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소나무가 고향을 지킨다

향토사학자 권순채 선생

by 예술과마을


겨레란 겨레말이 있기에 겨레인 것입니다. 겨레의 토박이말 속에는 겨레의 얼이 스며 있고, 역사와 풍습과 인정이 녹아 있습니다. 내가 토박이 마을 땅이름과 나무이름과 풀이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무리 우리말이 짓밟히고 홀대를 받았어도 시골땅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죽지 않고 싱싱하게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꽃필 때가 제일 좋아요”―그이의 카카오톡 자기소개 말이다. 그이를 수식하는 말은 다양하다. 농부이자 문인, 향토사학자이자 농업연구가 등이 그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 딱 하나를 꼽으라면 자타가 그이를 향토사학자라고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이의 이름은 권순채(權純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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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채 선생은 1953년 경주시 내남면 망성1리 세칭 ‘둥굴’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은 이조1리 ‘갬디미(개무덤)’ 마을에 살면서 태어나고 자란 둥굴 마을을 오가며 농사도 짓고 허다한 막일도 해가며 살고 있다. 이렇듯 어렵사리 번 돈으로 지금까지 10권 가까운 책을 발간했다.


친환경주의자이자 농업연구가로서 오늘날 화학식품에 밀려 박 농사가 사라져감을 애석하게 여겨 박의 전통적 재배법을 소개한 『박―추억 속의 그리움』, 경주시 내남면 소재 노거수와 동제목을 일일이 조사해서 집대성한 『토박이 마을 지킴이 나무와 숲』, 우리말 지킴이로서 한글사랑을 담은 『한글과 농촌 문화』와 『농부와 수녀의 유별난 한글사랑』, 토박이 땅이름과 관련된 저서 『토박이 땅이름』과 『토박이마을―땅이름과 나무』, 그리고 시집 『토박이 마을과 땅이름을 노래하다』와 『풀꽃 나무들아』가 그동안 선생이 펴낸 책들이다.


102025 (1).jpg 경주 근화여중고 교장을 지낸 생전의 정의순 베드로 수녀


농부와 수녀의 유별난 한글사랑


“우리 조상들은 마을과 산, 계곡 등에 그에 어울리는 예쁜 우리말 이름을 지어 불렀어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갬디미(개무덤)’ 마을만 해도 그래요. 이 말은 원래 여러 갈래에서 내려오는 내[川]가 한데 모여서 갯벌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갯모듬’이라 했던 것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이 변하여 ‘갬디미’ 또는 ‘개무덤’이 되었으리라 봐요. 이처럼 이 나라 방방곡곡 골골샅샅에는 저마다 합당한 우리말 이름이 있었는데 일제가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모조리 한자말로 바꾸었지요.”


선생의 우리말 사랑은 연원이 깊다. 한글학회 회원으로 오랫동안 한글학회지를 구독해오던 선생은 같은 한글학회 회원이자 당시 근화여중고 교장이었던 정의순 베드로 수녀님과 의기투합, 198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토박이 땅이름 조사에 착수했다.


“수녀님과 학교 차로도 움직이고 시내버스로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우선 내가 살고 있는 내남면부터 시작해서 점차 범위를 넓혀갔지요. 그렇게 해서 결실을 맺은 것이 『토박이 땅이름』(1993)과 『토박이마을―땅이름과 나무』(2017), 2권의 책으로 나왔습니다.”


권순채 선생의 인생행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정의순 베드로 수녀님은 1923년에 태어나 경북고녀, 서울여자관립학교(서울대 사범대),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경주 월성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마산 성지여고 교사, 부산 데레사여고와 경주 근화여중고 교장을 지냈다. 퇴임한 뒤에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도서관장을 지냈으며, 군위 안나의 집과 왜관 바오로 둥지 너싱홈에서 만년을 보내다가 2018년 11월에 선종했다. 생전에 지극한 한글사랑과 우리말글 교육으로 ‘우리말글 지킴이’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의순 수녀님과는 『한글새소식』이라는 잡지를 통해 지면으로 먼저 알고 있었어요. 나와 수녀님의 글이 드문드문 이 잡지에 실렸기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마침내 만나뵙게 된 것이 1984년 가을이었습니다.”


당시 근화여중고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60대의 정의순 수녀님을 갓 서른을 넘긴 권순채 선생이 찾아갔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처음에는 권순채 선생이 정의순 수녀님의 부탁으로 식물채집을 하는 것에서 시작,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함께 경주지역의 토박이 땅이름을 조사하는 것으로 깊어졌다.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 하나는 1987년의 어느 날, 내남면에서도 가장 오지마을인 박달 4리 고사리마을에 조사하러 갔을 때다. 해발 600~700미터나 되는 고산지대 마을을 조사하다보니 어느새 해는 지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제야 두 사람은 황급히 뛰어가서 막차를 탔다. 이미 어두워진 밤에 용장 1리에서 내린 권순채 선생은 맨발로 냇물을 건너서 집으로 돌아와보니 밤 9시가 넘어 있었다.


“그때는 하루 수십릿길을 걸어다니면서 가장 열정적으로 땅이름을 조사했어요. 수녀님과 항상 동행했기에 힘든 줄도 몰랐지요.”


권순채 선생과 정의순 수녀님과의 인연은 평생 이어졌고, 그 소중한 사연이 책으로 담겨져 나온 것이 『농부와 수녀의 유별난 한글사랑』(2016)이다. 책 속에는 정의순 수녀님이 30년 가까이 권순채 선생에게 보낸 편지가 실렸는데 그중 하나를 읽어보자.


권순채 님, 성탄의 기쁨을 알립니다. 평화와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시니 함께 기뻐합시다. 모두 편안하십니까? 권순채 씨께서 이 해에는 특히 좋은 글을 많이 써주셔서 축하드립니다. 더 많이 쓰시라 청하는 뜻으로 노트 한 권 드리니 더 많이 쓰시고 한글과 나라를 빛내주세요. 유들 어머니 수고 많으셨지요? 녹차향을 드립니다. 유들이와 유름이도 고운 마음의 표시로 고운 색깔 펜을 선사해요. 오래 못 보아 보고 싶은 마음을 보냅니다. 2011년 더욱 건강하시고 복 많으시라 빕니다. / 2010년 12월


다정다감한 사랑의 말을 단정한 글씨로 또박또박 적어 보낸 정의순 수녀님의 편지는 권순채 선생에게 언제나 감동과 감격 그 자체였다. 선생은 진심으로 이승에 와서 정의순 수녀님을 만난 것을 크나큰 행복으로 여긴다.

승용차도 없는 권순채 선생의 유일한 이동수단은 사륜구동 오토바이다. 농사일 외에도 고속철도 기초노반공사, 공공근로, 문화재 발굴현장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책을 출간해온 선생은 현장조사차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면서 애로사항도 많았다.


“한번은 아들과 함께 노거수 조사를 하러 갔다가 안심 1리 청도마을에서 막다른 길을 만나 오토바이가 낭떠러지에 처박혔어요. 그때 2~3시간 만에 겨우 오토바이를 건져내고도 조사는 마쳤지요. 뿐만 아니라 임도 관리인을 할 때도 일을 마치고 오토바이 브레이크를 잡지 않아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다가 살아난 적이 있어요, 하하.”


우리말 땅이름 찾기 30년의 결실 『토박이마을―땅이름과 나무』, 정의순 베드로 수녀님이 권순채 선생에게 보낸 서신을 수록한 『농부와 수녀의 유별난 한글사랑』


문학소년에서 농업연구가로


권순채 선생은 일찍이 청소년 시절부터 문학소년이었다. 대구시인협회장을 지낸 시인 박진형이 신라중학교 동기다. 두 사람은 3년 동안 기차통학을 하면서 문학의 꿈을 키웠다. 이후 경주공고 토목과를 졸업한 선생은 막내임에도 부모를 모셔야 할 처지여서 미련 없이 고향에 주저앉아 농사 짓는 길을 택했다. 사람의 도리로 인륜을 지키는 것보다 큰 것은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럼에도 문학을 향한 열정은 식지 않아 『문학세계』 수필 부문 신인상(2004), 『자유문학』 민조시 부문 3회 추천 완료(2014), 『한국신춘문예』 시 부문 신인상(2016)을 수상했다.


타고난 부지런함과 생명을 존중하는 선생의 성품은 농사꾼의 길에 들어서서도 여느 농사꾼과는 달랐다. 화학비료 사용을 당연시 여기던 시절에 벌써부터 농약사용을 최소화하는 친환경농법을 몸소 실천하였으며, 오늘날 화학식품에 밀려 박 농사가 사라져감을 애석하게 여겨 박의 전통적 재배법을 정리하고 널리 보급하는 데 앞장섰다. 예컨대 박 농사의 유용함을 『농민신문』에 기고하는 한편 전국적으로 박씨를 무료로 나누어주며 박 재배를 권장했다. 이때 선생의 높고 소중한 뜻에 함께하려는 여성동지가 나타나 마침내 결혼까지 하기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박꽃처럼 소박하고 진실된 미담이 아닐 수 없다. 선생은 또 약초에도 조예가 깊고, 우리 산야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나무와 풀들의 이름에 대해서도 많은 조사를 했다. 선생의 이런 노력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이 몸 담고 살고 있는 땅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사라져가는 전통을 오늘에 되살리려 노력하고, 점차 피폐해져가는 농촌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으려고 애쓰며, 무심한 듯 지나치기 쉬운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에도 애정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 선생이기에 사람들은 선생을 일컬어 ‘경주의 보배’라고들 한다.


사실 권순채 선생은 심각한 초고도근시여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반인도 해내기 힘든 방대한 조사와 자료 섭렵을 통해 차근차근 결과물을 책으로 엮어내었으니 놀라운 것이다. 이런 선생의 공로를 인정하여 2017년 경주시에서는 ‘경주시문화상’을, 경주문화원에서는 ‘자랑스러운 경주문화인상’을 수여하였으며, 이때 신라문화동인회에서는 선생의 불편한 눈을 안타깝게 여겨 전문의에게 부탁해 정밀 시력 진단을 받게 하고 치료도 책임지도록 했다는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진다.


어린 시절 자랐던 집에서 생전의 부모님과 문학을 꿈꾸던 청년 시절의 모습


토박이 땅이름 찾기 30년


지난 30년 동안 권순채 선생이 경주시 내남면과 황남동 일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조사하여 살려낸 아름다운 우리말 땅이름의 수만 해도 수천 개에 이르고, 그 마을의 전설 · 방언 · 노거수 등을 찾아낸 것도 상당수이다.

“한 마을을 조사하려면 골짜기 이름, 논이름, 개울이름 등을 알기 위해 10~20번 찾아가야 합니다. 주민들도 땅이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자료수집 후 연구를 해야 합니다. 땅이름의 유래를 알기 위해서는 나무, 바위, 산, 지형, 풍수, 인물, 역사 등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권순채 선생은 원래 한문 집안에서 자라 한자에도 박식하지만 의외로 누구보다도 한글을 사랑한다. 그래서 두 아들의 이름도 ‘유들’ ‘유름’으로 순우리말로 지었다. 나아가 선생은 족보나 문중의 문집, 나라의 헌법도 앞으로는 마땅히 한글로 써서 후손들로 하여금 그 뜻을 충분히 알아듣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겨레란 겨레말이 있기에 겨레인 것입니다. 겨레의 토박이말 속에는 겨레의 얼이 스며 있고, 역사와 풍습과 인정이 녹아 있습니다. 내가 토박이 마을 땅이름과 나무이름과 풀이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무리 우리말이 짓밟히고 홀대를 받았어도 시골땅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죽지 않고 싱싱하게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온전히 살려내는 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앞으로 경주시 12개 읍면과 11개 동의 토박이 땅이름과 노거수, 희귀목, 나무들의 유입 연원 등을 모두 조사하여 집대성하고 싶고, 경주시 전설집도 반드시 조사를 마쳐 책으로 묶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주관하여 매년 진행해오는 매월당 김시습 금오신화제도 계속 진행해야 하고, 또 신라의 탄생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 신라역사 탐방길을 경주 남산 나정에서부터 포석정에 이르기까지에 걸쳐 조성하고 싶기도 합니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권순채 선생의 서재에는 각종 도서는 물론이요 꼼꼼히 기록하여 보관해둔 자료철로 넘쳐난다. 뿐만 아니라 창고에도 각종 유인물과 포스터, 신문 및 잡지들로 빼곡하다.일찍이 기록문화의 소중함을 깨달은 선생의 정신의 반영이 아닐 수 없다. 선생에게는 5가지 인생의 좌우명이 있다. “최고는 못 되어도 최선을 다하자, 탑을 쌓되 아름답고도 단단하게 쌓아라, 선의로 남을 돕자,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배우자, 나를 시기하는 주위 사람들도 사랑하자”가 그것이다. 속담에 “굽은 소나무가 고향을 지킨다”라는 말이 있다. 솔직담백하여 무엇을 꾸미거나 폼 잡을 줄 모르는 권순채 선생은 타고난 반듯한 성품에 부지런함으로 자기만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나간다. 그런 점에서 선생이야말로 고향을 지키는 진실한 한 그루의 소나무이다. 다음은 선생의 시다.


마을마다 이름 있고 산과 들, 논과 밭 / 골과 등성이마다 이름 있고 뜻 있다 // 선비들은 마을마다 좋은 이름 찾아 짓고 / 일꾼들은 논과 밭 들 이름 지어내고 / 아낙들은 산과 들 나물 뜯어면서 이름 지어내고 / 나무꾼들은 이 산 저 산 이 골짝 저 골짝 나무하면서 이름 지어내고 / 어린아이 이리저리 다니면서 이름 불러 지어내네 / 옛사람들 거쳐간 곳마다 이름 있고 뜻 있네 // 봄이면 매화꽃 곱게 피는 향기로운 고향마을 / 그리움에 아름다운 옛 이름 / 철마다 곱고 고운 꽃피워 주면 / 옛 마을 이름따라 그리웁고 마을 사람들 땅이름에 정들고 / 바삐 살아가는 요즈음 옛 정취 사라져도 이름만은 옛날 그대로다.


(『경주문화』, 2018, 제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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