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과 익숙함, 그리고 전념하고 있던 것들을 버리고 떠날 용기
1월 12일 우리는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여기서 우리라 함은 남편과 나 그리고 아들 셋을 말한다. 첫째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고 둘째는 중학교 2학년이며, 우리 집 막둥이는 초등 2학년이 된다. 막내를 위해 1년의 시간적 자유를 선택했던 나는 그 마지막 여정으로 한 달 살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엔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가서 하루 종일 바다를 보며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때는 바다만 있으면 나올 줄도 모르고 신나게 놀던 사춘기 아들 둘은 이제 바다 말고 다른 곳이 필요하단다. 지난번 제주도 여행에서도 바다 보다 산이 더 좋다던 녀석들이었다. 장소에 대한 선택권은 자기들에게 달라고 했다. 우선 계속 관광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주는 곳은 제외다. 우리는 매일 자기만의 공부를 해야 하기에 너무 지나치게 어딘가로 가고 싶어지는 곳은 빼고 몇 군데 후보지 중에서 아이들은 “치앙마이”를 골랐다.
사실 나는 인도 배낭여행 이후 동남아 여행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무엇보다 매연과 미세먼지를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곳 치앙마이는 그 다짐을 깨고 오게 된 첫 번째 동남아 여행지가 되었다. 물론 동남아 특유의 매연과 혼란스러운 도로는 어쩔 수 없지만, 인도의 도로보다는 여러모로 사정이 더 낫다. 매연 역시 인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하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추운 날씨가 계속되던 중에 왔는데 이곳은 현재 건기로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 수준이다. 한마디로 날씨가 너무 좋다.
여행지를 '치앙마이'로 정하면서 우리가 생각한 치앙마이의 장점을 살펴보자.
첫째 물가가 저렴하다.
비록 최근에 환율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태국의 100밧은 우리나라의 4000원가량이다. 어제 마야몰에서 먹은 한 접시의 팟타이는 65밧이다. 한 끼 식사가 2600원인 셈이다. 커피 한 잔의 가격도 꽤나 저렴하다. 사춘기 둘을 포함한 5인 가족 숙박비의 경우 우리나라의 리조트는 1박에 45만 원가량이었으나 이곳은 1박에 10만 원가량의 콘도를 빌릴 수가 있다. 물론 2인 기준으로 온다면 숙박비는 훨씬 더 줄일 수 있다. 우리는 워낙 인원수가 많아서 호텔의 경우 방을 두 개 빌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따라서 에어비앤비로 지금의 숙소를 예약했다. 우리가 선택한 숙소는 아스트라 스카이 리버이다. 중국인과 한국인의 비율이 좀 적은 편인 데다가 옥상의 수영장이 압도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워크스테이션도 훌륭하고 규모는 작지만 헬스장도 있다.
둘째는 치안과 의료시설이 좋은 편이다.
치앙마이는 치안이 좋은 편이다. 아이들과 함께 가는 여행이라 아이들이 아플 때가 가장 먼저 걱정이 되었는데 치앙마이의 병원들은 통역사를 갖추고 있는 곳들이 많아서 일단 안심이 되었다. 간단한 증상들은 약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구매해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기에 일단 안심이었다. 람병원과 치앙마이 방콕 병원, 메모리얼 병원이 있었고 메모리얼 병원은 숙소 바로 옆이지만 큰 문제가 생기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방콕 병원 쪽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이 병원은 일요일에도 소아과를 운영하고 있다.
셋째는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기 좋은 인터넷 환경을 갖추고 있다.
어딜 가든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는 점이 이곳을 디지털 노마드들의 성지로 만들어 준 것 같다. 에어컨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어디서든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다. 처음엔 첫째 고입이 뜻하는 대로 안되면 위로 차원에서 가기로 계획했던 여행인데 결국은 '합격'을 했고 덕분에 기분 좋게 떠나올 수 있게 되었다. 주변에서 이 중요한 시기에 공부 안 하고 놀러 가도 되는지 걱정을 해주셨기에 나 역시도 약간의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집에 있어도 공부하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기에 용기를 내서 떠나올 수 있었다. 다행히 학교에서 진행하는 고등학교 적응 프로그램과 교과 공부는 인터넷 환경만 갖추어지면 가능하다. 둘째도 인강으로 공부하고 있으니 매일 아침저녁에 공부를 챙기면서도 이곳 생활을 누려볼 수 있겠다. 이곳은 무언가를 열심히 즐기기에는 조금 밋밋한 장소일 수 있지만, 내가 하려는 일을 하면서 느린 시간을 경험해 보기 좋은 곳이니까.
여기에 플러스, 나는 초록을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여느 도시와 달리 나무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나무들의 모습을 매일 볼 수 있어서 나에게는 이게 또 다른 즐거움이다. 어느 곳을 가든 문 앞에는 내가 화원에서 보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식물로 주변을 가꿀 줄 아는 치앙마이인들 덕분에 초록을 가득 충전 중이다.
삶에는 관성의 법칙이 존재한다.
지금 흘러가는 일상을 멈추고 환경을 바꾸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내가 가진 모든 용기를 끌어모아야 했다.
“두려움을 버릴 수 있는 용기”
“불안해하지 않을 용기”
“내가 누리고 있는 편안함을 버릴 용기”
“사랑하는 식물을 두고 올 용기”
그리고 "아들 셋과 매일을 한 공간에서 함께 할 용기"를 싹싹 긁어모았다.
번외로 나의 식물들을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식물은 안방, 식탁, 거실 테이블 세 군데로 나누어서 모아두고 받침을 넉넉한 사이즈로 받쳐 두었다. 요렇게 모아 놓아야 종종 들러서 물을 주겠다고 했던 엄마가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엄마가 식물들을 놓치지 않고 챙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름 머리를 썼다. 어떻게 떠나지?라는 물음표에 대한 답은 그저 하고자 마음먹으면 방법은 생긴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사춘기 아들들과 환경을 바꾸어 느리게 사는 시간, 조금은 지루하고 밋밋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굵직하게 챙기면서도 다른 것을 보는 여행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이곳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읽고 쓰고 배우는 삶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안전한 내 삶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들을 만나며 더 다채로워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