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부모는 두 얼굴로 산다-
고3 첫 모의고사 #3월모의고사 (2편)
-그래서, 부모는 두 얼굴로 산다-
딸아이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일이다.
일생 8~9년만에 처음으로 피아노콩클이라는 걸 나가게 되었다. 초등학생 콩클이라는게 그렇다. 참가비는 비싸다. 게다가 드레스를 대여해야 하고, 콩클 도중에 찍을 사진비용에 액자제작비도 내야한다. 어떤 부모는 헤어에 메이크업 비용까지 기꺼이 지불한다고 하더라. 3분가량 곡 하나 치는데, 이건 음대 졸업 연주회급이다. 그렇게 비용을 모두 기꺼이 지불하고 나면 상은 거의 참가자 전원에게 주어진다. 대상, 특상, 특선, 우수상, 입상 등등 별별 이름으로 등수를 예상할 수 없는 상이 마구 발급된다. 그리고 드레스 사진이 콕 박힌 크리스탈 트로피가 배송된다.
그러면 이맘쯤 초등학교 저학년 여자 아이들에게 "니 꿈이 머이가?"라고 물어보면 5명 중 4명은 "피아니스트요!"가 되는 거다.
우리 딸도 유행에 빠지지 않고, 첫 콩클을 나가게 되었다. 꽤 상당 기간동안 곡을 연습했고, 선생님의 아낌없는 칭찬 세례로 자신감이 뿜뿜했다. 대회 당일,
새벽부터 일어나서 헤어에 드레스를 차려입는 고생을 불평 한마디없이 견뎌주었다. 부모 노릇 처음해보는 우리들의 어수선함과 호들갑보다 딸은 의외로 의연해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딸의 그 '의연함'은 용기가 아니라, 처음이라는 상황에 대한 '완벽한 무지'가 만들어낸 일시적인 상황에 대한 코마상태였다.
콩클이 시작되었다. 어느 대학의 소강당...
큰 무대에는 그랜드 피아노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딸을 대기실에 밀어놓고 자리에 앉아있는 내 가슴도 코마였다.
딸이 무대에 올랐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내 딸이지만 정말 예뻤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무난했다. 대견했다. 감동으로 눈물이 차올랐다.
피아노 신동이었다던 모짜르트가 환생한듯 했다.
그...런...데...
갑자기 연주가 뚝 멈췄다.
딸 아이는 피아노 앞에 그냥 멈춰있었다.
움직이질 않았다. 흡사 작동이 멈춘 인형같았다.
관객이 먼저 술렁였다.
진행요원이 뛰어올라가서 딸아이에게 몇 마디 건네는듯 했다.
아마 '다시 해보자'라는 말이었던거 같다.
하지만 딸은 그냥 멈춘 채로 있었다. 우는 것도 아니었다. 무대를 뛰쳐 나가지도 않았다. 관객석에 있는 우리를 찾지도 않았다. 그냥 피아노 건반만 쳐다보고 있었다.
억겁같은 시간이 지난 후
-이제 내려오셔도 좋습니다- 라는 진행자의 멘트가 이어지고, 딸은 진행요원의 손을 잡고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복잡복잡했던 공연장을 뛰어나왔는지 생각도 안난다. 대기실 앞으로 뛰어가면서 이를 악물었다.
'절대 내가 먼저 놀라거나, 내가 더 아쉬워하거나, 내가 더 호들갑을 떨어서는 안된다.'
실은 이미 눈물이 차올랐다.
무대를 망친 딸아이에 대한 실망이 아니었다. 그저 두려움에 떨고 있는 9살짜리 아이에게 미안함이었다.
혼자 놔둔것 같아서...
10년전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긴 하지만, 딸은 의외로 담담히 앉아있었던거 같다. 결국 놀란 것은 우리들, 초보 부모였다.
"생각이 안 났어....."
갑자기 생각이 안났다고 한다. 그냥 아무 생각이 안 났다고 하더라.
"그래, 그래. 그럴 수 있어. 와! 날씨 좋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 놀러가자!"
딸을 차에 밀어들여놓고, 바로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봄이 한창이던 날이었다. 벚꽃은 눈오듯 사방에서 내리고 있었고, 연두빛 나무들은 야광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바람은 따뜻했고, 햇빛은 눈부셨다.
토요일 이른 오전시간에 놀이공원은 한산했다. 우린 청룡열차를 멀미나게 돌았고, 바이킹을 목소리가 안 나올때까지 소리지르며 탔다. 날으는 비행기는 정말 뇌가 흔들려 기절할 때까지 탔다. 달달한 갈비를 배터지게 먹고나니 사방에 노을이 물들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딸은 편안한 얼굴로 잠에 빠졌고, 남편과 나는 안도의 긴 숨을 내쉬었다.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나쁜 기억으로 남겨주지 않으련다. 트라우마 따윈 없다!-
콩클에서의 실수가 아픈 후회와 뼈저린 자책이 아니라, 꽤 상당히 즐거운 추억과 연결지어지길 바랬다. 물론 그 후로 피아노 콩클은 다시는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피아노는 고등학생인 지금도 꾸준히 치고 있다.
지금도 같았다.
우리 부부의 생각은 이랬다.
기나긴 인생에서 모의고사 한 번 망친 것이 무슨 대수라고. 길게 맥 빠질 일이 아니라는 것. 그저 그동안의 너의 노력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을 뿐이었다.
의도가 먹힌 것인지는 모르겠다. 한결 부드러워진 눈매로 딸은 모의고사 제출자에 대한 욕을 한 바가지 쏟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딸은 알까? 정작 그 날 밤에 잠 못 이룬 것은 엄마였다는 걸...
속으로는 그랬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똑같이.
‘그러니까 집에서도 몇 번 더 쳐보라니까.’
‘조금만 더 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텐데.’
그 말들은 늘 같은 자리까지 올라왔다가, 결국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다시 내려앉았다.
아이의 마음에 남을 것은 결과가 아니라 순간일 테니까.
그날 무대 위에서 멈춰버린 기억이 두려움이 아니라, 봄날의 놀이공원의 벚꽃처럼 흩어지기를 바랐던 것처럼,
이번 모의고사 역시 상처가 아니라, 수많은 날들 중 지나가는 하루로 남기를 바랐다.
그래서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한다.
“괜찮아. 별거 아니야.”
그리고 그 말 뒤에 삼키지 못한 문장들이 조용히 쌓여간다.
아마도,
부모라는 건 그런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끝내 꺼내지 않을 말들을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면서도,
아이 앞에서는 끝까지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서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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