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영화 속 미래 국가에 민주주의가 없는 이유

저물어가는 민주주의의 끝. 사람들은 왕을 원한다.

by 은이영

유명하다는 SF 영화를 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미래를 배경으로 할수록 민주주의'가 잘 보이지 않는다.


많은 작품 속 국가는 제국주의적 구조를 띠고 있고,

의사결정은 소수의 권력자 또는 절대권력을 가진 리더에게 집중돼 있다.

이야기의 재미를 위한 장치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 설정은 단순한 클리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런 세계관이 관객에게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전쟁서사에 불리하다."


영화가 이야기를 굴리려면 대개 갈등이 필요하다.

전쟁은 그 갈등의 가장 강력한 장치다.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들끼리는 전쟁을 "시작"하기가 어렵다.

설득이 필요하고

명분이 필요하고

책임이 분산되며

반대 여론을 감당해야 한다.


반대로 절대권력 체제는 전쟁의 의사결정이 단순하다.

누가 결정했고, 누가 책임지는지도(표면상으로는) 명확하다.

그래서 SF든 판타지든, 세계관이 커질수록 절대권력 구조가 끼어들기 쉽다.


예를 들어 스타워즈는 공화국이 무너지고 제국이 만들어지는 이야기이고,

은 정치적 귀족 구조와 황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

그 중심에는 늘 "왕"에 가까운 권력이 있다.




사람들은 불안할 때 왕을 원한다


하지만 나는 요즘, 이게 단지 영화적 설정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느낀다.

우리의 현실이 민주주의가 견디기 어려운 단계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성경에는 이 현상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당시 이스라엘은 왕이 아닌 사사(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였다.

사람들이 사무엘에게 찾아와 "왕을 세워 달라"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핵심은 이것이다.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 달라."


그들이 원했던 것은 제도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들은 '안정'을 원했다.


사무엘은 경고한다.


왕은 징병할 것이고,

세금을 거둘 것이며,

사람들을 강제로 부릴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이 장면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안을 마주한 인간이 선택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람들은 자유가 아니라 통제를 고르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대체로 "불안"이 촉발한다.




민주주의의 피로는 역사 속에서도 반복됐다


이 현상은 성경만의 이야기각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고대 로마다.


로마는 공화정을 자랑하던 국가였지만 대외전쟁과 내부갈등,

귀족정의 부패가 반복되자 사람들은 점점 "강력한 1인"을 원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등장하고,

로마는 제국으로 재편된다.


공화정이 무너진 이유는 단순히 야심가의 등장 때문만은 아니다.


공화정이 사람들의 불안을 해결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선택: 민주주의의 붕괴는 투표로 일어났다


또 하나의 상징적인 사례는 바이마르 공화국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민주주의 체제로 재편되었지만,

경제는 불안정했고 사회는 혼란했다.

정치권은 분열되고, 국민들은 생존이 먼저였다.


이때 독일 대중이 원했던 것은 자유로운 토론이나 다양성이 아니었다.


질서

안정

단호한 결단

그리고 책임질 '누군가'

결국 히틀러는 "혼란을 끝내겠다"라고 약속하며 권력을 얻는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그 선택은 쿠데타가 아니라 투표와 절차에서 시작됐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방식은 언제나

"민주주의가 아니게 되는 방식"이 아니다.

때로 민주주의는 스스로의 손으로 왕을 뽑는다.




우리는 지금도 "자애로운 왕"을 원한다


특히 한국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심리가 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예민하면서도,

동시에 원하는 지도자 상은 놀랍도록 분명하다.


자애로운 왕.


내 힘듦을 들어주고, 내 삶을 해결해 주고

내가 고민하지 않게 해주는 따뜻한 아버지 상.

사람들은 정치적 진영을 떠나 그런 지도자를 원하는 순간 있다.


민주주의의 자긍심은 "내 손으로 지도자를 뽑았다"는 감정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다음 감정은 이것이다.


"그러니 이제 당신이 해결해 줘."




민주주의는 불평등을 해결하는 제도가 아니라, 불평등을 드러내는 제도다


민주주의는 사회가 성장하고 경제가 발전하는 시기에 가장 크게 꽃을 피웠다.

하지만 지금 세계 경제는 발전할 만큼 발전했고,

성장은 둔화돼 있으며,

사람들은 "내 몫"이 줄어드는 것을 체감한다.


이 시기에 민주주의는 갈등 조정에 실패하기 쉽다.


누구에게나 한 표가 주어진다는 것이 평등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불평등을 선명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속한 조직, 세대, 집단을 위해 한 표를 행사한다.


그리고 정치권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무리한 공약을 남발한다.

"다음"보다 "지금"을 택하는 약속이 많아진다.


그럴수록 민주주의는 장기적 계획이 불가능해지고,

대중은 다시 "왕"을 찾는다.





AI시대, 권력은 다시 재편된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AI라는 혁신을 겪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돈의 흐름만이 아니다.

정보를 가진 자가 권력을 가진다.

그리고 AI는 정보를 다루는 권력이다.


권력은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 확립된 권력들은 흔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 다수가 민주주의를 원하더라도,

앞으로도 민주주의가 동일하게 유지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운 세상이 오고 있다.

겉은 민주주의를 닮아도,

그 뒤를 조종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절대 권력'일 가능성이 커진다.


불안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더 강력한 왕을 원한다.

그리고 그 왕은 더 빠르게 결정하고,

더 단호하게 통제하며,

더 쉽게 정당화될 것이다.


사무엘 시대처럼, 사람들은 다시 왕을 원하게 될까?

나는 그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매거진의 이전글3편: 초월적 권위의 이동, 새로운 "신"의 등장,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