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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킴 Oct 18. 2019

결혼율이 떨어지는 이유

우리나라는 현재 합계출산율이 2018년 말 기준 0.98이며, 올해 말에는 더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추계된다. 연간 출생자 수도 30만 명 이하 수준을 올해 최초로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전년 동기 대비 출산율이 급락하고 있어 속도는 좀 더 가팔라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행지표인 결혼율은 더 빨리 떨어지고 있다. 즉, 유배우자 출산율은 OECD 국가와 큰 차이가 없겠으나, 미혼자의 증가 및 결혼 연기 현상은 출산율 급감의 주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가설을 하나 세워보자.

 '경제적인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결혼과 출산이 늘어난다.'

우리나라는 GDP 세계 11위, 1인당 GDP는 27위라 물질적으로 풍족한데도 왜 행복지수는 58위일까?


어린이 및 초중등학교 학생의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이며, 청소년 자살률과 노인 자살률도 심각한 수준이다.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위는 공무원이고, 2위는 건물주, 3위는 유튜버라고 최근 들었다. 도전적인 부분은 찾을 수 없고, 그저 안정적인 직장을 갖거나, 적은 근무시간으로 자기 여가시간을 많이 확보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혼율도 갈수록 높아지고, 직장 조직 내 경쟁은 날로 심해져 인간관계가 삭막해지는 경향이 있다. 뭔지 몰라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빠르게 경제성장을 한 나라는 없을 정도로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국가적으로 치안도 좋고 인프라 및 시스템도 잘 되어 있어 외적 조건이 좋은데도 왜 다들 개인적으로는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소득 수준과 행복 간에는 여전히 큰 Gap(격차)이 존재하고 있다.


스웨덴이나 핀란드는 1인당 GNP가 높기도 하지만, 행복지수는 더 높은 상위권이다. 왜 소득 수준 순위보다 개인이 느끼는 행복지수가 더 높게 나올까?


행복지수가 높은 국민들은 두 가지 면에서 행복하다고 인터뷰를 하는 듯하다.


 첫째는 복지국가로써 내가 내는 과중한 세금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며, 내 이웃을 위한 기부금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조세저항이나 연금 보험료 저항이 없다. 세율이 높다 하더라도 기꺼이 내는 분위기이다.


둘째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모멸감이 다. 내 이웃이 잘 나가거나 부자가 되면 진심으로 축하할 뿐, 배 아파하지를 않는다. 그리고 사교육에 대한 과잉 비용 낭비도 없다. 부유한 동네에 살기 위해서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교육 여건이 좋은 곳에 살기 위해 비싼 전세를 들여 굳이 이동하지 않는다.


오늘 들은 라디오에서 DJ가 한 말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행복은 돈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이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 부부관계, 사제관계, 남녀관계, 노인과 손자/손녀의 관계 등의 인간관계에서 인정받고 서로 간에 신뢰가 커지는 게 진정한 행복이다.

 월급 인상이나 보너스는 일시적으로 기분 좋을 수 있으나, 잔잔하고 지속 가능한 행복의 결정 요소는 아닌 듯싶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이 행복하다고 느껴지면 결혼할 생각도 하고, 아이 낳을 생각을 할까?

 원칙적으로 그렇다고 믿고 싶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의 출산율도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출산은 물론 가족의 행복을 높여주는 상호 시너지 효과가 있음은 실제로 자명하다.


 결국 젊은이가 행복하게 느껴지도록 불안정한 현실, 불확실한 미래의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여야 한다. 즉 희미한 안개를 걷어 화창한 앞길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이민 나가는 사람도 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년의 일자리의 질과 안정성, 주거의 안락함, 아이 돌봄 서비스 등이 체계적으로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여성이 사회 진출 후 육아나 가사노동에 비용을 덜어주고 시간을 절감해준다면 아이 낳는 것을 주저하게 될 것이다.

 남성도 육아와 가사노동에 책임이 있음을 인지하는 분위기로 점차 전환되고 있다. 그래서 남성 육아휴직의 비율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맞벌이 세대에 아빠 육아와 가사노동 분담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성평등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모든 세대가 젊은 시절 어렵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지금은 헬조선, N포 세대 등의 자극적인 단어가 부각되어 있는 상황이지만, 그 단어 앞에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봤다. 불행하고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일자리, 주거지, 아이의 미래가 행복하고 투명하고 확실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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