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유정의 마지막 모습
단편소설 『봄봄』 『동백꽃』 『만무방』 등으로 유명한 해학과 풍자의 작가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은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29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살아생전 구인회(九人會, 1930년대 한국문단의 최정예 9명이 만든 문학단체. 창립멤버로는 김기림·이효석·이종명·김유영·유치진·조용만·이태준·정지용·이무영이 있었으며, 이후 이종명·김유영·이효석이 탈퇴하고 대신 박태원·이상·박팔양이 새로 들어왔으며, 그뒤 유치진·조용만 대신에 김유정·김환태로 바뀌었으나 회원수는 항상 9명이었다)의 멤버로서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촉망받는 작가였으나, 폐결핵과 사투를 벌이며 죽어간 마지막 모습은 참으로 눈물겹다.
서울에서 고향집으로 돌아와 병마와 최후의 사투를 벌이던 김유정이 죽기 열흘 전 오랜 친구인 소설가 안회남(安懷南, 1909- ?, 신소설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으로 유명한 안국선의 외아들이다. 해방 후 월북)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
필승(안회남의 본명)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맹열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되겠다. 달리 도리를 차리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는 일으키기 어렵겠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100원을 만들어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해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두어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번역하여,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주마. 하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필승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쏘구리 돈을 잡아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3월 18일 김유정으로부터
그러나 김유정은 닭 30마리, 구렁이 10마리를 먹어보겠다는 소박한 소망조차 이루지 못한 채 그로부터 열흘 뒤 숨을 거두고 화장되어 한강에 뿌려진다. 1930년대만 해도 그런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6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최대의 물질적 풍요의 시절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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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과 작가 이상(李箱, 1910-1937)은 같은 구인회 멤버로서 다른 멤버들보다도 유달리 친한 사이였다. 이렇게 된 데에는 나이와 문학관도 서로 비슷한 데다가, 폐결핵이라는 공통의 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대화를 보자.
“각혈이 여전하십니까?” “네, 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치질이 여전하십니까?” “네, 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유정!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
1936년 가을, 이렇게 은밀하게 찬란한 정사(情死)를 모의하던 두 사람은 그 뒤로 1년도 채 지나기 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버렸다. 김유정이 1937년 3월 29일에 세상을 떠났고, 이상은 보름쯤 뒤인 4월 17일에 도쿄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객사했다. 요절한 두 천재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긴 문우들은 그해 5월 17일 서울 부민관에서 두 사람의 공동 추도회를 마련해주었다.
사진 위 왼쪽부터 김유정 가족사진, 연재 당시의 소설 『동백꽃』, 신영균·남정임 주연의 영화 《봄봄》, 아래 왼쪽부터 작가 이상, 소설가 안회남, 김유정이 짝사랑했던 명창 박녹주(1905-1979)로서 당시 명월관 기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