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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은 Jun 27. 2024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 이유

Prologue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살아왔었다.
학교에서는 항상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받고, 결국 좋은 대학에 들어가 대기업에 취직을 하는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었다.

하지만 한 의문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내가 왜 살아야하지?"

부족함없이 자라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앞길을 막은 것은 다름아닌 나 자신이었다.

한국에서 착실히 살며 우울증을 겪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나는 20대 여자.

나의 삶을 통해 한국 청년들이 아픈 이유를 알리고,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작은 단서를 주고 싶다.


20살부터 본격적으로 앓던 우울증의 증상은 사실 생각해보면 유년시절 유럽에서 6년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인 초등학생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벨기에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지내던 나는 한번 사귀었던 친구들과 반도 안 바 전학 전까지 같이 지냈었다. 한국에 오고나서는 성장 배경부터 가치관까지 다른 사람들과 처음부터 어울려야했다. 어쩌면 똑똑한 아이들 사이에서 학교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것이 초반에는 버거웠던 걸지도 모른다.


유럽에서는 지극히 모든 것들이 천천히, 평화롭게 이루어졌다. 학교 수업 역시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교과서의 기본에 가장 충실한 수업을 진행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교과서 내용은 이미 마스터한지 오래인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학원 숙제를 꺼내면서 고난이도 문제를 푸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나 또한 학교의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잘 치르기 위해 선행학습을 하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특히 영어 교육을 강조하시면서 동네에서 가장 빡세기로 유명한 학원을 등록해주셨다.


초등학생을 밤 12시까지 (그때에는 오후10시에 학원을 모두 마쳐야한다는 규정이 나오기 전이었다) 영단어 1500개 재시험을 보게 하여 다 암기할 때까지 집에 가지 못하게 하던 나름 학생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학원이었다.


완료해야할 숙제 목록도 A4 용지 기준으로 한장을 다 채울 정도여서, 나 역시 학교 쉬는 시간에 학원 숙제를 꺼내는 그런 한국 학생들 중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잠을 잘 못 자기 시작했고, 성격이 예민해졌으며 심지어 자살 사고까지 떠올랐었다.


다행히 모든 학원을 끊고 중고등학교가서는 자연스럽게 나아졌으나 고3이 되어서 다시 대학 입시 스트레스에 몸과 마음이 망가져갔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나서는 모든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거대했던 대학 캠퍼스 로망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었고, 대외활동을 활발히 하는 인싸들 사이에서 나는 무기력해진 채로 방에만 틀어박혀있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코로나 시국에 스타트업과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MBB 중 한 곳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고, 이를 경험 삼아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당시 경험들은 그 다음 포스팅에서 더 자세히 서술할 계획이다)


대기업에서는 나름 임원 면접에서 눈에 띄게 되어 그룹 총괄 전략팀에 스카웃이 되었는데, 그 당시 '언제 대기업 그룹을 총괄하는 팀에서 일해보겠어' 하고 스카웃 제의를 수락하고 들어갔던 일이 예상대로 크나큰 경험이 되어주었지만 또 한편, 예상외로 우울증을 증폭시키는 크나큰 아픔과 상처가 되는 경험이 되어버렸다. 그 당시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아 툭하면 아프기 일쑤였으며, 무엇보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언증에도 걸릴만큼 힘들었었다.


결국 스트레스와 우울증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2022년 가장 추웠던 겨울 어느날 삶의 의지가 다 꺾여버리고 만다. 결국 응급실로 가게 되었고, 대기업에서 경력 2년을 채우지 못한 채 휴직과 퇴사를 결심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적절한 약물과 인지치료를 받고 어느정도 안정된 나는 정신병원을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에너지가 돌아오고나서부터는 "내가 왜 살아야하는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로 평생 쫓아오던 의문이 바뀌게 되었다.


어쩌면 한국에서 성실히 살아왔던 나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정답"인 인생을 살아가려고 애썼던 것 같다.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를 가고, 뛰어난 스펙을 쌓아 대기업에 취업하고, 항상 밝고 서글서글하게 사람들과 어울려 좋은 대인관계를 유지해야하고, 외모도 가꾸고 날씬해야하며 운동, 음악, 미술 등 예체능 분야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어느 사회 집단이나 모임에서든 나는 항상 뛰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야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 된다 믿었다.


이런 모든 강박과 프레임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스스로 물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너무 좁은 우물 안 개구리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지내면서 한국이라는 경쟁 사회에 너무 찌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객관적으로 나 자신과 내가 살아왔던 배경에 대한 고찰이 필요했다.

리하여 한국을 떠나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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