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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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이

모든 것으로부터 쉼을 얻고 싶나요?

당신만의 방을 만들어 드립니다.

- M -


군중 속을 헤집어가며 작고 촘촘한 계단에 올라섰다.

넓고 커다란 아스팔트 도로에는 크고 작은 갖가지 모양과 색을 띤 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움직임이 없어 보인다. 초록불이 켜진 건널목을 건너 걷는 거리는 뭉쳐 있던 인파(人波)가 어디론가 스르르 스며들고 빠져 사라지는 메마름을 재촉한다.


현기증을 동반한 혼란스러움을 긁어 새겨 놓은 그라피티로 채워진 골목에는 공기 속 호흡이 느껴지지 않는다.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으로 헤매고 있을 때, 거대한 여자 얼굴 그라피티가 나를 삼킨다. 여자의 커다란 입속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탑승하는 순간 입실 절차가 시작된다. ‘0’ 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M’을 만난다. 그녀의 방 입실은 돈도 시간도 필요치 않은, 매우 단순하고 쉽다. 입실 조항(條項)은 한 가지, 나오고 싶을 때 언제든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면 된다.

방 호수는 모두 ‘0’ 호실이다. 수십 개의 방문 앞에 아슬아슬 간당간당 매달려 있는 숫자‘0’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위태함으로 간신이 달려 있다.


들어가는 손잡이가 없는 ‘0’ 호실 문 앞에 서면 문이 열린다. 방에 들어섰을 때, 문 안쪽에만 있는 손잡이를 잡아당겨 문을 닫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냄새도 소리도 없는 투명하고 고요한 어둠만 존재하는 공간. 비로소 모든 것으로부터의 쉼을 얻었다. 어둠에 안겨 잠이 들고 진실이 보이는 자유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