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 지글러, Flesh in the age of reason
날씨가 한 몫을 한다. 비가 오다가 갑자기 구름이 걷히더니 햇살이 드리운다. 주변의 색이 계속해서 바뀌는 2019년 3월 20일 토요일 낮, 한 쪽 벽면 전체가 유리창인 PKM 갤러리 별관에서 Toby Ziegler의 작품을 마주한 건 꽤나 좋은 기회이다.
PKM 갤러리가 4월 30일까지 영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토비 지글러(Toby Ziegler, b.1972)의 작품전 ≪이성(理性)의 속살≫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PKM과 토비 지글러의 4년만의 재회이다.
토비 지글러는 고대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과거 예술품에서 출발하여, 그 원본 이미지를 컴퓨터 디지털 프로그램으로 변환해 금속, 합성 소재 등의 현대식 재료에 입힌 후, 이를 사포질, 페인트칠과 같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해체하는 일련의 복잡한 과정을 통하여 다양한 의미와 층위가 한 화면에 압착되는 특유의 작업을 선보여왔다. PKM 갤러리는 이번 전시에서 역사적 미술품의 한 부분, 특히 손, 발 등의 신체 이미지로부터 기인한 회화와 조각, 영상 신작 10점을 새롭게 공개한다.
지글러 작업을 국내에 꾸준히 소개한 PKM갤러리는 "많은 예술가가 요즘 들어 고민하기 시작한 화두, 즉 디지털 사회에 고전을 어떻게 다시 이해하고 고유한 작업으로 풀어낼지를 지글러는 일찌감치 진지하게 고민해왔다"고 강조한다. (PKM 갤러리 보도자료 참고)
캔버스와는 다른 바탕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알루미늄 패널이 눈에 들어왔다.
세련되고 중성적이며 지나치게 산업적이지 않은, 독특한 재료라는 점에 꽂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2019년도 완성작 <Flesh in the age of reason 6>의 강렬한 적갈색 획이 시선을 압도한다. 그 뒷면에 있는 것이 커튼인지, 벌거벗은 한 남자를 인도하는 여인인지, 쪼개진 화면 뒤 그림은 관찰자의 해석 없이는 이해되기 어렵다.
관람객의 의무감을 뒤로한 채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알루미눔판 위에 작업한 다른 이성의 속살 페인팅 작품들이 여기저기서 연한 빛으로 반짝인다.
유리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의 각도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하는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형광색, 흰색의 선 뒤로 또 다시 낮은 픽셀의 화면이 자세히 좀 봐달라고, 내가 누군지 알아봐 달라고 아우성치는 듯 늘어서 있다. 넘쳐나는 가상세계의 현실 속에서 과거의 찬란했던 위상을 자랑했던 고대 작품들은 지금 이순간 단순히 부분 부분 복제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다가 하마터면 투명한 바닥에 놓인 3D 프린팅 조각을 지나칠 뻔한다. 못 보고 발로 뻥 차기라도 했다 간, 부숴질 것처럼 약해 보인다. 마치 미꾸라지를 잡는 그물처럼 생겼는데, 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는 물건이다. 이 항아리(원래 이름은 클라인 면이고, 오역으로 병으로 해석된다. 2차원 공간에서 뫼비우스의 띠로 많이 알려져 있다)에는 무언 가를 담을 수가 없다. 우리가 사는 3차원 세상의 한계로 끝과 끝이 구분되어 보이지만, 안과 밖의 면이 연결되어 있는 클라인 항아리는 물을 담아도 담아도 결국에는 흘러내리고 만다. 그냥 지금 이순간의 공기와 소리, 시간만을 담을 뿐이다.
시각에 집중하고 있는 나머지 소리에 대한 감각이 없어졌었다. 문득 어디에선가 드럼소리가 들린 다는 걸 깨닫는다. 사람들이 사는 동네인만큼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의 연주이겠거니 여겼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 연주, 감상을 방해할 정도로 계속되는 같은 템포와 음정으로 두들기는 소리가 서서히 거슬리기 시작한다. 약간 곤두선 신경으로 1층에서 지하로 향한다.
빛이라곤 컴퓨터 작업으로 보이는 작품 안에서 발하는 회색 빛이 전부다. 편안하던 마음이 갑자기 약간 불편해짐을 느낀다. 불을 켜도, 다시 켜보아도 계속 어둠이 가시지 않을 것만 같다. 멈춰 있는 영상 속에 발과 손은 더욱 위협적으로 보인다. 더 이상 그 공간에 있고싶지 않아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틱, 틱, 틱, 드럼소리가 들린다. 지겹도록 반복되던 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들어낸 것이다.
그 정체는 생각보다 더욱 끔찍하다. 수백개의 이미지가 계속 흘러간다. 중간 중간 보이는 화염속 사람과 피투성이의 팔과 다리, 꿈틀거리는 세포들의 이미지들이 마치 2차원 만화 촬영기법처럼 균일한 모습으로 1분여간 흘러간다. 그리고 다행히 드럼 소리가 사그라들고, 고요한 어둠으로 돌아왔다. 마치 빛이 생기기 직전의 상태처럼.
무엇보다 디지털 시대의 인체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고 싶었다.
계속 혼자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만 한다. 이건 뭐지? 대체 의도는 뭘까?
갤러리를 갈 때마다 느끼는 아쉬운 부분이다. 작품 하나 하나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 단 하나의 PKM Gallery 보도자료만이 작가의 의도를 설명해줄 뿐이다. 대략적으로 ‘아, 이런 의도구나’라는 방향을 제시해줄 뿐, 이 작품은 왜 하필 손을 배경으로 선택했고, 저건 왜 하필 발일까, 과연 누구의 발인가? 무슨 작품의 일부분인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오롯이 해석은 관람객의 몫이다. 보도자료와 그림을 동시에 잘 살펴보지 않는 이상 작품의 이름과 재질조차 알 수가 없다. 조금, 아주 조금만 더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