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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진 EUGENIA Sep 26. 2022

<음악으로 세상 읽기 04> 펜트하우스 2와 콜로라투라

음악으로 드라마 읽기: Una Voce Poco Fa와 막장에 대한 단상

- 안토니오 로시니, 세빌리아의 이발사, 방금 들린 그대 음성 Una Voce Poco Fa


지금까지 <음악으로 세상 읽기>를 통하여 음악 장르와 가사, 음고, 음색, 음형 등의 음악적 요소를 통한 비유를 살펴보았다. 오늘은 특별히 이 음고, 음색, 음형 등의 음악적 요소들에 관해 더 알아보고 이들이 드라마의 서사 전개에 반영되는 펜트하우스에 대하여 적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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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그중에서도 2021년에 방영했던 펜트하우스 2이다. 극 중 라이벌 관계인 오윤희(유진 배우님)와 천서진(김소연 배우님). 목 상태가 좋지 않은 천서진은 립싱크 가수를 비밀리에 고용한다. 이때 오윤희는 천서진 몰래 립싱크 가수가 되고, 이를 알게 된 천서진은 수치스러움과 함께 분노한다. 다음의 영상을 보자. 20초를 기준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첫 번째는 천서진의 립싱크 장면이고, 두 번째는 립싱크 무대 이후 하이 에프 High F - 학문적인 표현으로 하면 F6 - 를 연습하여 무대에 올리는 천서진이다.


“펜트하우스 오윤희 천서진 High F 비교”


특별히 앞의 립싱크 장면이 천서진에게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자신의 역량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악가의 스타일에 따라 노래 선율의 꾸밈을 더하거나 뺄 수 있지만 자신이 노래하지 못하는 음역을 누군가 해낸다? 할 수 있는데 안꾸미는 것과 할 수 없어 꾸미지 못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천서진이 '못'꾸미는 음을 대역인 오윤희가 멋지게 꾸며내는 모습은 천서진"에게 모욕감을 줬어"가 되었을지도. 그래서 천서진은 연습을 통해 흔히 하이 에프라고 하는 어마 무시한 음높이, 즉 음고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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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천서진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콜로라투라이다. 소프라노는 음높이인 음고, 음의 성질인 음색, 음의 형태인 음형의 측면에서 어떤 스타일을 가지는가에 따라서 여러 가지 명칭이 붙는다. 다 같은 소프라노가 아니고 일정한 특성에 따라 콜로라투라, 리리코, 드라마티코 등으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오늘 소개할 방금 들린 그대 음성 Una Voce Poco Fa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에게 잘 어울리는 곡이다.


콜로라투라는 소프라노 중 가장 높은 음역을 가져 가볍고 화려하고 장식적이다. 여기서 가볍다는 것은 음색의 차이를 의미한다. 가볍다는 것의 예를 들기 위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노래하는 방금 들린 그대 음성과 이해를 돕기 위해 상대적으로 무겁고 풍부한 톤을 갖는 드라마틱 소프라노가 노래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 이기고 돌아오라 Ritorna Vincitor 를 함께 들어보자.


조수미 - 방금 들린 그대 음성 +) 30초부터 소프라노 선율 등장



오미선 - 이기고 돌아오라 +) 23초부터 소프라노 선율 등장


이 둘을 듣다 보면 무엇이 가벼운 음색인지 무거운 음색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으리라.


연주자가 자유롭게 음을 꾸며내는 카덴차가 있을 경우 콜로라투라를 중시하는 연주자는 음고의 측면에서는 높은 음들로 곡을 꾸며낼 것이다. 아주 음색의 측면에서는 가볍게, 음형의 측면에서는 멜리즈마적으로 꾸며낼 것이다.



잠깐, 음형, 멜리즈마 너무 어려운 용어라고 겁먹을 필요없다. 음형이란 일정한 음의 형태, 즉 패턴을 의미하는 것으로, 음이 움직이는 모양을 의미한다. 또한 멜리즈마는 다음적- 직관적인 표현으로 음이 많다-이라는 뜻으로, 기준이 되는, 본래 있는 한 가지 음에 여러 가지 음들을 장식적으로 붙이는 것이다. 멜리즈마 기법을 통하여 작곡가가 한 음을 적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음들을 덧붙일 수도 있다.이 장식들은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 다름 또한 연주자의 해석인 것. 아래는 소프라노 박혜상 님의 방금 들린 그대 음성이다. 앞의 소프라노 조수미 님과 어떤 음형에서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멜리즈마틱한 노래에 집중하여 자세히 들어보자.


(실력의 우위가 아닌 단순 스타일의 차이를 보기 위한 예시이니 오해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박혜상 - 방금 들린 그대 음성



일전의 들은 조수미의 방금 들린 음성과 박혜상의 방금 들린 음성은 같은 곡이지만 분명 다르게 흘러간다. 이 차이가 무엇일까?


조수미 님의 1분 37초 즈음과 박혜상 님의 2분 5초 즈음을 비교해 보자. 조수미 님은 초반에 la vincero 라 빈체로라는 가사를 1음절 당 1음으로 연주하지만 그 뒤의 음형부터는 아주 장식적으로 여러 음을 추가하여 연주하여, 대비를 통해 화려함을 극대화 시켰다. 박혜상 님은 la vincero 부분을 1음절당 2~3음으로 꾸며주는 음들을 더 넣어 주기는 하지만, 그 뒤에는 한 가지 음으로 끄는 부분이 꾸밈을 주는 음보다 상대적으로 길이가 더 길어지면서 서정적이고 정제된 느낌으로 단락을 마무리한다.*


이 두 명의 소프라노는 음의 형태 - 음형 - 를 장식하는 방법이 달랐다. 들으면 알겠지만 이처럼 같은 콜로라투라끼리도 어떻게 장식하느냐에 따라서 곡의 느낌이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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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콜로라투라처럼, 드러나는 극의 도약적 진행

지금까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를 통하여 음고, 음색, 음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장식적인 음형을 보면 어쩜 저리 높은음에서도 풍부한 음색과 도약 음정에서도 안정적이고 균일한 소리를 낼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막장 드라마의 경우도 그를 납득할 수 없다고들 하는 이유는 갑자기 이게 나온다고 등의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인데, 중간 과정 없이 빠르게 전환되는 도약 음정과 같은 전개를 가져서 이기도 하다. 특히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리즈는 빠르게 전환되고 지체 없는 전개로 큰 인기를 얻었다. 도약 음정이 더 어렵지만 화려한 것처럼, 펜트하우스의 빠르게 도약하는 이야기 전개는 누구나 생각해낼 수 없는 발산적 사고를 보여준다.


꾸준하고 오래도록 인기를 얻는 여러 극들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을까. 실은 그들은 소위 막장이라고 치부되기도 한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으로 뛰며 독자 혹은 시청자의 예상을 벗어나는 재미가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흥미를 끈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꾸밈음과 도약 음정 또한 그렇다. 청자의 예상을 벗어나는 화려한 음형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런 맥락에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노래와 펜트하우스 2의 화려함은 정말이지 어울리는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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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시작하여 흔히들 말하는 막장의 가치를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에 빗대어 되짚어보았다. 이번 이야기와 예시를 통하여 음고, 음색, 음형을 살펴보았으니 다음 <음악으로 세상 읽기 05>에서는 음고, 음색, 음형을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의 형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2의 한 장면을 통하여 글을 써보려 한다. 다음 글도 많은 기대 바란다.






* 박혜상 소프라노님은 2021년 불가리와 협업하여 연주 영상을 찍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장식적이면서도 서정성을 겸비한 소프라노님의 음색이 화려한 게슈탈트를 가졌지만, 붉은 빛깔의 원석으로 구성된 컬렉션과 너무 잘 어울려서 인간 불가리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SW5gTqWjD8

영상 너무 많이봐서 길가다 우연히 마주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님(영상 반주로 나오시는 피아니스트 분) 초면에 아는 사람처럼, "어, 안녕하세요?" 인사했다는 건 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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