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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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이

부르 스르르 부르 스르르….

조용한 바람에 섞여 날리는 연약한 빗물은 위태하게 스러질 듯 기울어 두서없이 군데군데 부서진 시멘트 벽돌 담장을 무채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담장 아래 이름 모를 무성한 잡초마저 생령(生靈)을 놓아 버린 듯, 이슬 먹을 기운 없이 널브러져 있다. 어디서 어떻게 존재하다,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는 깨진 플라스틱 용기는 마당 흙더미에 묻힐 듯 말 듯 내동댕이쳐 있고, 가는 바람결에 녹슨 강철 지붕 끝자락의 움직임만이 작은 아우성이 되어 모든 고요에 노크하듯 인기척을 불러 본다. 그리고 소리….


“아 씨발, 제발 죽어버려. 그냥 죽으라고.”

그리고, 기준도 방향도 모양도 추측할 수 없는 반복적 진동….

팅, 딩, 당, 덩.

“미친년, 그런다고 뱃속 애가 죽냐? 네 배만 아프지. 무식하기는…. 나오면 어디 부잣집 앞에 가져다 놓자.”

“나오다 뒈져버렸으면 좋겠어. 살아 나오면 버리고 갈 거야.”

“진짜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우리 할마시가 그랬어! 제 먹을 복은 지가 타고난다고. 죽든 살든, 지 복이야.”

“야, 여기 곧 무너질 것 같은데, 깔려 죽으면 어쩌려고?”

“아~ 몰라. 나오기 전에 내가 죽을 것 같아. 우리 할마시가 옛날에 한참 절에 돈 갖다 바칠 때, 어떤 임산부가 죽으려고 산속에 목맨 것을 보고 절에 알려 살렸데, 뱃속 애도…. 아~ 씨발 아파.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아무리 살리려 해도 죽는 게 세상 이치래.”


소리와 진동에도 방은 안전하게 꼼틀거리는 생명을 지켜주었다. 쫀득쫀득한 걸쭉함과 쫄깃쫄깃한 액체로 채워진 방에서 구르고 뒤척이며 잠을 자고, 깨었다, 다시 잠이 들었다. 어느 날 쫀득한 걸쭉함이 말라 가고, 쫄깃한 액체가 점점 흘러 나가는 듯하더니, 그녀의 방은 허물어져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녀는 밀려가고 싶지 않아 버텨보지만, 방은 그녀를 아주 거세게 밀어내고, 밀고 있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생명은 울음마저 내뱉을 권리조차 없는 부정한 존재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주변을 갸웃거려 보지만, 보이는 것은 없다.


울렁불렁한 안전함과 편안함으로 보호해 주었던 방은 공기 빠진 풍선 껍질이 되어 버려지고, 어둠이 드리워진 눅눅함과 딱딱한 부딪침이 감싸는 세상과의 첫 만남은 공포다. 그리고 또 소리….

“아~ 씨발, 존나 아파."

“진짜 징그럽다.”

"아씨 더러워 저쪽으로 치워버려. 그 씨발 새끼 때문에...”

“할 때마다 지저분하고 추잡한 짓은 다 시키고 돈은 제때 주지 않았다는?”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서, 정신이 나간 놈이었다니까.”

“한의사라는 영감탱이 말하는 거지?”

“그런 놈이 어떻게 사람 고치는 의산지?”

“네가 임신했다고 했더니, 돈은 안 주고 다른 놈 씨 밴 채 와서 속이냐고 윽박지르고 연락 끊었다며….”

“천벌 받고 뒈졌잖아.”

“진짜야?"

"며칠 지나서 돈 받으러 다시 갔더니, 뒈져서 장례 치르더라니까."

"대박! 여기서 나가자, 정말 버리고 갈 거야?”

“더러워서 만지기도 싫어. 목욕탕이나 가자.”


그렇게 그녀는 허물어지는 방에서 밀려 나와 허물어져 가는 빈집에 남겨져 있었다.

길고양이 혓바닥 촉감은 처음 느껴보는 세상의 촉촉함이고, 벌레들의 움직임은 느끼고 싶지 않은 간지러움이다. 아득한 먼 곳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입술의 생기를 불어넣었고, 그녀는 입 밖으로 소리를 내다 쉬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그녀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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