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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은

집으로 들어서는 멍군을 반기는 것은 어머니도 형도 아닌 보라색 편지봉투였다. 봉투 안에는 언제나 그랬듯 같은 키의 글자들이 사이좋게 줄지어 있었다. 나나는 아직 산갈치를 만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이번 여행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멍군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이번 시나리오는 나나를 모델로 한 여주인공은 없지만 그 어떤 때보다 나나를 위한 내용이 담길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부풀었다. 멍군은 가방 속에 있던 수첩을 급히 꺼냈다. 우선 겉표지에 보라색 편지봉투를 단단히 붙인 다음 수첩을 펼쳤다.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수첩뿐만 아니라 멍군의 머릿속에서도 꿈틀댔다. 멍군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첩 속에, 멍군의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낱말들은 점점 말이 되고, 사건이 되고, 한 편의 작품이 되어 갔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하지만 멍군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저 한 달이 넘도록 윤도 산갈치를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묵묵히 시나리오를 써 내려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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