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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nebear Jan 06. 2021

일기場

지극히 사적인 공간

  분이 별로이거나 고민이 있을 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주변의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표현할 수 없이 기분이 매우 안 좋거나 스스로가 티끌만큼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 이 세상에 철저히 혼자인 것 같이 외로울 때, 나도 나를 어쩌지 못할 만큼 화가 날 때... 이럴 때는 어느 누구에게든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다.

  그럴 때면 잠시 잊혀있던 일기장을 꺼낸다. 내 마음을 달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기를 쓰는 것, 그의 존재가 참 다행스럽다. 마음껏 그에게 쏟아내다 보면 숨어 있던 내 마음이 보인다. 숨어 있던 상대의 마음도 보인다. '아, 진짜 내 마음은 그것이었구나!',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알게 되면 진정이 찾아온다. 있는 그대로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 지극히 사적일 수 있는 곳, 나에게 허락된 그러한 공간은 일기 '장(場)'이다. 그곳에서는 좀 더 과감하게 솔직해져도 얼마든지 괜찮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막상 잘 떠오르지 않는데, 참 의아하다. 내 방, 혼자 있는 시간, 카톡방, 그리고...? 음, 이렇게 없었나 싶다. 사적인 공간에서도 사적일 수 없는 순간이 많은 것 같다. 일기를 쓰면서도 부끄럽게 느껴지는 표현은 혹시나 누군가가 절대 보지 못하게 꾸역꾸역 지우는 것처럼, 아무도 없어도 자유롭게 춤을 추거나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 누군가를 의식하고 있거나 타인과 연결되어 있음이 당연하고, 그렇지 않는 순간에는 문득 불안해지거나 금방 무료해지기도 한다. 고요히 사적인 시간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잊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어쩌면 우리는 의식적으로 지극히 사적인 공간을 확보해야 할지도 모른다. 스스로와 만나고 연결되는 시간을 잠시라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민낯은 자주 볼수록 친근하고 아름답다.  



2021. 1. 5. 에 쓴 글

글감: 지극히 사적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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