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첫 모의고사 #3모 (1편)

-시험망한 날, 잔소리 대신 피자를 먹이는 이유​

by 마글사

고3 첫 모의고사 #3모 (1편)

-시험망한 날, 잔소리 대신 피자를 먹이는 이유


26. 3. 24


고3 첫 모의고사가 끝났다. 이름하여 <3모학평>


3월 모의고사는 다른 모의고사들과 달리 출제자가 '평가원'이 아니라, 서울시교육청이기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말라는 것이 전체적인 분위기이긴 하지만, 수험생과 부모들에게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시험이 있겠는가?


겨울방학 내내 윈터를 해가면서 꽤 준비한 시험이었다. 생각해보면 고등 3년째를 맞으면서 처음으로 준비해서 보는 모의고사라고 볼 수 있다. 고1, 고2 모의고사야 컨디션만 겨우 조절해서 보는 수준이었지...뭐 준비라는게 있었겠는가...쩝...


아침을 먹여 보내면서, 이것저것 당부하고 싶은 말은 목구멍까지 찼지만 시험을 앞둔 당사자인 아이에게 잔소리뿐임을 알기에 입을 꾹 다무는데 에너지를 전부 소진했다.


'이야. 모의고사 이 정도에도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데, 수능보는 날은 오죽할까?'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입이 바짝바짝 탔다.


그 날 하루를 어찌어찌 보내고..

7시 퇴근시간!


학교가 마칠 시간이면 항상 전화해서 하루를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던 아이였는데, 지금까지 전화 한통, 톡 하나가 없다.


폰을 확인해보니 5시경 스터디카페에 입실했다는 톡은 와있었다.


'그래도 스카에 간 걸 보니, 정신줄을 놓진 않았네보네.' 조금 안심이 되었다.


딸에게 전화를 먼저 걸어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마음 잘 다독이며 스카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를 헤짚어놓는건 아닐까 싶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솔이 저녁은 먹었을까?' 딸이 스카에 가면 아빠카드를 가지고 저녁을 먹기때문에 남편에게 카드영수증이 날라왔다.


남편은 "아니. 솔이 집에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갑자기 펑 터져 급발진이 걸린 나는

"왜 솔이가 집에 있어? 솔이 바꿔봐." 재촉했다. 그 사이에도 가슴이 쿵쾅쿵쾅했다.


-솔아, 왜 집에 있어?


바꾸자마자 밀고들어가는 내 질문공세에 이미 기진맥진 영혼을 다 털린 목소리로,


-그냥 집에 왔어.

-시험은 어땠어?

-.......망했어.......


'망했어'라는 말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여러가지의 스펙트럼을 가진다.

우선 긍정적으로는 '뭐 그냥 그랬어. 하지만 내 높은 기대에는 만족할 수 없지...'

그리고 또 하나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나 진짜 망쳤어'


얼굴을 아직 보진 않았어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 진짜 망쳤어...


조목조목 물어보고 싶은 말이 롯데타워만큼이었지만, 자제하고 다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맛있는거 먹을까? 뭐 먹고 싶은거 없어? 엄마가 뭐 좀 사갈까?

-별로, 그냥 이따 불닭이나 먹을까 생각중이야.

-매운거 먹지도 못하면서 무슨 불닭이야. 속버려. 짜장면시켜줄까?

-아니...


매섭게 끊어버리는 짧은 대답은

'나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아!'라는 말을 품고 있었다.


-알았어. 그래. 그래. 그러면 엄마가 피자 한 판 사갈까? 000피자! 지난번에 맛있다고 했잖아.


얼마전 오랜만에 피자 한판을 시켰는데, 유난히 맛있게 먹었던게 생각났다.

다행히


-어? 피자? 그건 괜찮겠다.

-그래! 그래! 피자에 불닭먹어. 엄마가 지금 바로 사갈께.


전화를 끊고 퇴근중이던 버스안에서 부랴부랴 포장주문을 하고, 가장 빠른 동선을 검색해서 적당한 정류장에서 내려서 환승을 하고 내려서 피자를 픽업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눈 밑이 시커먼 다크써클을 대롱대롱 매달고 있는 딸이 식탁에 앉았다.


모락모락 나는 김에 고소한 피자냄새가 다행히 '시험이란 녀석에게 당해서 망신창이가 된 어린 영혼'을 자극했나 보다. 눈이 반짝반짝 거리기 시작했다.


시험얘기는 접어두고, 우리 셋은 열심히 피자를 먹었다.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따끈한 피자에 매운 붉닭까지 한 그릇 해치운 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얼마나 어려웠는지,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는지...


"엄마, 나 수시 준비해야 할 거 같아. 정시는 힘들것 같아."


2학년 내신을 받아보고는 결과에 불만족이었는지 '정시! 정시!'라는 수능 한방을 부르짖고 다니더니, '수능 한방의 역전'이 얼마나 뼈 아프게 힘든 것인지 조금 깨달은 딸을 바라보며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네가 현실을 아는구나'


하지만 내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그래! 이제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남은 내신만 준비해보자! 우선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하나씩 꺼보자!"


고개를 끄떡이는 딸의 눈매가 사뭇 부드러워졌다.


"들어가 쉴께."

"그래, 그래. 오늘은 쉬자!"


어깨가 다 무너져 방에 들어가는 딸의 뒷모습이 한없이 작아보였다. 하지만 곧 어느새 딸 아이 방에서 들려오는 친구들과 나누는 수다소리에 긴 안도의 한숨이 낮고 길게 나왔다. 진짜 우려할 때는 '입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라는 걸 알고 있기에, 지금의 그 속없어 보이는 수다가 다행으로 느껴졌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이네' 내가 숨을 돌리자, 남편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 때 생각이 나네.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때 피아노 콩클때랑..."

"그러네. 그때랑 똑같네."

"일부터 피자 사온 거지?"

"그렇지. 얼른 잊어버리라고. 늪에서 꺼내려고."


피자를 먹이려는게 아니라, 꺼내려고 했다. 10년전 그 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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