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과 편견,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
#모비딕 #허먼멜빌
현실 도피로 포경선 피쿼드 호를 타게 된 화자 이슈메일, 그가 만난 고래사냥 이야기. 선장 에이해브가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향유고래 모비딕에 대한 복수심으로 떠난 여정을 그린다. 광기로 똘똘 뭉친 복수와 집념이 어떻게 인간을 파국에 이르게 하는지 알게 한다.
줄거리
청년 이슈메일은 생활고와 현실 도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포경선을 타기로 결정한다. 포경업의 발상지인 낸터컷으로 가는 길, 우연히 작살잡이 퀴퀘그를 만나 함께 포경선을 타게 된다. 선장 에이해브는 모비 딕을 잡겠다는 복수심으로 피쿼드 호와 선원들을 이끌고 전 세계를 돌아 태평양까지 항해한다. 마침내, 모비 딕과 조우하지만 에이해브 선장은 모비 딕을 향해 내리 꽂은 밧줄에 오히려 제 몸이 감긴 채 모비 딕과 함께 깊은 바다로 사라진다. 선원을 싣고 있던 보트와 피쿼드 호 역시 모비 딕의 공격으로 침몰당한다.
#사유의시선
1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한 단상
화자 이슈메일은 어느 숙소에서 전신에 문신을 새긴 식인종 퀴퀘그와 한 방을 쓰게 된 두려움으로 식은땀을 흘린다. 퀴퀘그가 백인 문명을 동경해 폴리네시아에서 온 왕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함께 포경선을 타면서 둘도 없는 절친이 된다. 이로 인해 이슈메일은 퀴퀘그를 통해-포경선 항해 중 만난 다민족 선원들을 포함하여 - 백인 우월주의 기독교적 편견으로 가득 찬 모습에서 인종과 종교의 편견 없는 사람으로 변모해간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거나 싫어하고, 두려워한 적은 없었나. 피부색, 언어, 생김새, 장애,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 '다름'에 대하여 나는 어떤 편견과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시금 돌아 보게 된다.
2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선장 에이해브의 리더십에 대해 생각한다. 오로지 모비 딕에 대한 복수심 하나만으로 피쿼드 호와 선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에이해브의 행동에 한탄했다. 어린 아들과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한 집안의 가장에 대한 리더십도 생각하면서.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많은 이들을 희생시키는 것, 그런 리더를 가진 구성원들에게는 확실히 재앙이다. 나는 가정에서, 회사에서 과연 어떤 리더인지. 어떤 리더가 될 수 있을지.
반면, 에이해브의 시선에서 이 책이 쓰였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관찰자 이슈메일의 입장에서 그 만의 사고의 틀을 가지고 쓰인 책이니까. 허먼 멜빌이 만일 에이해브의 입장,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썼다면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3 정의는 무엇인가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일찍이 에이해브 선장의 복수심을 알고 치를 떨었다. 그의 사심이 결국 피쿼드 호에 파멸을 가져올 거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의 판단은 옳았다. 스타벅은 에이해브를 멈추게 할 순간과 기회를 마주할 때마다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지만, 끝끝내 차마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만일, 그때 - 스타벅이 에이해브를 죽일 수 있는 기회 - 에이해브를 살해했다면 어땠을까. 하나가 죽고 남은 모두가 살았다면. 그는 악의 구렁텅이에서 모두를 구해냈을 터였다. 하지만, 에이해브의 속셈을 알지 못한 선원들은 그를 살인자로 낙인찍고, 남은 평생을 살인자로 멸시와 경멸을 받으며 살아야 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모두를 위해 하나쯤은 희생되어도 되는 걸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그의 복수심을 멈추게 하고 모두가 평화로워질 방법. 뉴스에서 종종 그런 유의 사건을 보곤 한다. 엄마를 평생 때리고 학대한 아빠를 죽인 자녀, 의붓 아빠에게 수십년간 성폭력을 당해오다 살인을 저지른 딸. 그런 기사에 수도 없이 달리는 댓글 속에는 그렇다고 가족을 죽이다니. 벌받아 싸다. 등의 말들이 오간다. 정의는 무엇인가.
4 모비 딕이 상징하는 건 무엇인가
한국어로 번역된 최초의 책 제목은 원래 '백경'이었다. 흰고래. 하얀색은 신성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비 딕은 '신성'에 도전하는 무모한 '인간'의 최후를 상징하는 걸른지도.
집채만 한 크기의 모비 딕은 거대한 무엇이다. 감히 인간의 몸으로 사냥할 수 없는 거대한 힘과 권력을 가진 바다의 제왕이다. 도무지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에 끝끝내 몸을 던지는 에이해브를 보면 정말이지 대자연 앞에 선 힘 없는고 무능한 우리 인간을 보는 것만 같다. 거대한 모비 딕은 인간이 감히 넘을 수 없고, 예측조차 불가능한 '인생'이란 의미가 아니었을까.
모비 딕, 후일담
지긋지긋하고 지겹고 고독했던 모비 딕 시간이 드디어 끝났다. 책을 읽으며 저자를 향해 나는 꽤 여러 번 구시렁거렸다. 이렇게까지 장황하고, 이렇게까지 비문이 많고, 이렇게까지 어렵게 쓸 일인가.라고.
그러나 대단한 책들은 늘 그렇듯 다 읽고 나면 - 아니, 거의 3/4지점을 지나게 될 즈음인 것 같다. 어떤 책은 그전이기도 했지만.- 깨닫게 된다. 도대체 왜 이 책이 고전일 수밖에 없는지. 왜 인생에 한 번쯤은 읽어야 하는지. 완전히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청년, 중년, 노년기에 한 번씩 읽으라고 조언했다. 나는 18살 읽다가 포기했다. 중년에 읽었으니 이제 노년에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삶의 지혜로 밝아 있기를, 그리하여 지금보다 훨씬 넓고 깊게 이 책을 음미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모비 딕 잡학사전
1 읽기 전에
구약과 신약, 신화, 그리고 포경업에 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흥미롭게 즐기기 쉽다. 각주를 참고해도 나쁘진 않으나, 미국의 건국과 노예 사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다면 비교적 편하게 읽힌다. 간간이 연극 극본 형태로 보이는 대화, 방백, 독백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런 유의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몰입이 어려울 수 있겠다.
2 이 작품에 관한 전문가들의 주된 평가
20세기 들어서야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은 소설
영어 3대 비극 문학으로 극찬 받음. (셰익스피어 <리어 왕>,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허먼 멜빌 <모비 딕>)
상징과 암시로 가득한 경이로운 소설
고래 백과사전을 방불케하는 생물학적, 해부학적 설명과 포경산업에 관한 방대한 지식이 돋보이는 작품.
실화 사건이었다.
1820년 포경선 Essex 에식스(길이 27미터, 배수량 238톤)호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거대한 알비노 향유고래에게 공격당해 침몰한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다.
<포경선 에식스 호의 난파기> 에식스 호의 생존자 오웬 체이스가 쓴 책에 영감을 받아, 작가는 집필을 시작했다고.
첫 문장 "Call me Ishmael."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에드가 엘런 포우 단편소설 <윌리엄 윌슨>의 "나를 윌리엄 윌슨이라고 해두자."에서 영향을 받았다.
신분 집단이 중요했던 당시 사회에서 '나'란 존재가 중요해지던 시점을 방증하고 있다고.
모비 딕 출간 당시의 굴욕
1851년 출간되었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나다니엘 호손 외에는 혹평을 받았다.
소설이지만 해양학 서고에 분류되었다.
책이 2000부가 채 팔리지 않았다.
허먼 멜빌이 절필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작품 쓴 지 10년 만에 절필하고 세관원으로 살다가 사망했다.
사후 30년 1920년부터 재조명되면서, 에드가 알런 포우, 나다니엘 호손과 함께 19세기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스타벅스> 커피는 <모비 딕>에서 따 온 이름이다
모비 딕의 일등항해서 스타벅의 이름을 딴 것.
스타벅스 창립자들이 소설 속 인물 '스타벅'에 주목했고, 창립자가 3인이어서 복수형인 's'를 붙여 '스타벅스'가 된 것이라고.
스타벅스의 로고에 있는 반인반어의 요정 '세이렌'역시 모비 딕에서 영감을 얻은 것.
바닷속에서 유혹하듯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미소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모비딕 내용 중에서
배를 타고 지나가는 선원들을 노래로 유혹해 배를 난파시켜 목숨을 잃게 하거나 선원들이 스스로 물에 뛰어들게 만든다.는 신화를 통해 커피의 바다로 빠져들게 하겠다는 스타벅스 창립자들의 소망을 담은 것이 아닐는지.
상징의 미학 <모비 딕>
피쿼드 호
백인들에게 궤멸된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이름
30인의 선원을 태운 포경선으로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전 세계의 인종이 다 모여드는 미국을 상징.
소설 속에서 모비 딕에 의해 처참히 침몰한다.
이슈메일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버려진 아들 '이스마엘'의 영어식 이름으로 추방자를 의미한다.
아버지의 땅에서 사막으로 추방된 이스마엘, 사막은 육지의 바다를 의미한다.
소설에서는 머물 곳을 찾지 못하고 육지에서 추방당해 바다에서 길을 찾는 화자 이슈메일의 입장을 대변한다.
에이해브
성서에 그려진 폭군 '아합'의 영어식 이름
모비 딕에 대한 불타는 복수심을 가진 폭군 선장으로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