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아마도 영영 지워지지 않을 장면이 하나 있다. 작은 빌라 원룸에 살던 시절의 어느 금요일 밤. 주말 밤의 자유를 만끽하며 TV를 보고 있는데 TV 소리를 뚫고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분명 건물 안에서 난, 그저 금요일 밤의 열기에 취해 기분 좋게 내질렀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종류의 비명이.
평화롭던 방안에 급속도로 불안과 공포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현관문 걸쇠를 잠근 채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위층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혹시... 비명 지르신 거 그쪽인가요?” “아뇨. 저도 소리 듣고 나왔어요.” 목소리에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자, 잠옷 바람으로 나온 여자가 보였다. 한 건물에 살고 있었지만 인사 한 번 나눈 적 없는 이웃과 그렇게 이상한 첫 대면을 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또 한 여자가 나타났다. 그는 비명 소리를 듣자마자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했다. “예전에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뒤에서 따라오던 남자가 저를 집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가 생각나서 바로 신고했어요.”라는 말과 함께.
누군지도 모를 이의 비명이 언젠가의 나여서, 언젠가의 나일 것이기에 두려움에 떨면서도 결국 집 밖으로 나온 세 여자. 우리는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같은 건물에 살던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와 함께 한 집 한 집 문을 두드리며 탐문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혹시 안에 다른 사람 있어요?”
“아뇨. 저 혼잔데요.”
“잠깐 확인해도 될까요? 여자 비명 소리가 들려서. 혹시 들으셨어요?”
“아, 듣긴 했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이 남자일 때마다 물었고, 비슷한 대화가 세 번쯤 반복됐다. 그 사이 경찰이 도착해서 비명을 지른 여자와, 함께 있던 남자의 집을 찾아냈지만 몇 가지 질문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떠나버렸다. ‘단순한 커플 간 싸움’이라고 여겼을까.
허무하고도 찜찜하게 막을 내린 금요일 밤의 소동. 그러나 그 밤이 남긴 잔상은 길었다. 공포감으로 긴장하면서도 기어이 밖으로 나온 세 여자와, 똑같이 비명소리를 들었지만 내다볼 생각조차 않은 남자들. 그날 귀찮음이 묻어난 무감각한 얼굴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들려도 들리지 않는구나’
도심의 밤에 으레 들리는 고성방가, TV 속에 흐르는 주인공들의 대화,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과 별다를 바가 없구나. 누군가 절실하게 외치는 구조 신호일지도 모르는 그 소리가. 그 악의 없는 간극이 참 단단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벌써 몇 년전의 일이다. 그 사이 여성 대상의 수많은 범죄들이 폭로되면서 수면 위로 끌어올려지기 시작했다. 많은 여성들이 힘을 모아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싸우며 기어이 폭력의 가해자들을 광장에 세웠다. 그 수많은 사건들을 지켜보고, 작은 손이라도 보태어 보려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고무적이었다. 앞서 싸우는 이들이 있어 송구했고 함께 분노하고 움직이는 이들이 있어 안심됐다. 그 밤처럼.
리베카 솔닛은 저서 <멀고도 가까운>에서 “무감각이 자아의 경계를 수축시키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그 경계를 확장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내 일처럼 나서 싸울 줄 아는, 확장된 자아들의 연대는 눈부시게 멋지다.
그러나 동시에 상황은 무한한 굴레에 갇힌 듯 반복됐다. 쉬쉬 되던 사건을 애써 끄집어 올려놓으면 세상은 잠깐 들끓을 뿐,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식어갔다. 정치권력을 이용해 성 접대를 받은 정치인은 무혐의를 받았고, 도박과 성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은 군대에 갔고, 수백 개의 불법 영상을 찍은 이는 초범이라는 이유로 실형을 피했으며, 아동 성착취 영상 사이트를 운영한 자는 겨우 1년 6개월이라는 형량을 받았다.
때려도 괜찮다. 불법 영상을 촬영해도 별 일 없다. 강간해봐야 큰 처벌 안 받는다.
법과 사회가 그렇게 메시지를 주는 사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연령은 점점 더 어려지고, 마침내 이전과는 다른 디지털 환경 속에서 상상조차 힘든 끔찍한 방식의 성폭력을 생성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모든 일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일상에 작은 균열조차 내지 못한다.
이 모두가 여전히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너를 보며, 흥미로운 가십거리를 듣는 듯 눈을 반짝이는 너를 보며, 무감하게 채널을 돌리며 평가의 말을 얹는 너를 보며, 살려달라는 절규를 소음처럼 여기며 문을 닫아 버리는 너를 보며, 너희를 보며.
요원하고도 불온한 꿈을 품게 된다.
다음 세대의 여자들은 부디 너처럼 살았으면, 하는 꿈을.
불안과 공포, 모멸과 위축의 감정 따위에 이입할 필요 없이 자라길. 고통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싸우는 그 마음을 이해조차 하지 못했으면.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살다가 가끔 시혜적으로 안타까움이나 표하면 족한 삶이었으면. 차라리 그렇게 무감각한 채로 쪼그라든 자아에 갇혀 살면 뭐 어떠냐고.자꾸만 그런 마음이 돋아난다.
그런 날이 온다면, ‘요즘 것들은 세상 잘 만나 자기밖에 모른다’라고 욕을 퍼부으면서도 내심 안심할지도 모른다. 긴장감 없이 밤거리를 누비고 불안함 없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다행이다 여기게 될 것이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끔찍한 지옥도를 생각하면 너무나 아득하고 슬픈 꿈, 그렇기에 외면하고 싶어도 깨어나 끝내 지켜봐야 할 현실이다.
텔레그램 N번방 가해자들이 모두 엄벌에 처해지고 피해자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끝까지 관심 갖고 연대해주세요.
write 박의나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글 노동자. 나이문화와 나이듦을 화두로 한 독립잡지 <나이이즘>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