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머슨의 《자기 신뢰》를 읽다가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나는 에머슨 같은 아버지와 유리잔 같은 엄마 밑에서 자랐다.
두 분의 생각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달라 혼란 속에서 26년을 살아왔다.
결혼을 통해 독립하며 살아온 지금의 삶에도 두 분의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 있다.
굳이 어떤 점이 나에게 더 많은 영향을 주었을까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말이 더 크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너 자신을 믿어라.”
예전에 심리학을 공부하며 인성을 알아보는 임상 테스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초자아’가 비대하게 발달한 성향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양심과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이 강하다는 의미였다.
그 결과를 보며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엄마와 버스를 탈 때였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먼저 타지 못한다고 혼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줄을 어기거나 순서를 무시하는 일이 늘 불편했다.
아버지가 함께 계실 때는 상황이 달랐다.
질서를 어기거나 순서를 무시하는 일은 아버지가 엄하게 보셨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바르게 사는 게 정답이다.”
그리고 덧붙이셨다.
“남이 하는 말보다 네 양심을 믿어라.”
반면 삶의 질서와 도덕성보다 그때그때 상황과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엄마의 태도와는 자주 부딪혔다.
나는 융통성 없고 미련한 아이라며 혼날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교회를 찾아 자신의 죄를 사함 받았다는 믿음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이 어린 나에게는 조금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 역시 삶에서 두려운 결정을 해야 하거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려움이 밀려올 때면
도덕성이나 내 안의 규율만으로는 나를 온전히 붙잡기 힘들었다.
그럴 때면 하나님을 찾아 교회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내 안에서 나에게 말을 건네는 양심을 붙잡고 살아온 셈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교회에 계신 하나님과 내 안에서 나를 이끄는 그 목소리가
어쩌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자기 신뢰》를 설파하는 에머슨의 말이 더 깊이 와닿는다.
사람은 사실 다 알고 있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가 바로 나라는 것을.
그럼에도 그 말을 따르기 힘들어 죄를 짓고,
다시 용서를 구하며 신을 찾는다.
결국 내 안에 존재하는 신과 만나 하나가 될 때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되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50대가 되어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점점 모든 것을 알아가는 지혜로 살아갈 앞으로의 시간을 생각하니
나이를 먹고 늙는다는 것이 두렵기보다 오히려 행복한 일처럼 느껴진다.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는
세상 속에 섞인 이도 저도 아닌 나로 살아가느라
얼마나 어깨와 얼굴에 힘이 들어가 있었던가.
사실은 힘을 빼고 살아도 된다.
삶이 직관으로 표시해 주는 방향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 되는 것인데.
그걸 몰라 나를 믿지 못하고 흔들리던 나를
다시 제자리로 이끌어 준 책이 바로 《자기 신뢰》였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너 자신을 믿어라.”
삶의 진리를 알려주신 아버지께 감사한다.
그리고 사랑해요, 아빠.
이제 남은 삶도
남의 말보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를 믿으며 살아가려 한다.
20화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50, 나는 건너가는 중입니다〉를 함께 건너와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