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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이 필요한 순간

by 으뉴 Feb 25. 2025




교정

: 틀어지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





중학교 때 나는 교정을 했다. 돌출형 입과 삐뚤빼뚤한 치열은 갈수록 심해져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는지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교정 전문 치과로 향했다. 이는 가지런해졌지만 그 사이로 여전히 어긋난 말이 새어 나왔다. 




학창 시절은 보통 외부에서 오는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취향을 스스로 찾아보기보다는 친구에게서 건너온 취향이 많았다. 즐겨 듣던 노래든 자주 가는 공간이든 좋아하는 옷이든, 영향을 받지 않는 게 없었다. 




시대별로 다르겠지만 국민적인 유행이 하나쯤은 있다. 그 당시에 음악으로는 빅뱅과 소녀시대, 원더걸스, 2NE1 같은 아이돌이 인기였으며, 패션으로는 '카파'와 '험멜'이라는 스포츠 브랜드가 유행이었다. 음악은 듣고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만, 옷은 학생치고 큰 비용이 들어가는 물건이기에 해당 브랜드를 입고 있는 친구들은 항상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내 자리는 항상 부러워하는 쪽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어울리던 친구들 중에선 그런 옷을 가지고 있는 이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위로가 되었고 막연하게나마 각 집안의 사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자랑스럽게 브랜드 옷을 입고 다니는 애들을 보면, '저건 저들의 세상이야.',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야.' 같은 말들로 아쉬움을 떨쳐냈다.




감정의 동요가 크게 온 건 친한 친구가 카파 바지에 험멜 바람막이를 입고 학교에 온 날이었다. 함께 부러워하던 눈빛을 하던 친구는 어느새 우뚝 솟아 부러움을 받는 얼굴로 변해 있었다. 나를 포함해 주변 친구들의 요청으로 한 번씩 바람막이를 돌려 입었다. 보기만 할 때와는 달리 커다란 벅참이 느껴졌다. 나름대로 존재하던 균형이 무너지자 다른 친구들도 하나둘 카파와 험멜 브랜드의 옷을 입고 등교를 했다. 내가 속한 무리에서도 속하지 못한다는 고립감과 결핍이 고조에 달했다.




결국 나는 옷을 사달라고 어머니께 떼를 쓰기 시작했다. 부족한 형편에도 아들의 미래를 위해 교정 비용을 힘들게 치렀을 어머니에게 떼를 썼다. 나만 그 옷이 없다면서. 덧니와 부정교합이 있어도 교정도 못하고 있는 친구들은 생각도 못하고 억지를 부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은 너무 좁았다.




어머니는 완곡하게 안된다고 말하셨다. 나는 옷 하나 못 사주냐면서 다른 부모님과 비교를 하는 발언까지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어머니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없는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어리고 어리석은 나는 그런 걸 잘 몰라서 어머니와 나는 며칠을 냉전 상태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오시는 어머니의 손에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평소처럼 그냥 저녁거리를 사 오셨겠지 하고는 인사도 하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냉전 중이어서 서운함을 가득 담은 행동은 필수라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있는데 잠시 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었다. 그 앞으로 봉지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는 어머니가 보였다. 이내 꺼낸 물건을 확인한 나는 놀라움에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건 바로 '카파' 바지였다. 어머니가 바지를 내게 건네주며 한 말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는 분한테 받은 건데, 새 옷이 아니라서 미안해." 그때의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 울었는지 웃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정도의 나이엔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보다 내일 자랑스레 입고 갈 모습이 먼저이니까. 다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울컥한 감정이 밀려온다. 




생활감이 묻은 바지였음에도 나는 등교할 때나 놀러 갈 때나 열심히 입고 다녔다. 그 바지는 아직도 옷장 깊숙한 곳에 있다. 입지 않지만 잊지 않는 물건으로 남아있다. 그런 물건들이 집에는 꽤 있다. 쓰지 못해도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이.




어머니는 아들과의 관계를 교정하려 했다. 아들은 뒤늦게 그런 시간들을 교정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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