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소설『그해 겨울』
‘유목민’ 또는 ‘유랑자’를 뜻하는 ‘노마드(nomad)’라는 말에 ‘이즘(ism)’을 붙여 ‘노마디즘(nomadism)’이 되면 이것은 보다 적극적이어서 사전에서는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철학적 개념’이라고 풀이한다. 사실 우리들 인간의 역사는 지난 6000년래에 겨우 자리 잡은 정착민의 역사라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장구한 600만년에 걸친 노마드의 역사에 가깝다. 인간이 오랜 수렵․채취 생활에서 벗어나 정착의 역사를 살아가기 시작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농경․목축으로의 생산수단의 변화와 깊은 관련을 맺는 것이지만, 그와는 별도로 우리들 인간은 본질적으로 ‘유목민’ 또는 ‘유랑자’일 수밖에 없다.
폴 고갱의 유명한 그림으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다.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이 세 가지 질문 앞에 우리들 인간은 아직까지 단 하나도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무려 오늘날까지도 인간이 처한 오롯한 실상이다. 우리들 인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르므로, 모름지기 ‘방황’ 또는 ‘유랑’이라는 것은 이 쓸쓸한, ‘소금별 대합실’ 같은 지구라는 별에 태어난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실존적 운명이라고 하겠다.
이문열의 소설 〈그해 겨울〉은 이제 갓 스물을 넘긴 푸르디푸른 나이의 한 젊은이가 ‘나에게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원래 《젊은 날의 초상》(1981)이라는 제목 하에 〈하구(河口)〉 〈우리 기쁜 젊은 날〉 〈그해 겨울〉의 3부작으로 구성된 것인데, 쓰여지기는 맨 끝에 있는 〈그해 겨울〉이 가장 먼저인 1979년에 쓰여졌고, 나머지 두 편은 그로부터 2년 뒤에 새로 써서 단행본을 낼 때 덧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의 주인공 ‘영훈’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강진(실제 작품의 배경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의 낙동강 하구에서 모래 채취일을 하는 형을 도우며 학업에 열중, 마침내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이어서 서울 소재 모 대학의 국문과에도 운 좋게 합격한다(〈하구(河口)〉). 그러나 2년 동안의 짧은 대학생활 동안 도저한 허무와 관념의 질곡 속에 절망한 나머지 ‘영훈’은 마침내 ‘삶이란 내게 무엇인가’라고 되묻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대학을 그만두고 방황의 길로 들어선다(〈우리 기쁜 젊은 날〉). 그리하여 탄광과 어촌을 떠돌아다니며 당장의 연명을 위한 일자리를 구하지만 백면서생의 책상물림에게는 할 수 있는 일도, 또 선뜻 일자리를 내주는 사람도 없었다. 체념한 ‘영훈’은 무턱대고 내륙으로 발길을 향하다가 어느 산촌의 여관 겸 술집의 허드렛일꾼으로 일하게 된다. 3부작의 마지막 〈그해 겨울〉은 이렇게 시작된다.
‘영훈’이 어렵사리 일자리를 얻은 여관 겸 술집은 그러나 잎담배를 수매하는 철이 되면 영락없이 시골 요정으로 변하는 집이었다. 그곳에서 잎담배 감정원들의 비리와 그들에게 잘 보이려는 담배 경작자들, 그리고 도시에서 먼 산촌으로까지 팔려온 술집 색시들의 갖은 사연과 불쌍한 처지들, 각다귀처럼 몰려드는 무보수 지방신문 기자들의 행태 등 비루한 삶의 전혀 가감없는 현실을 고스란히 목도한다. 그렇게 채 두 달이 지나기 전에 ‘영훈’은 다시금 내면으로부터 자책의 목소리를 듣는다.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던 너는 지금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너는 엉뚱한 곳에서 시간과 재능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여기에 덧붙여 한 술집 색시의 순수하지만 어리석은 추근거림과 또 한 지서 차석의 집요한 의심의 눈길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다시금 길을 떠난다.
‘영훈’은 그 여관 겸 술집을 떠나 바다로 갈 작정이었다. 이때 ‘영훈’의 출발점이 된 곳의 실제 배경이 작가 이문열의 고향이자 ‘육지 속의 섬’이라 불리기도 하는 경북 영양군이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영덕 대진(大津), 직선 거리로는 100리 남짓했지만 험준한 태백산맥의 마지막 끝자락 굽이굽이를 돌아가자면 200리에 가까운 거리였으며 더군다나 중간에 해발 700미터의 창수령(蒼水嶺)이 우뚝 솟아 있었다. 때는 늦겨울, 이웃집 감나무에 무서리가 반짝이는 어느 아침이었다.
소설 〈그해 겨울〉은 다른 말로 ‘길 위의 소설’이라고도 불린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훗날 작가 스스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한 적 있는 헤르만 헤세의 성장소설 〈페터 카멘친트〉나 〈데미안〉처럼 인생을 자기를 찾아가는 하나의 긴 여행으로 볼 때 그 ‘길찾기’로서의 소설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소설 자체의 스토리 라인이 길 위에서의 여행 이야기이자 그 길에서 만난 허다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길을 떠나는 ‘영훈’의 가방 속에는 언제부턴가 마음만 먹으면 바로 자신을 치사시키기에 충분한 독약이 들어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바다에 이르러서도 뜻한 바 삶의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그 길로 생을 마감할 작정이었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를 그 도보여행의 첫날 그는 많은 사람을 길 위에서 만난다. 예컨대 한 번도 집권해본 적이 없는 시골의 야당 당원, 시골 건달과 교회 장로, 당직 근무를 위해 국도를 걸어 학교로 돌아가는 중등교원, 아들이 월남전에서 가져온 군용 라이터를 자랑하는 소장수 영감 등이 이날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인간 군상들이다. 이들과 만나 스스로의 현학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분위기를 맞추면서 마셔댄 술추렴으로 당초 비장하기까지 했던 여행의 목적은 어느새 잊고 자못 유쾌하기까지 한 여행이 되었다.
이튿날의 여행길도 출발은 유쾌한 기분 그대로였다. 그러나 곧 만나게 된 한 폐병쟁이 나그네는 과장되게 떠벌리는 ‘영훈’의 현학을 한눈에 꿰뚫어보는 지식인이었고, 뒤늦게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그는 차마 얼굴을 들 수 없는 열패감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리고 잇따라 만나게 된 수상한 느낌의 칼갈이 노인과 쓸쓸한 황혼. 그리하여 전신주를 울리는 바람소리만 횡행하는 고적한 소읍으로 찾아들었을 때 참으로 우연히 만난 서너 살 위의 집안 누님. 교양과 미모를 갖추었으나 유부남을 사랑한 상처의 흔적을 아직까지 간직한 채 살아가는 그 누님의 자취방에서의 1박. 그날 밤 술자리에서 누님이 ‘영훈’에게 말한다. “봄이 오면 나는 대학원으로 진학할 거야.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다.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진실하게 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도 학교로 돌아가. 네 스물한 살의 나이로 돌아가란 말이다.”
이튿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그 지방에 폭설이 내린 날의 한낮이었다. ‘영훈’은 누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길을 나섰으나 겨우 30리를 못 가 창수령의 내륙 쪽 아랫마을에서 탈진, 마을회관에 쓰러져 하룻밤을 보내면서 다음과 같은 탄식의 말을 남긴다. “생각느니 이 겨울의 뿌리는 얼마나 깊은 것인가.” 필자는 이 말에서 ‘겨울’을 ‘생(生)’으로 바꾸어도 의미상 큰 차이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여행 4일차의 아침에도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그 눈이 지난 30년래의 폭설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동네 주막집에서 간단히 요기를 마친 ‘영훈’은 들고 다니던 가방을 등짐으로 만들어 메고 다리에는 고무줄로 감발을 친 채 창수령 고개를 올랐다. 쌓인 눈은 두 자에 가까웠고, 교통은 완전 두절된 상태였다. 그렇게 5리쯤 걸었을까, 다행히 눈은 그치고 온몸에서는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그때였다. 찬연한 햇살 아래 눈 덮인 창수령이 굴복시킬 수 없는 거인처럼 펼쳐졌다. 작가는 이때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격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창수령, 해발 700미터. 나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보았다. 창수령을 넘는 동안의 3시간을 나는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세계의 어떤 지방 어느 봉우리에서도 나는 지금의 감동을 느끼지 못하리라.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완성된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을 나는 바로 거기서 보았다. 오, 아름다워서 위대하고 아름다워서 숭고하고 아름다워서 신성하던 그 모든 것들. 그 눈 덮인 봉우리의 장려함, 푸르스름하게 그림자 진 골짜기의 신비를 나는 잊지 못한다. 무겁게 쌓인 눈 때문에 가지가 찢겨버린 적송, 그 처절한 아름다움을 나는 잊지 못한다. 눈 녹은 물로 햇살에 번쩍이던 참나무 줄기의 억세고 당당한 모습, 섬세한 가지 위에 핀 설화로 면사포를 쓴 신부처럼 서 있던 낙엽송의 우아한 자태도 나는 잊지 못한다. 도전적이고 오만하던 노간주나무조차도 얼마나 자그마하고 겸손하게 서 있던가? 수줍은 물푸레 줄기며 떡갈 등걸을 검은 망사 가리개처럼 덮고 있던 계곡의 칡넝쿨, 다래넝쿨, 그리고 연약한 줄기 끝만 겨우 눈 밖으로 나와 있던 진달래와 하얀 억새꽃의 가련한 아름다움, 수십 년생의 싸리나무가 덮인 등성이를 지날 때의 감각은 그대로 전율이었다.”
그 무렵 ‘영훈’을 사로잡고 있는 어떤 예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외형적인 방황에도 불구하고 만약 자신이 삶을 지속한다면 장차 어떤 예술적인 것, 다시 말해 아름다움의 창조와 관련 있는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예감이었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이야말로 그 모든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기가 머뭇거려지던 가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영훈’은 또다시 절망했다. 까닭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어떤 신적인 것으로, 인간은 본질적으로 도달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불가능한 영역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 또한 참을 수 없을 만큼 어리석고 무모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찾아왔다.
이날도 ‘영훈’은 겨우 30리 남짓한 눈길을 헤치며 걷느라 거의 녹초가 되었다. 그리하여 더 이상의 전진을 포기하고 창수령을 벗어나자마자 만난 첫 번째 주막에 찾아들었다가 예의 그 칼갈이 노인을 다시 만난다. 그러나 이날 주막방에서 만난 칼갈이 노인은 자세히 보니 노인이 아니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뿐, 실상은 쉰 살을 넘겨 보기가 힘든 용모였다. 먼저 와서 요기를 마친 칼갈이 사내는 ‘영훈’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서둘러 떠나고, 홀로 남은 ‘영훈’은 소줏병을 비우다가 불현듯 그 사내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 뒤를 추적하다가 어느 마을에서 이제 막 토끼몰이를 끝내고 돌아오는 한 무리의 청년들을 만나 또다시 술추렴에 끼어들고는 이날 밤은 그 마을 4H회관에서 곯아떨어지고 만다.
‘영훈’이 다시 눈을 뜨게 된 것은 이튿날 새벽 무렵의 지독한 추위 때문이었다. 주위는 전날 밤 벌어졌던 어지러운 술판의 흔적뿐, 함께 마시던 청년들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길을 떠나기에도 너무나 이른 겨울 새벽이었다. 추위는 시시각각 죽음의 공포처럼 엄습해오는 가운데 ‘영훈’은 언 손으로 유서를 썼다. ‘만약에’라는 전제를 달고 시작하는 그 유서는 자신이 주검으로 발견된다면 그것은 절대 자살은 아니라는 것과 지난날에 대한 회한과 용서, 그리고 뉘우침으로 가득 찬 내용이었다.
이윽고 ‘영훈’이 장황하기만 하고 알맹이도 없는 편지 형식의 긴 유서 쓰기를 마쳤을 때 날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영훈’은 유서를 가방 속 깊이 간직하고 용기를 내어 그 방을 나왔다. 마을은 여전히 혼곤한 잠에 빠져 있고, 길은 가로수만으로 가늠할 수 있을 뿐 한 줄기 흰 강과 다를 바 없었다. 그 허허로운 벌판을 광목 피륙을 생으로 찢는 듯한 칼바람소리만이 달리고 있었다.
‘영훈’은 추위와 허기를 이기기 위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영원’처럼 느껴지던 그 신새벽에 달린 먼 길이 나중에 알고보니 사실은 5리도 못 되는 길이었다. 이내 발길이 느려지고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졸음이 몰려왔다.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영원히 잠들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거의 본능에 의지한 채 앞으로 걸어갈 때 문득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어이, 그쪽은 길이 아니야. 이쪽으로 와.”
또다시 만나게 된 칼갈이 사내였다. ‘영훈’은 칼갈이 사내가 먼저 와서 따뜻하게 데워놓은 원두막 같은 움막에서 추위를 녹이고 눈을 뭉쳐 끓인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면서 마침내 그 사내의 내밀한 사연을 듣는다. 사내는 해방공간에서 좌익 활동을 하다가 동료의 배신으로 19년간 징역살이를 하고 나온 뒤 그 배신자를 죽이러 나선 길이었다. 그 배신자가 영락을 거듭한 끝에 지금은 대진 바닷가에서 머구리배를 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내의 긴 이야기가 끝났을 때쯤 날은 완전히 밝았고 내리던 눈도 그쳐 있었다. 영훈과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묵 속에 30리가량을 동행하다가 멀리 읍이 보이는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소설은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다. ‘영훈’이 그 겨울 도보여행의 종착지로 상정한 대진에 도착한 것은 그날 오후 2시경, 또다시 내리기 시작한 진눈깨비 속이었다. 지금이야 대진 바닷가는 말할 것도 없고 온 나라가 사통팔달로 지나치게 교통이 뻥뻥 뚫린 것이 오히려 탈이지만,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된 196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대진은 인적 없는 ‘유령의 섬’과 같았다고 작가는 술회한다.
‘영훈’은 마침내 다다른 대진 바닷가에 오랫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거센 해풍은 끊임없이 파도를 휘몰아 물보라를 일으키고, 수천 수만의 갈매기는 무리지어 끼룩끼룩 절망적인 울음을 쏟아놓는 어두운 하늘 아래서였다. 그 바닷가에서 ‘영훈’은 삶이라는 이 쓴 잔을 던져버릴 것인지, 아니면 참고 마저 비워야 할 것인지 그 결단의 어떤 실마리를 바다가 대답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바다는 산악 같은 굉음의 파도소리만 끊임없이 들려줄 뿐이었고, 물보라와 먼 하늘끝에서 실려온 눈송이는 안개처럼 ‘영훈’을 감쌌다가 점점 그를 젖은 몸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맹렬하던 파도소리도 서서히 무의미해지는 것과는 반대로 ‘영훈’은 홀연 자기라는 존재가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또렷이 부각되는 것을 느꼈다. 캄캄한 포대기에 싸여 질식할 것만 같았던 자신의 그 방황이라는 것도 대자연 앞에서는 한낱 무기물의 공허한 몸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영훈’은 바닷가 바위에 기대어 한참을 운 끝에 마침내 결심한다.
“돌아가자. 이제 이 심각한 유희는 끝나도 좋을 때다. 바다 역시도 지금껏 우리를 현혹해온 다른 모든 것들처럼 한 사기사에 지나지 않는다. 신도 구원하기를 단념하고 떠나버린 우리를 그 어떤 것이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기가 아니고, 존재가 그 지속을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
이것은 여행의 둘쨋날 만난 집안 누님의 말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갑작스럽고 당돌한 결론이 ‘영훈’의 마음을 온전히 흡족하게 채워줄 수 없음은 당연하다. 이 속수무책의 결론 같지 않은 결론이 ‘영훈’을 긴 울음에 빠뜨리게 한 것이다. ‘영훈’의 이 깊이를 알지 못할 슬픔과 허탈이 어느 정도 수습되었을 때였다. 문득 인기척을 느낀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편에 예의 그 칼갈이 사내가 몹시 지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먼 수평선을 오랫동안 응시하던 사내는 이윽고 벗어놓은 상자에서 오래 벼르고 벼른 칼을 꺼내어 바다를 향해 힘껏 던져버린다. 뜨악해서 묻는 ‘영훈’의 물음에 사내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 오랜 망집을 던졌다. 놈은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서 병든 아내와 부스럼투성이 남매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배고파 울고, 아내는 죽어가고 있었어. 그대로 살려두는 쪽이 더 효과적인 처형이었지...” 그러나 ‘영훈’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적어도 맨 뒤의 말은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유를 묻기 이전에 ‘영훈’은 자신도 가방 속에서 오래 굴러다니던 약병을 꺼내어 그 새벽의 유서 같은 편지에 싸서 바다를 향해 힘껏 던졌다. 역시나 사내의 뜨악한 표정에 ‘영훈’이 대답했다. “내 감상을... 익기도 전에 병든 내 지식을 던진 겁니다.”
이튿날 ‘영훈’은 어느새 중앙선 상행열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활짝 갠 늦겨울의 오후, 열차가 어느 복숭아 과수원을 지날 때는 그 줄기 끝마다 바알갛게 맺혀 있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필 봄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설은 그 칼갈이 사내의 소식을 짧게 전해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몇 년 후에 나는 그를 B시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는 달군 쇠로 목판에 그림을 그려 살아가고 있었다. 재소 중에 배운 기술인 모양으로, 별로 크지 않은 점포였지만 연신 손님이 들락거리는 것으로 보아 꽤 재미를 보는 눈치였다. 그의 젊고 아름답던 아내와 돌 지난 아들도 덧붙이고 싶다.”
소설 〈그해 겨울〉에서 작가 스스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한 바 있는 헤르만 헤세는 무척이나 구름을 사랑한 사람이어서 스스로 “나는 젊었을 때부터 구름에 대해 경건하고 엄숙한 태도를 지녔었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구름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나그네길을 이해하지 못한다”라고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자전적 성장소설 〈페터 카멘친트〉 속에도 구름에 관한 장황한 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면, 직접 〈구름〉이란 제목의 다음과 같은 시를 짓기도 했다.
구름이여,
아름답고 떠도는 쉼없는 구름이여!
내가 철없는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구름을 좋아했고 유심히 쳐다보았지만,
나 역시 구름처럼 방랑하면서,
도처에서 낯설게,
유한과 무한 사이를 떠돌면서
인생을 살아가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헤르만 헤세의 지독한 ‘구름 사랑’은 사실 ‘자유에의 갈망’과 다를 바 없다. 왜냐하면 ‘방랑’의 다른 이름이 ‘자유’이므로. 그렇다면 헤르만 헤세는 왜 이토록 ‘자유’와 ‘방랑’을 사랑했을까? 그 대답은 애초에 폴 고갱이 던진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고, 17세기 철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가 던진 ‘이 세상에는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있는가?’라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인간 존재에 대한 이 원초적 질문 앞에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못할 때 우리들 인생은 언제까지나 ‘자유’를 찾아가는 긴 여행일 수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 인생은 그 자체로 ‘노마드(nomad)’ 혹은 ‘노마디즘(nomadism)’의 속성을 띨 수밖에 없다. 우리들 모두는 이 완전하지 못한 세상과 ‘지구별’을 여행하는 시간 여행자에 불과하므로... (계간 『U&I』, 2016,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