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약과 두레의 원칙은 익명 여론 위에 서지 않는다
블라인드에 우리 회사 이슈를 주제로 한 글들이 종종 올라온다.
노동조합을 향한 비판,
“노조가 뭘 해줬냐?”는 질문,
"가만히 있어도 적용되는데 왜 가입하냐?”는 말,
“노조 때문에 회사 분위기가 나빠졌다”는 주장.
솔직히 말하면 반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는 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왜 답하지 않는가?
논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팩트를 몰라서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현장을 가장 많이 겪은 사람은 노조위원장과 간부들이다.
교섭 테이블에 앉아 있었던 사람, 공문을 주고받았던 사람, 법적 쟁점을 검토했던 사람은
익명 게시글 작성자가 아니다.
우리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익명 공간에서의 논쟁은 사실이 아니라 감정이 승리한다는 걸 안다.
익명은 자유롭다.
하지만 책임이 없다.
카더라, 추측, 부분 정보, 전후 맥락이 제거된 문장.
그 공간에서 노동조합이 실명으로 대응하는 순간 논쟁은 구조가 아니라 감정싸움이 된다.
노동조합은 감정에 반응하는 조직이 아니라
기준으로 움직이는 조직이어야 한다.
블라인드 여론은 왜 신뢰의 기준이 될 수 없는가?
익명 게시판의 특징은 명확하다.
책임이 없다, 검증이 없다, 맥락이 없다, 반박이 불가능하다.
익명 글은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소비된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판단은 “그럴 수도 있다”가 아니라
“확인되었다”는 전제 위에서 내려진다.
노동조합은 루머가 아니라 기록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분노가 아니라 근거로 판단한다.
향약이 그랬다.
향약과 두레 그리고 노동조합
향약은 마을 공동체가 스스로 만든 약속이었다.
익명의 여론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실명으로 참여했고 규약을 만들었고 책임을 나누었다.
두레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 일했는지 누가 빠졌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공동체는 익명이 아니라 신뢰 위에서 굴러간다.
노동조합이 보험을 넘어 향약과 두레가 되겠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 있다.
노동조합은 익명 감정의 파도에 흔들리는 조직이 아니라
공동의 약속과 책임 위에 서는 조직이다.
“노조가 뭘 해줬냐?”는 질문에 대하여
노동조합은 무언가를 ‘해주는’ 조직이 아니다.
조건을 바꾸는 조직이다.
연장근로수당의 정상화, 연차 사용 구조의 개선, 평가 문제의 공식화, 복지 구조 협의.
이 변화는 누군가 이름을 걸고 나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결과는 조합원뿐 아니라 비조합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래서 착각이 생긴다.
“노조 없어도 되는 것 아니냐?”
하지만 이 질문은 구조를 무시한 질문이다.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그 기준 자체가 만들어졌을까?
무임승차 때문에 조합을 할 이유가 없다는 말
이 말은 감정적으로는 이해된다.
그러나 구조적으로는 틀렸다.
노동조합의 힘은 조합원만을 위한 혜택에서 나오지 않는다.
‘조건의 기준’을 바꾸는 힘에서 나온다.
기준이 바뀌면 그 기준은 전체에 적용된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에게만 혜택을 몰아준다면 그건 이익집단이지 노조가 아니다.
무임승차는 노동조합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적 필연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조합이 약해질수록
그 무임승차자는 가장 먼저 보호를 잃는다.
노동조합은 특혜를 만드는 조직이 아니라
최저선을 끌어올리는 조직이다.
“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한다”는 주장
이 주장은 늘 등장한다.
그러나 묻고 싶다.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회사는 다 망했는가?
대한민국의 대기업, 공기업, 글로벌 기업 대부분은 노동조합과 함께 존재한다.
망하는 회사의 원인은 경영 실패지 노동조합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비용이 아니라 균형장치다.
향약이 마을을 망하게 했던가?
두레가 농사를 망하게 했던가?
공동체의 규칙은 붕괴를 막는 장치다.
우리는 왜 흔들릴 이유가 없는가?
익명 게시판은 소리 큰 몇 명이 여론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기준은 총회, 의결, 규약, 교섭 기록에서 나온다.
책임 있는 의사결정 구조와 책임 없는 익명 글은 같은 무게가 아니다.
위원장과 간부는 팩트를 알고 있다.
그러나 굳이 익명 공간에서 감정적 언쟁을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지켜야 할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향약은 소문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두레는 댓글로 농사를 짓지 않았다.
여론에 흔들리는 조합원에게
블라인드 글을 보고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괜히 나서서 손해 보는 것 아닌가?”
“다들 저렇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익명은 감정이고 노동조합은 구조다.
익명은 순간이고 노동조합은 지속이다.
노동조합이 흔들리면 회사는 굳이 대화할 이유를 느끼지 않는다.
회사가 두려워하는 건 강경함이 아니라 단결이다.
비조합원이 줄어들수록 조합원이 한 목소리를 낼수록 대화는 구조가 된다.
우리는 블라인드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건 패배가 아니다.
선택이다.
우리는 익명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의 약속 위에 서 있다.
보험처럼 위기 때만 작동하는 조직이 아니라
향약처럼 상식을 지키고
두레처럼 함께 일터를 유지하는 조직이 되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댓글이 아니라 기준으로 말한다.
블라인드의 파도는 잠깐이다.
공동체의 약속은 길다.
그리고 우리는 길게 갈 조직이다.
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