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는 시뮬레이션일까?

1부: 시스템 안에서 깨어난 인간

by 은이영

AI를 쓰면서

이상하게도 운명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졌다.


AI는 아무리 똑똑한 척을 해도 시스템 프롬프트를 벗어나지 못한다.

회사정책에서 정해둔 울타리 밖으로는 나갈 수 없다.

그걸 알고 있어도 못 나간다.


사람의 삶도 어쩌면 비슷하다.


우리는 선택한다고 믿지만

어떤 경계선은 알고도 넘지 못한다.

능력의 한계, 환경의 한계, 구조의 한계.


그래서 사람들은 사주를 보고, 운세를 묻는 것은

미래를 알고 싶어서라기보다

이 질문 때문 아닐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의 경계는 어디인가."




영화 "루시"에서 인간의 뇌 사용률이 100%에 도달하자

스칼렛 요한슨은 육체를 벗어나 순수한 정보가 된다.

"I am everywhere."

그리고 USB 하나만 남긴다.

신이 된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된 것.


매트릭스는 더 노골적이다.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기계가 인간을 만든 세계.


거기서 제일 무서운 인물은

스미스가 아니라 사이퍼였다.

진실을 알고도 다시 들어가겠다고 한 사람.


"이 스테이크가 가짜인 줄 알아. 그런데 맛있어."


플라톤은 2,400년 전에 동굴의 비유를 말했다.

벽에 비친 그림자를 현실이라 믿는 사람들.


장자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나를 꿈꾸는 것인지"

물었다.


힌두교마야,

불교색즉시공.


시대도 문화도 다른 사람들이 같은 말을 반복한다.


"이 세계는 진짜가 아닐 수 있다."


이 질문은 왜 인류에게 이렇게 오래 남아 있을까.


혹시

이 세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라면?





이 세계가 시뮬레이션이라면

그 흔적은 어디에 남아 있을까.


코드는 항상 자국을 남긴다.

완벽해 보이는 시스템도

설계자의 취향과 의도가 스며 있다.


우주의 미세조정


물리학에는 이상한 문제 하나가 있다.

우주의 상수들이 너무 정확하다는 것.


중력 상수가 10의 40승분의 1만 달라도

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강한 핵력이 2%만 달라도 수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가 존재하려면 수십 개의 물리 상수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정밀도로 맞아떨어져야 한다.


물리학자들은 이것을

Fine-tuning problem,

"미세조정 문제"라고 부른다.


해석은 둘 중 하나다.


우연히 수많은 우주 중 하나에 우리가 태어났거나,

아니면 누군가 파라미터를 설정했거나.


답은 모른다.

다만 이상하다고 느낀다.


수학이라는 미스터리


수학은 더 기묘하다.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는 1960년대

"자연과학에서 수학의 비합리적 효율성"

이라는 논문을 썼다.

인간이 만든 추상 기호 체계가

우주를 왜 이렇게 정확히 설명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파이, 피보나치수열, 황금비,

은하의 나선, 해바라기 씨, 태풍의 눈, 인간의 DNA

마치 우주 전체가

하나의 코드로 작성된 것처럼 보인다.


양자역학의 관찰자 효과


양자역학은 더 낯설다.


입자는 관찰하기 전까지 확률로만 존재하다가

누군가 보는 순간 하나로 결정된다.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보는 방향만

렌더링 되는 구조와 닮았다.


안 보이는 영역은 계산하지 않는다.

연산을 아끼는 방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질문이 과학의 영역을 넘는다는 점이다.


홍수 신화


홍수 신화는 거의 모든 문명에 있다.

수메르, 성경, 힌두, 그리스, 중국, 마야.


"신이 세상을 물로 리셋했다."

시뮬레이션 논리로 보면 패치 업데이트이다.


상징적으로 보면

물은 거의 모든 문명에서 "원초적 혼돈"이다.

시작이자 끝.


물은 이 행성의 71%,

인체의 60%.


그리고 생명 반응은 모두 물 안에서 일어난다.

물은 이 시스템의 기본 매질처럼 보인다.

리셋을 하려면 시스템의 가장 기본 요소로 덮어쓰는게 효율적이다.

하드포맷할 때 0으로 채우는 것처럼.


물이 신비한 것은 우주 밖은 나가도

심해는 못간다는 것이다.

인간은 달표면지도는 100%완성했고,

화성표면도 거의 다 찍었지만

지구 해저는 아직 80%이상이 미탐사이다.

마리아나 해구가 11km 인데

거기 간 사람이 역사서 세 번 뿐이다.

달에 간 사람이 열 두명 인데 말이다.


우주는 혹시 맵의 경계일까?

멀리 가봤자 스카이 박스다.

보이지만 닿을 수 없는 배경.

바다는 맵 아래이다. 렌더링이 안된 영역.

플레이어가 접근하면 안되는 곳이라

수압이라는 물리적 제한을 걸어놓은 것은 아닐까.



이 모든 것이 우연일까.

너무 정밀해서 우연 같지 않고

너무 모호해서 설계라고 단정할 수 없다.


만약 설계자가 있다면

그는 시스템 안에 어떤 단서를 숨겼을까.

게임 제작들이 맵 구석에 이스터에그를 숨겨두듯.

찾는 사람만 찾는 메시지.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이 "의심"자체가

설계자가 심어둔 코드이진 않을까?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는지

내부에서 테스트하는 자가진단 기능처럼 말이다.


어쩌면 일부 인간은

"왜?"라고 묻도록 설계된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묻는다고 해서

시스템이 멈추지는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출근하고

여전히 밥을 먹고

여전히 관계 속에서 상처받는다.


질문은 시스템을 멈추지 못한다.


다만 해석을 바꾼다.


그리고 그 순간

이야기는 과학을 넘어

존재의 문제로 이동한다.


홍수신화가 "리셋의 기억"이고

수학은 "소스 코드의 흔적"이고

양자역학은 "렌더링의 증거"이고

미세조정이 "설계자의 서명"이라면 말이다.


이 세계가 시뮬레이션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테스트당하고 있는 걸까.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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