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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화 Oct 28. 2019

정치-예술의 분리불가능 관계

이라크의 기념비

 기념비는 인간 세상, 즉 정치, 경제, 사회, 기술과 분리불가능의 관계에 있다. 어떠한 사건을 기념하기위해, 권력자의 업적과 명예를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 세워졌다. 특히 전체주의 체제 아래에서 기념비는 가라앉는 정치권력이 살기위해 버티는 마지막 잔류체온상승과 같은 발버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치경제 싸움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기념비의 문화적 가치는 필요한 걸까? 독자적으로 문화예술적 지속가능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동시대를 포함한 특히 기술이 발전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수직적 거대한 조각과 건축물 앞에서 시각적 지배를 받게 되고, 사상과 기억에 대한 왜곡을 강요당한다. 그리고 그 창조물들에 지배되어 본인이 속한 사회와 외부를 분리함으로써, 강요된 기억을 토대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권력은 이와 같이 약한 인간의 감정을 건드려 기념비와 사람 사이에 어떠한 감정적 연결고리를 형성하도록 조장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20세기 세계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사람들의 인지능력과 자의식 향상, 과거에 대한 회의가 일면서 기념비에 대한 도전들로 사라지는 듯 보였다. 급격한 사회변화는 기념비에 대한 필요성, 역할, 문제 및 영향력을 고찰하게 만들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회는 기념비를 여전히 만들고, 없애고, 변화하고, 활용하면서 이에 대한 갑론을박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나 사회가 불안정한 곳에선 기념비를 여전히 권력 포장, 사상 개혁을 위해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위와 같은 전 근대적인 행위들이 불과 5년전 이라크 모술에서 발생했다. ISIS는 모술지역을 거점지역으로 탈환했을 당시 박물관의 모든 기념비들을 망치로 부시고, 넘어뜨리고, 박물관 일부를 파괴했다. 이같은 문화적 테러행위를 ISIS 소속 테러단은 인터뷰에서 “알라께서 조각상, 우상, 유적을 파괴하라고 말씀하셨다.”라는 말 한마디로 정당화한다.


ISIS의 Mosul 박물관 파괴 실제 모습 1


ISIS의 Mosul 박물관 파괴 실제 모습 2

 그리고 이라크 정부가 다시 모술지역을 되찾고 나서 바로 시작한 사업은 박물관 재건이었다. 무너진 일부 홀은 현대미술관으로 재개관 하였으며, 박물관 디렉터는 프랑스와 아랍에미레이트의 지원금을 받아 구글과 함께 ISIS가 파괴한 사자상을 3D로 복구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모술 박물관의 재개관 전경


 불과 5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모술지역의 박물관과 기념비들은 폐허가 되었다가 부활하였다. 이 사건에서 기념비는 단지 두 가지 사상의 충돌, 정치적 전쟁터에서 어느 한 편의 승리를 보여주는 기표로서의 역할만을 해냈다. 즉, 어느 한 시점에 그 공간을 지배했던 사상에 의해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2015년, ISIS 점령군에 의해 모술 박물관과 기념비들은 어그러진 역사를 만들고, 과거라는 이름으로 주입된 현재의 기억, 이슬람과 자신들의 공동체에 불필요한 회반죽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2017년, 이라크 정부군에게 박물관과 기념비는 무너진 사회를 지탱하는 고정점으로서의 가치를 부여받은 것이다. 그 어느 쪽도 예술적 가치는 아니었다.


 모술 박물관은 전쟁 이전까지 기원전 25,00년경부터 앗시리아 제국시대의 찬란한 역사적 기념비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고유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계승하고, 본인들을 정의했을 것이다. 이라크 정부군과 ISIS와의 전쟁은 기념비를 비롯한 지역의 고유했던 사람들의 기억까지 강탈한 것이다. 박물관과 기념비가 가진 영향력을 필요하고 당연한 것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라깡의 말을 빌리자면 사회는 어쩔 수 없이 정의되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인간의 삶에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안정된 사회를 위해서, 인간답고 윤리적인 삶을 지탱하기 위해 역할을 한다면 정치적 수단이 아닌 문화적 가치를 다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또 다시 인간의 시간과 사상에 의해 단단했던 고정점도 다시금 뜯겨지고 교체될 것이다. 그리고 기념비의 의미에 대해서 끊임없이 되 묻는 행위들이 반복될 것이 분명하다. 한 가지 예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사담 후세인의 동상을 무너뜨리던 당시, 차디 찼던 바그다드의 공기는 불과 몇 시간 만에 끓는 점에 도달했다.


U.S troops and Iraqis pull down a statue of Saddam Hussein in Baghdad on April 9, 2003.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라크 사람들은 미국을 극도로 싫어했다. 91년 발생한 걸프전에서 쿠웨이트의 손을 들어줬던 미국은 2002년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표현하였고, 2003년에 대테러를 명분으로 내세워 이라크에 미사일 폭격하였다. 이를 계기로 발발한 이라크 전쟁은 수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약 4,000만의 이르는 인구의 삶의 터전을 잿더미로 만든 국가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하지만 상황은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후 몇 달 뒤에 미군은 사담후세인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한다. 광장에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차갑디 차가웠던 바그다드 광장은 단 몇 분만에 광기로 차올랐다. 사람들은 직접 손도끼를 가져와 동상을 직접 무너트리고, 후세인 동상 얼굴에 미국 국기를 씌우고, 목에 크레인을 걸어 넘어 뜨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건 어찌보면 잘 된 일이다.”라고 말했다. 자국을 지옥으로 만든 미국을 어떻게 옹호할 수 있을까?


 사담후세인은 27년간 이라크를 이끌었다. 물론 무모하게 걸프전을 일으켰고, 수 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사형했다. 말 그대로 독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사담후세인을 단 몇 분만에 스위치할 수 있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찌됐든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회와 공동체는 기념비 하나에 수없이 많은 감정과 현상,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한 때의 권력을 보여주는 수직적 구조물은 침묵 속에서 합의를 이뤄냈다. 많은 이들이 따르는 존재, 무너트릴 수 없는 존재, 너무나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 지금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하고, 집단의 믿음과 기억들이 모여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힘의 세력이 바뀌었다. 그러자 기념비는 완전히 무기력한 딱딱하고 검은 물체로 격하되었다. 몰락한 권력자를 바라보듯 사람들은 동상을 바라보며 권력자에 대한 분노를 풀기 시작했다. 동상과 권력자를 동일시하면서 마치 광목천을 씌워 교수형하듯 대하였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로 그는 전범재판에서 교수형 당한다.


 그러던 15년이 흐른 2018년 8월 27일, 독일에 사담후세인의 동상이 부활했다. 사람들은 수군 거리기 시작했다. 어딘가를 가리키는 치켜세운 손가락, 이건 이라크의 독제자 사담후세인이 분명했다. 왜 후세인의 동상이 이곳에 세워져 있었던 것인가?


Protesters gathered at the statue of Turkish President Recep Tayyip Erdoğan installed in the German
SEBASTIAN STENZEL/AFP/Getty Images.

독일 비스바덴 비엔날레에 세워진 에르도안 대통령 조각상 / 철거 중인 조각상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동 조각상의 대상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드로안 터키 대통령이었다. 비엔날레에 현직 대통령의 조각상을 죽은 후세인 조각상과 동일하게 제작하여 세운 것이다. 시장은 “이건 예술이 아니다. 선을 넘었다.”라고 주장하며 비엔날레가 시작된 다음 날 안전과 안보를 위해 조각상을 철거했다. 단 하루였지만 조각상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조각상을 가운데 두고, 에르도안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간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조각상이 철거된 다음날, 비엔날레 감독 마리아 막달레나 루즈윅(Maria Magdalena Ludewig)과 마틴 해머(Martin Hammer)는 조각상을 설치한 이유를 ‘불편한 대화를 끌어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동 조각상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아니었을 수도, 후세인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단지 4m의 황금색 조각상, 남성 모양을 한 조각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수 있다. 동상에는 그 어떠한 이름도 써 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단 몇 시간만에 모여 동상을 에르도안으로 믿고, 후세인을 형상화했고, 에르도안도 후세인과 같은 운명에 놓일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 몇 시간만에 동상은 욕설과 낙서로 뒤덮였다. 그렇게 그 동상은 에르도안이 되었고, 독일과 이란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되어 철거되었다. 누가 황금색 동상을 현직 대통령으로 만든 것인가? 작가인가? 큐레이터인가? 사회인가? 국가인가? 후세인인가? 사람들은 믿고 싶은대로 믿는다. 그리고 문화와 예술은 정치사회와 분리불가능의 관계이며, 이용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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