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인 우리 가족이 사는 법

공감해주며 서로에게 맞는 역할 찾기

by 엄지


나는 채식주의자 남편은 육식주의자


나는 채식주의자다. 그중 육류는 먹지 않고 생선과 해산물은 먹는 페스코 채식주의자다. 남편은 육류를 좋아하는 육식주의자. 극과 극인 우리 부부의 딸은 아빠를 닮아 고기 위주의 육식 파이다.


완전히 극과 극인 우리 가족에게 외식 메뉴를 고를 때, 외식에 꽃인 고깃집을 가야 할 때는 애로사항이 생기게 된다. 지글지글 구워야 제맛인 고깃집에서 내가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대부분 곁들여 나오는 된장찌개나 냉면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육식 파인 남편과 딸을 위해 가끔 고깃집을 가기도 하지만, 높은 외식 물가로 대부분은 집에서 남편과 딸이 먹을 고기만을 구매해 집에서 구워 먹는다. 그런 우리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식은 회이다. 생선을 즐기는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은 회를 자주 사서 먹는다. 덕분에 딸은 고기도 잘 먹지만, 엄마의 입맛도 닮아가 회도 최애 메뉴가 되었다.


1746390421055.jpg 등나무꽃/놀이공원 입구에 등나무꽃이 향기가 더해져 우리를 반겼다.


혈액형과 성격도 너무 다른 우리 가족


혈액형과 성격도 다른 우리 가족. 나는 B형, 남편은 A형 딸은 O형. 딸이 나와 남편에게 요즘 즐겨 하는 MBTI 검사를 해주었다. 나는 감성적인 성향에 F형, 남편과 딸은 사실적인 사고형인 T형이다. 드라마에서 슬픈 장면이나 다큐멘터리에서 안타까운 사연의 이야기들이 나오면 나는 금세 그들과 동일시하고 감정이입이 되어 눈물을 흘린다. 그런 나의 모습을 남편과 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신기한 듯 쳐다본다. 반면에 사실적이지 않은 얘기에는 공감을 못 하는 남편, 국어책에 나오는 황순원의 소나기에 소년 소녀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보다 네이버 웹툰 만화, 웹 소설이 더 재밌는 딸이다. 듣는 음악적 취향도 완전 다르다. 활동적인 성향에 남편은 빠른 템포의 댄스 음악, 딸은 요즘 인기 아이돌 음악이나 일본 애니 음악을 나는 세미 클래식이나 잔잔한 음악을 주로 듣는다.


근래 잔잔한 음악을 좋아하는 나도 리드미컬한 음악이 나오면 자연스레 리듬이 타기도 하고, 감정선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던 남편은 ‘동이’란 드라마를 10년째 보고 있다. 요즘은 ‘도깨비’와 ‘김 비서는 왜 그럴까’라는 드라마를 돌려보기도 한다. 감정이 없다고 여긴 남편의 반전 모습이다. 늘 종이책을 등한시하고 웹툰이나 웹 소설을 좋아하는 딸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주로 내 서재에서 딸의 공부를 가르치는데, 딸이 내 서재에 꽂힌 책을 궁금해 하나씩 열어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궁금해 내 서재에 꽂힌 채식주의자 책을 보고, 학교에서 틈나는 대로 읽는다고 빌려 갔다.


1746390418627.jpg 바이킹/ 바이킹이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르고 있다.


서로에게 맞는 역할 찾기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 부처님오신날이 겹친 황금연휴를 맞아, 딸이 좋아하는 놀이공원을 찾았다. 황금연휴 내내 비가 내리다 오늘 모처럼 만의 맑고 화창한 5월의 날씨로 놀이공원은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평소 놀이공원에서 내가 탈 수 있는 놀이기구는 회전목마다. 놀이기구를 무서워 못 타는 내게 놀이공원의 입장료는 아깝기까지 하다. 하지만, 짜릿한 스릴을 즐기는 활동적인 남편과 딸에게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줄어들어 하루가 짧게 느껴졌을 것이다.


딸의 최애 놀이기구 바이킹을 타는 데도 1시간 정도 대기를 해야 했고, 트위스트 놀이기구는 1시간 30분을 기다렸고, 딸이 타고 싶다고 노래하며 고대하던 아마존 익스프레스는 2시간은 족히 넘게 기다린 후에야 탈 수 있었다.

바이킹이나 트위스트 같은 익스트림 놀이기구는 감히 내가 범접할 수 없어 쳐다볼 수 없는 놀이기구이다. 아마존 익스프레스는 오래전 타본 경험을 더듬어 본 결과, 그나마 무서움이 덜했다. 내가 질끈 눈 한 번만 감으면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거라 여겨, 오늘 큰맘 먹고 옷쯤은 젖어도 괜찮아하며 가족과 함께 탔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놀이공원에서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한 가지 더 추가되는 기쁨을 느꼈다.


남편과 딸이 트위스트 놀이기구를 타며 즐길 때, 밖에서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나는 사진사를 자청했다. 평소, 집에서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일어날 줄 모르던 남편이 딸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며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에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도 즐거웠다.


순간, 내가 못 타는 놀이기구를 남편이 딸과 함께 즐기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딸도 모처럼 아빠랑 손 붙잡고 걸으며, 재잘대기도 하고, 놀이기구를 함께 타는 둘도 없는 친구 같은 아빠가 생겨 즐거워했다.

나는 딸의 선생님으로 아빠는 놀이 친구로 서로에게 맞는 역할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또는 우리 모두에게 맞는 합의점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서로를 이해하면 동화될 수 있을 것이고, 맞지 않는다고 여기던 것도 내게 맞는 새로운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746390422942.jpg 등나무꽃과 진달래꽃/ 환상적인 등나무꽃과 봅의 전령사인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공감과 다양성의 중요.


아마존 익스프레스 놀이기구를 기다리며, 기다림에 지쳤는지 우리 앞에 우는 어린아이가 생겼다. 주위에 어른들이 우는 아이를 보며 달래주기도 하고, 또래 어린 친구들이 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건네주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우리 주변으로 5월의 푸른 하늘 아래 환상적인 등나무꽃과 봄의 전령사인 진달래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홀로 핀 꽃보다 다양한 꽃들이 어우러져 있어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이와의 추억을 담기 위해 연신 카메라를 드는 어른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앞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이와 어른들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꿈의 나라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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