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 음식점은 깔끔한 내부에 열린 주방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 외벽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산갈치 모형이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답지 않게 부담스러울 정도의 깨끗한 제복을 입은 종업원들이 입구부터 일렬로 서서 첫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종업원들의 가슴에는 익숙한 녀석이 달라붙어 너울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 쪽 벽면에는 변사장과 윤이 악수를 하며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나는 윤에게 산갈치 디자인이나 변사장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괜히 비밀을 만든 것 같아 오래 머물기가 껄끄러웠다. 그래도 이 음식점의 주인이 왜 윤인지는 조금 알고 싶었다. 요리만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가게를 내게 된 건지, 원래 사업의 뜻이 있었던 건지, 이 정도 가게를 차릴만한 자본을 모으려면 꽤 걸렸을 텐데 원래 집이 부자인 건지, 혹시 변사장과 가까운 사이인지 등등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한 번 얘기를 꺼내게 되면 변사장과 나의 관계며 이것저것 나에 대한 이야기들로 넘어올 확률이 높았다. 그런 것들을 윤에게 이야기하는 것 보다 차라리 궁금한 것을 참는 게 나았다. 윤의 어깨는 빳빳하게 세운 머리카락만큼이나 뾰족하게 곤두서 있었다. 악의는 없어 보였지만 친절해 보이지도 않는 윤의 히죽이는 얼굴을 보니 입맛이 없어졌다. 저 사람이 원래 저렇게 생겼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올 때 쯤 가게에는 손님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시계가 열두시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전철로 삼십분 거리에 있는 영화사로 향했다. 멍군은 영화 홍보문제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무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는데 문 밖에 서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 멍군이 활짝 웃으며 일어났다.
“왔어?”
“응.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윤에게 받은 종이가방들을 원탁위에 올려놓았다. 사람들은 안에 뭐가 들었는지 보기도 전에 역시 나나씨 밖에 없다며 아부 비슷한 칭찬들을 쏟아냈다. 초밥을 보자마자 사람들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멍군의 눈이 똥그래졌다. 나는 윤의 개업 집에 갔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에 같이 가자는 말을 덧붙였다. 멍군은 예의상 윤의 안부를 물었다.
“조금 달라진 것도 같고.”
달리 설명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난 먹었으니까 너 얼른 먹어.”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난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멍군은 도시락 뚜껑에 음식을 조금 덜더니 내 옆으로 와 젓가락을 내밀었다.
“먹었어. 정말이야. 배불러.”
멍군은 다시 사람들 틈으로 돌아갔다. 창밖에서는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모두 어디론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자동차들 사이에는 내 얼굴이 희미하게 끼어 있었다. 저들이 향하고 있는 꿈과 저들이 채우려는 필요가 나의 그것과 얼마나 닮아 있을지, 아니면 얼마나 다를지 궁금했다. 멍군은 어디서 났는지 내 손 안에 초콜릿 하나를 쥐어줬다. 난 엷은 미소로 화답하고 천천히 초콜릿을 입 속에 넣었다. 쓴 기운들 사이사이로 유난히 단 맛이 비집고 들어갔다. 영화가 나오면 보라고 며칠을 버티던 멍군이 결국에는 자기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하고 2주 전 내게 종이뭉치를 건넸더랬다. 영화로 본다고 덮어버리면 됐을 것을 멍군의 속삭임 때문에 첫 장을 넘겼던 나였다.
“너한테 주는 선물이야.”
그 말은 오래도록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나니 난 영화를 볼 자신이 없어졌다. 이유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슬픈 영화도 아닌데 그냥 폐부를 후벼 파는 먹먹함 때문이랄까. 가장 근접한 언어라고 선택했는데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난 영화를 보러 갈 것이었다. 그것이 멍군에 대한 예의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 곳에 온 이유도 그런 최선 중 한 가지였다. 나는 멍군을 도와 시사회에 초대할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했다. 우리가 함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잠시 생각하다 멍군에게 물었다.
“변사장하고 윤은 어떻게 할까?”
살짝 올라가 있던 멍군의 입 꼬리가 조용히 내려왔다.
“네가 초대 하고 싶으면 해.”
“네 영화잖아. 난 그냥 한 사람이라도 더 보면 좋다는 생각이긴 한데 그 둘은 네가 좀 만나기 꺼려하는 것 같아서.”
“넌 편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초침이 시계를 한 바퀴를 돌고 나서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말로 대꾸를 했다.
“너만큼 편한 사람이야 없지.”
멍군은 명단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잠시 멍군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라는 듯이 무심하게 말을 뱉었다.
“제일 편하면 뭐해. 어차피 매일 같이 밥 먹을 건 아니잖아.”
나도 명단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커피 한 잔 하고 하자.”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엉덩이가 소파 깊숙한 곳으로부터 튕겨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