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는 시뮬레이션일까?(2)

2부: 시뮬레이션 속, 우리는 무엇을 시험받고 있을까.

by 은이영

(1부에서 이어서)


만약 이 세계가 시뮬레이션이라면

가장 이상한 존재는 인간이다.


돌도, 바다도, 별도

자기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이게 전부인가?"라고 묻는다.


시스템 안에서

시스템을 의심하는 존재.


이건 오류일까.

아님 의도일까.


의식은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신경세포의 전기 신호가 모이면

왜 "자아"가 생기는가.


왜 우리는 자기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가.

뇌가 세상을 인식하는 것과

"내가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마치 게임 캐릭터가

자신이 NPC인지 플레이어인지

고민하기 시작한 것처럼.


"이 세계는 가짜일 수 있다."


왜 이런 생각이

인류 전체에 반복되는 걸까.


융은 이를 집단 무의식이라 불렀다.

인류가 공유하는 원형적 기억.


어쩌면 이것은 기억이 아니라

직감일지도 모른다.


"이 세계 너머에 뭔가 있다"는 감각.


시스템 안에 사는 존재가

바깥의 설계를 감지하는 순간.


"이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


이 감각은 사람을 조용히 바꾼다.


시지프스를 떠올린다.


카뮈는 말했다.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돌은 여전히 굴러 떨어진다.

시스템은 그대로다.


하지만

의식은 의미를 부여한다.


돌을 밀어야 하는 이유는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다.


시스템 안에서

해석의 주도권을 쥐는 것.


그게 의식의 역할이라면

이 세계가 시뮬레이션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달라진다.


의식은

현실의 증거가 아니라

태도의 증거다.


이제 질문은 바뀐다.


이 세계가 진짜인가?

가 아니라,


이 세계 안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 중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 있다.


사랑.






이 세계가 시뮬레이션이라면

고통도 조건이고,

죽음도 조건이고,

시간제한도 조건이다.


게임이 재미있으려면

제약이 있어야 하니까.


무한 체력에

무한 시간에

실패가 없다면

선택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에

이토록 많은 한계가 설정된 이유는 뭘까.


수명은 유한하고

기억은 흐려지고

몸은 늙도

관계는 멀어진다.


모든 것이 불완전하다.


이 조건 안에서

무엇이 테스트되고 있는 걸까.


나는 한 가지가 자꾸 걸린다.


사랑.


진화론으로 설명하면

사랑은 유전자 보존 전략이다.


호르몬 분비,

옥시토신,

도파민.


신경 전달 물질의 조합.


그렇게 말하면 설명은 된다.


그런데 설명이 끝났다고 해서

사랑이 끝나지는 않는다.


사람은

자기 생존에 불리한 선택을 한다.


내 유전자와 상관없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고,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평생 기다리고,

이미 떠난 존재를 위해

계속 살아낸다.


이것은 전략이기엔

너무 비효율적이다.


만약 설계자가 있다면

왜 이런 코드를 심어놨을까.


수학이 소스코드의 흔적이고

미세조정이 설계자의 서명이고,

물은 설계자의 지문 같은 것이라면,


사랑은

설계자의 의도 아닐까.


시스템의 모든 것이 설명할 수 있어도

사랑만은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다.


우리는

왜 누군가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플까.


왜 멀리 있어도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까.


왜 "의미 없어"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누군가를 위해

하루를 버틸까.


시뮬레이션이라면

사랑은 가장 이상한 변수다.


확신도 없고,

보장도 없고,

증거도 없는데

사람은 선택한다.


사랑하기로.


어쩌면

이 시뮬레이션의 목적은

현실 증명이 아니라

사랑의 증명일지도 모른다.


고통이 있어야

사랑이 드러난다.


죽음이 있어야

붙잡는 손이 의미를 가진다.


시간이 유한해야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해진다.


제약이 있어야

사랑은 선택이 된다.


아무 조건이 없다면

사랑인지 아닌지 알 수 없기에

이 세계는

이렇게 빡빡하게 설계되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실험체가 아니라

증명자일지도 모른다.


이 세계가 진짜인지 아닌지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안다.


이 세계가 시뮬레이션이어도

사랑은 아프다.

그리고

사랑만이 유일하게

시간과 공간, 죽음 등

우리 앞의 수많은 제약을

모두 뛰어넘는다.


가짜 세계에서

유일하게 진짜인 것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남는 것은 그것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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