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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알고리즘

같은 목적지 다른 동선

by 또 오늘

나는 늘 보통의 사람이고 싶었다.

중학교 때부터 가장 큰 목표가 남들처럼 사는 데에 있었지만 겉으론 늘 다른 꿈을 꾸는 것처럼 포장하곤 했다.

내 꿈은 너무 현실적이라 간혹 차갑게 보이기도 해서 포장을 해뒀던 것이다.


보통을 꿈꾸는 나는 노래는 멜론차트를 무한반복하고,

영화는 극장에서 가장 많이 상영하고 광고를 많이 본 영화로,

내 취향이라는 게 뭔지를 모르겠어서인지 난 알고리즘이 정해준 평범함과 보통이라는 답에 취해 더욱 그 틀에 쉽게 빠지고 깊이 빠져 살았던 것 같다.


집에서 회사를 출퇴근할 때면 늘 걷는 골목길, 늘 타는 버스, 늘 내리는 정류장이었고

같은 목적지를 가는데 다른 동선을 이용해 보겠다는 생각조차 안 했었다.


알고리즘을 떠나보내기로 하고선 생각해 보니 내가 매일 걷는 길도 나의 알고리즘인 것 같았다.

난 정말 모든 걸 틀에 박혀 살았구나.

하다못해 지하철 칸, 화장실 칸도 늘 가는 곳으로 가는 정말 틀 그 자체의 사람.

그 틀에서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문뜩 이렇게만 살아도 되나 라는 생각도 하곤 했었던 사람.

알고리즘을 벗어나기로 한 뒤론, 같은 목적지를 다른 동선으로 가봤다.


최단 거리로 가는 버스가 아니라 15분 정도 돌아가는 버스가 있길래 타보았더니 그 길에 단풍이 가득해 창밖으로 단풍을 볼 수 있었고, 또 어느 날은 지하통로가 아닌 지상으로 횡단보도를 2~3개를 건너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더니 내가 좋아하는 김밥체인점이 오픈해 있었단 것도 알게 되었다.


김밥을 포장해서 집 가는 길엔 아이에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밥을 맛 보여줄 수 있단 생각에 신나서 발걸음이 빨라지기도 했다.


내 행선지는 여전히 집, 회사뿐인 지루한 목적지일지라도 동선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나와 내 주변환경에 대해 새로이 깨닫는 것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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