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사라진 어머니신, 신은 왜 남자로 남았을까?

여신 신화의 삭제와 가부장 구조의 형성

by 은이영

나는 17년째 회사를 다니는 직장 여성이다.

내가 속한 조직에 근 30명 되는 팀장 중 유일한 여성 팀장이다.

2025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가부장적 조직과 권력 구조의 단면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설계되어 있을까?


이 질문은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선사시대는 여신의 시대였다.


기원전 30,000년 전부터 3,000년 전 사이 고고학이 그것을 증거 한다.

- 빌렌도르프의 비너스(BC 25,000)

- 차탈회위크 유적 (BC 7500-5700)

- 크레타 미노아 문명 (BC 3000-1100)

특징은 풍만한 여성성, 출산과 풍요의 상징, 그리고 뱀, 새, 곡물과 함께 표현되었다.


농경사회였기에 씨앗을 땅에 뿌리고 수확하는 것이 여성이 임신을 하고 출산하는 것에 비유되었다.

땅=자궁이었고 여성만 생명을 잉태할 수 있었다.

이것은 경외감이었다.


수메르와 바빌론에서는 이난나와 이슈타르는 사랑과 전쟁, 풍요를 상징하는 최고신급이었다.

이집트에서 이시스는 마법과 치유, 생명의 상징이었고, 오시리스를 부활시킨 존재였다.

그리스의 가이아는 대지의 여신이자 모든 신의 어머니였고 데메테르는 농업과 곡물을 상징했다.


그런데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전환점이 생겼다.


전쟁 국가가 등장했다. 작은 농경마을들이 큰 도시국가로 발전하고 제국이 되었다. 전쟁과 정복을 위해 군대가 필요했고 남성들이 전사가 되었다.

금속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어 청동무기가 발전하고 전쟁기술이 발달했다. 군사력은 권력이 되었다. 기원전 1,200년 전부터는 철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더 강한 무기가 제조되고 대규모 전쟁이 이뤄졌다.

남성 전사의 가치가 상승하고 남성신이 부각되기 시작된 것이다.


구체적인 전환 사례들이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3,000년 전 여신 이난나는 최고의 신이었다. 사랑과 전쟁의 신이었으며 풍요를 상징했다. 그러나 기원전 2,000년 전에는 마르둑이라는 남자신이 나타나 바빌론의 수호신이 되었고 이난나의 권력을 흡수해 신들의 왕이 되었다. '에누마 엘리시'라는 창조 신화에 따르면 마르둑이 여신 티아마트를 죽이고 시체로 세상을 창조한다. 남신이 여신을 제압하는 신화로 정당화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의 미노아에서 기원전 3,000년 전부터 기원전 1,100년까지 크레타 섬은 여신이 중심이었고 뱀여신이 존재했다. 평화로운 사회였다. 그러나 기원전 1,600년 전 미케네에서 침입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인도와 유럽어 족이 전사 문화를 들고 들어와 미노아를 정복했다. 결과적으로 남신인 제우스는 하늘의 아버지, 최고신이 되었고 여신들은 아내와 딸로 격하되었다. 제우스의 아내로 유명한 헤라는 원래 독립적인 여신이었으나 질투의 상징이 되었고 아테나는 어머니 없이 제우스 머리에서 출생하였다. 아프로디테는 성적 대상화가 되었다. 여신의 권력이 축소된 것이다.


히브리/유대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원전 1,500년 전부터 기원전 1,000년 전까지 아세라는 어머니 여신이었고 야훼와 아세라는 부부신의 개념이었다. 기원전 600년 전 이후부터는 야훼는 유일신이 되었고 아세라 숭배는 금지되었다. 아세라 우상은 파괴되었고 여신 숭배는 이단이 되었다.


켈트/게르만 족도 초기에는 대지의 여신이 풍요와 치유, 마법을 상징했으나 기독교 도입 이후 여신들은 성녀로 전환되거나 마녀로 악마화되었다. 켈트 여신이었던 브리기트는 성 브리지드로 성녀화 되었고 북유럽 여신인 프레이야는 마녀의 원형이 되었다.


신화가 완전히 재작성된 것이다.


예전에는 여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남신이 여신을 죽이고 창조되었다.

권력의 구조도 한몫했다. 사회적으로 가부장제가 확립되자 종교적으로도 아버지신이 확립되었으며 종교가 사회를 정당화하고 또 사회가 종교를 강화하는 순환구조가 생겼다. 여신 신전은 파괴되었고 여사제는 살해되었다. 바빌론에서는 이난나 신전을 파괴했고 유대교에서는 아세라 우상을 파괴했다. 기독교에서는 이교 신전을 파괴했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음모론들도 존재한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어머니신을 말살했다는 것이다. 여신 숭배 흔적을 의도적으로 제거하고 고고학 증거를 무시하거나 파괴했다는 가설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많은 여신상 머리가 잘렸고 신전이 파괴되었으며 경전에서 여신 언급이 삭제되었다.

초기에 여사제가 권력을 장악했지만 남성들이 전쟁으로 종교의 권력도 장악되었다는 쿠데타설도 있다. 실제로 기원전 3,000년 전에는 여사제 중심이었으나 기원전 2,000년 전으로 들어서면 남성 사제가 증가했으며 기원전 1,000년이 되면 여사제가 거의 사라진다.

출산의 신비가 해결된 것도 한몫을 했다. 선사시대를 지나면서 아기를 낳는데 남성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물을 사육하고 가축화된 시기가 남신이 부상된 시기랑도 겹친다.

여신의 상징이었던 뱀도 재생과 치유의 상징에서 악마화가 되었다. 여신숭배를 억압하기 위해서라는 설이 존재한다. 뱀은 사탄이 되었고 이브는 죄의 상징이 되었으며 여성성은 전체적을 악마화되었다.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은 여신 숭배 잔재를 제거하는 계기로 삼았다는 의견도 있다. 여성치유사는 옛 여사제였고 약초지식은 여신의 전통이었다. 그때 당시 4~6만 명이 처형되었는데 80%는 여성이었고 그들의 대다수가 치유사, 산파, 혹은 약초사였다. 이때 여신문화가 완전히 말살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가부장제는 계속 지속되고 있다. 남신인 종교가 여성은 복종하고 억압해야 할 대상이란 것을 정당화하는 순환구조도 이어진다. 어머니를 뜻하던 땅은 상실되었고 자연은 착취대상이 되었다.

정말 근현대에 들어서야 어머니신을 회복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페미니즘과 생태주의가 그중 하나이다. 여신문화를 연구가 늘어나고 고고학이 재해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가부장적 조직와 권력의 구조는 아직도 유효하고 체감되고 있다.

고대 여신의 제거가 현대 여성 억압으로 이어지는 이 메커니즘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글에서는 5,000년간 지속된 여신제거사건이 최근 100-200년 만에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1편: 사라진 어머니신, 신은 왜 남자로 남았을까?
여신 신화의 삭제와 가부장 구조의 형성

https://brunch.co.kr/@eun-e-young/23


2편: 너무 빠르게 회복된 여성 인권, 그리고 음모론

회복이라는 말은 누가 정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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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초월적 권위의 이동, 새로운 '신'의 등장.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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