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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부하는 아빠 Feb 09. 2023

27. 월드컵과 아내와 아들


난 운동을 싫어한다. 축구는 더더욱. 나는 축구에 대한 좋은 기억이 전무하다. 초등학교 때는 좁은 운동장 때문에 선배들한테 공차다 쫓겨났었다. 솔직히 공을 가지고 논적이 별로 없어서 쫓겨 난 적이 많지는 않다. 


중고등학교 때는 모래 운동장에서 넘어져 까지는 게 싫었고, 군대에서는 축구가 아니라 격투기였다. 왜 나를 향해 인상을 쓰고 콧바람을 훅훅 불어대며 성난 황소처럼 돌진해 오는지. 친하지도 않은데 어깨빵만 심하게 하고 가는 고참들. 그런 남자들 노땡큐다. PX에서 만두나 사줄 것이지, 하여튼 나는 축구를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한국 사람이라면 2002년 월드컵 때 다들 이야기 한 보따리 풀 추억은 많을 거다. 나한테는 월드컵은 축구라기보다는 축제였을 뿐이다. 축구를 보자는 핑계로 미팅을 하러 다녔었다. 하물며 축구의 성지 영국에 있었을 때도 축구선수 이름 한 명 안 외우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난 카타르 월드컵이 열리는지도 지난주에야 알았다. 손흥민 뉴스가 왜 그리 많이 나왔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아빠가 이러니 뭐, 아들들도 축구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재밌는 게임이 많은데, 덩치 큰 남자들이 씩씩 거리며 공하나를 쫓아 이리저리 뛰 다니는 걸 보고 싶겠는가? 


그래도 아이들에게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알려줘야 할 것 같아 아내가 큰아들한테 갔다. 친한 척을 하며 뚱한 아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다. 그리고 이번주 월드컵 열리는지 아냐고 물어본다. 아내도 그날에야 월드컵이 있는 줄 알았지만, 그래도 아들하고 말 한마디 하려고 화재거리를 찾았다. 


아내의 말에 아들은 시큰둥하다. 아내도 몇 마디 하다 나왔다. 엄마라고 축구에 관심이 있었겠는가. 아들에게 관심이 있어서 아들 앞에서 열심히 드리블했는데, 골은 들어가지 않았다. 아들도 페이크라는 거 아는 듯하다. 


로스타임도 안 되는 짧은 대화를 끝으로 아내와 아들은 각자의 침대에, 같은 포즈로 앉아서 핸드폰을 본다. 아들은 웃으면서, 아내는 한숨 쉬면서...


주말에 치킨 한 마리 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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