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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진 EUGENIA Nov 07. 2022

음악학, 비주류의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쓰고 아무도 듣지 않을 노래를 불렀지


내 이야기도 누군가 들어주는 날이 올까 싶어서 남겨보는 나의 자전적인 음악 기록.



0-10.

난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모든 음악에 관한 것들을 좋아했다. 때문에 어머니가 보내주셨던 피아노 학원도 나쁘지 않았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좋아했고, 그를 넘어 사랑했다. 작은 소곡집을 다 깨우치는 게 나의 여덟 살 꿈이었고, 가장 원대한 소원이었다.



10-20.

어릴 때부터 나는 예민한 성정에 스스로를 좋아하는 타입보다는 도리어 자신을 혐오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닌 다른 열정을 쏟아부을 대상을 찾았던 것 같다.


나보다는 다른 것들을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가만히 앉아서 게임이나 공예를 하면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 모든 것을 돌이켜보건대 난 혼자 앉아 무언가를 완성시키는 일을 좋아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완성시키는 일은 꽤나 고되고 긴 여정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과정을 사랑했다. 하나하나 타건할 때마다 달라지는 음색을 연마하기 위해서 끝없는 노력을 해야 하는 그 과정이 즐거웠다.



20-26.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역설적이게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연습실에서 나의 소리만 들으며 노력하는 그 과정은 오랜 시간 날 괴롭게 했다. 무대에 설 때면 바들바들 떨리곤 하는 내 유약함이 너무 싫었다. 오래도록 그 감정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 나는 음악가가 되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연주의 길을 포기한 나에게 음악학이라는 새로운 길이 열렸고, 음악학을 전공한다는 것 - 음악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나가며, 음악분석, 음악미학 등 음악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에 대하여 배울 수 있다- 은 내게 음악을 듣는 많은 방법을 알려주었다. 음악에서 아이디어가 전개되는 방법, 음악에서 구조를 찾는 방법, 음악에서 비유가 쓰이는 방법, 음악에서 논리와 감성이 어우러질 때 느껴지는 그 카타르시스까지.



26.

그래도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길을 걷는다는 것은 외롭다. 언젠가 이전에 운영하던 매체에 음악학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시작에서조차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 그런 어정쩡한 마음이라면, 감히 전공을 결심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었다. 그 말에 대한 내 단호함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나 단언했던 내가 무심하게, 음악을 그만두지 못한 스스로를 얼마나 미워했던가. 결국 그 증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음악을 놓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밟게 된 석사 과정 역시 녹록지 않았다. 또다시 비슷한 물음표에 갇히고 말았다. 학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적당히 유순한 언어로 풀어가며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소수에게 읽히길 바랄 것인가, 그것의 이름이 교육자인가, 아니면 평론가 인가.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다. 결심한 대로 되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난 음악에 단단히 매여있고 읽히고 들려지길 원한다. 피아노를 그만둔 내게 음악은 그동안 어떤 말을 건네 왔을까. 어떤 방향이 나를 끌고 가든 처음 이 길을 택했을 때 결심한 것처럼, 백발이 희끗해지고 내 삶의 끝이 와도 나는 어떤 방향으로든 늘 음악과 함께 할 것이다. 이 열렬한 마음을 잃지 않고, 기꺼이 비주류를 위하여 배우고 추구하고 타협하면서.


오늘도 이렇게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쓰고 아무도 듣지 않을 노래를 불렀지만, 언젠가는 음악을 향한 내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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