은 곧 공장장 평가의 기준이 된다고 했다.


그러자 현장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갑자기 유난스러워진 공장장들이
이미 정상적으로 신청하던 연장근로수당에 대해
“돌려가면서 올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혹은 고정OT 범위 안에서만 일하고
일이 남아 있어도 서둘러 퇴근하라고 했다.


접대비와 복리후생비를 줄였고 예정돼 있던 회식마저 취소됐다.
고쳐야 할 설비와 시설은 “내년으로 미루자”며 버텼다.

손익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본사 역시 눈치를 보며 회식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공장은 그냥 하던 대로였다.
어느 팀장은 아무 변화 없이 넘어갔다.

오히려 힘들 때 우산이 되는 유능한 리더로 평가된다.


압박받는 사업장에서 보기에는 본사는 변한 게 없어 보이고
사업장만 쥐어짜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본사와 사업장이 벌어지고 사업장과 사업장이 벌어졌다.

심지어 사업장 내 팀 간 사이도 벌어진다.


손실이 날 것 같으면
“그건 네 책임”이라며 미뤄버리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연차를 쓰라면서, 쓰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

또 다른 예가 있다.

본사 팀장과 공장장부터 솔선해서 연차를 쓰고
연차 소진율을 높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들 대부분은 25개의 연차를 보유하고 있다.

지시가 내려오자 압박은 현장에서 시작됐다.


A공장장은 다음 날 물량이 없다며 휴무를 권장한다.
그리고 카카오톡으로 내일 출근할 인력은 업무 내용을 보고하라고 한다.

B공장장은 비가 와서 물량이 줄어들면 당일 오후반차를 압박한다.

C공장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D팀장은 연차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다.

E팀장은 연차를 쓰라고 해놓고 전화로 수시로 업무를 물어본다.

연차 소진 방식도, 결과도 제각각이다.
팀장이나 공장장이 누구냐에 따라 연말에 받는 연차수당이 달라진다.


기가 막힌 장면도 있었다.
어떤 팀장이나 공장장은 연차를 써놓고 출근을 한다.
연차를 썼지만 일이 있어서 나왔다는 것이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연차는 노동자의 고유한 권리다.
회사의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다.

규정은 많은데, 원칙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회사에는 취업규칙이 있고 인사규정이 있고 근태규정이 있다.

전국에 흩어진 수많은 사업장과 수많은 본사 팀에
모든 규정을 완벽하게 획일 적용하기 어렵다는 현실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기본 원칙은 분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에서 정한 기준만큼은
사람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노동조합이 생기고 바뀐 것, 남은 것

노동조합이 생기고 1년여 만에 사업장의 연장근로수당과 연차수당에서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잡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어느 정도의 균형점은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공장별, 팀별 상황은 다르다.
그래서 불만은 개인 차원을 넘어 부서와 조직 간의 문제로 터져 나온다.

같은 규정, 다른 적용이 만든 불신

규정이 많다는 사실이 곧 공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규정이 많을수록 그 규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우리 회사에는 분명 규정이 있다.
문제는 규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규정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같은 규정을 두고도 어느 공장에서는 문제 되지 않던 일이
다른 공장에서는 지적의 대상이 된다.
어느 팀에서는 당연하던 관행이 다른 팀에서는 눈치가 된다.


이렇게 같은 규정이 다르게 적용되는 순간

조직은 하나의 기준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본사와 사업장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팀과 팀은 서로를 비교하며 불신을 키운다.


규정이 조직을 묶는 도구가 아니라
조직을 갈라놓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케바케’라는 말이 남긴 것

그래서 ‘케바케’라는 말은 유연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말이 반복될수록 노동자들은 기준이 없다는 사실을 학습하게 된다.
기준이 없다는 것은 언제든 불리하게 바뀔 수 있다는 뜻이고
그 불확실성은 곧 불신으로 이어진다.


노동조합이 이런 문제를 제기할 때 결과 하나하나를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누가 연차를 더 썼는지 누가 연장근로수당을 받았는지를 따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문제 삼는 것은 운영 방식과 기준 그 자체다.
어떤 원칙으로 규정이 적용되는지?

그 기준이 공유되고 있는지?
사람이 아니라 제도가 판단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상생은 “각자 알아서 잘하자”는 말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 말은 결국 힘 있는 사람의 재량에 기대자는 이야기로 끝난다.


상생은 함께 정한 원칙에서 시작된다.
그 원칙이 분명할 때 불만은 설명으로 바뀌고 의심은 대화로 옮겨갈 수 있다.


이 기록은 규정을 더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규정이 작동하는 방식을 다시 보자는 제안이다.

상생하고픈노동자들의노조록19.jpg 정해진 시간에 들고나는 밀물과 썰물처럼 함께 정한 원칙이 노사관계를 건강하게 할 것이다
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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