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결혼식 다음 날 비행기에 올랐다.
8시간의 긴 비행 후,
나는 습하고 끈적하며 후끈한 적도의 땅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이리 오래 머물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길어야 삼 년..?
어느 정도 살다 돌아가겠지..
막연히 생각했지만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오래 살지 않을 계획이어서 별 준비 없이 날아왔었다.
현지에서 아이까지 낳을 줄 알았다면,
질 좋은 한국산 신생아 용품을 바리바리 싸왔을 텐데..
대책 없던 나 자신에게 자주 혀를 차기도 했다.
근데 나는 정말로,
이렇게 오래 살 줄은 진짜 몰랐다.
이나라 말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큰 애를 낳고,
조금 익숙해질 즈음 둘째까지 낳았다.
큰 애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제 늦었구나..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했지만.
나는 그렇게 타국에서
우왕좌왕하고 자충우돌하며
두 아이를 키웠다.
그 사이 남편과 나의 삼십 대가..
사십 대가..
촘촘히 모두 지나갔다.
두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나니,
어느새 우리는 오십 줄에 들어서 있었다.
미혼에서 기혼자가 된 후 이곳으로 날아와
엄마 아빠라는 신분으로
지금껏 뜨거운 적도의 땅을 밟고 있었다.
내 나라, 대한민국.
언젠가 돌아갈 곳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늘 하고 있었다.
제 고향으로 돌아가 죽는 여느 동물들처럼
인간이라는 동물인 나 역시
당연히 고향을 그리워하며 사는 존재였으니까.
그런 미래를 막연히 예상하며 지내긴 했지만
시점을 확정한 건 아니었다.
그러다 이렇게 불쑥,
예측불허의 인생에서 자의 반 타의 반,
그 시점이 들이닥쳤다.
매일 그리워하며 살았던 내 나라로 돌아가기로
남편과 나는 결국, 마음먹었다.
언제나 매정하게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고 얄밉지만
요즘 내게는 특히 더 그렇다.
편도행 비행기 표를 끊어놓고,
끝이 보이는 곳을 바라보며 매일을 보내는 요즘
마음이 파도처럼 자주 출렁거린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이곳을 떠난다는 현실을 자각할 때마다
감정이 솟아오른다.
해외에 나온 후에야 깨달았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였는지를.
그래서 열악했던 이곳을 비난하고
내 나라와 비교하며 자주 헐뜯었었다.
그렇게 미워하고 욕했던 감정 하나하나가
정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남게 될 줄은 몰랐다.
마뜩잖던 이곳을 떠나게 되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요즘 하루하루 깨닫고 있다.
이십여 년 사이 무척 변한 내 나라에 대한 두려움도 솔직히 있다.
오죽 많이 변했어야지..
같은 시간이 흘렀건만
이곳과 한국의 변한 정도는 차이가 크다.
느긋한 이곳의 생활에 적응된 신체와 멘탈이 걱정이다.
또 이십여 년간 느끼지 못한 계절을 맞을 기대에
동시에 설레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겨울이 걱정이긴 하지만.
내 나이가 오십이 넘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다.
내가 이곳에서 이십 년 넘게 살았다는 사실 역시 실감 나지 않는다.
이제 이곳을,
매일 생활하던 이 집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아직 거짓말 같다.
코끝 시릴 차고 건조한 한국 공기를 곧 마시게 될 거라는
근 미래도 아직은 그려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보니,
뭔가를 실감하기도 전에 시간은 바삐 지나갔던 것 같다.
실감은 그 시점에서가 아니라
이후에, 뒤를 돌아보고 나서야 하게 됐던 것 같다.
아마 이번에도
이곳을 떠날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일 년 내내 뜨거운 이 붉은 땅에서 비로소 하늘로 몸이 뜨고 나서야,
실감하게 되지 않을까.
처음 이곳에서 시작한 서툴었던 신혼생활처럼
왠지 이번에도 서툴 것 같은 한국 생활이
때문에 조금 두렵도
때문에 약간 기대되기도 한다.
당분간,
이십 년 넘게 묵은 짐을 정리하는 동안,
그리고 이십 이년 만에 내 나라로 돌아가
새로운 시작의 준비를 마치는 한동안은,
자주 브런치 방문을 못하지 싶습니다.
여기 잘 마무리하고,
거기에 잘 도착한 후,
찾아오겠습니다.
저, 좀..
떨리네요.... ^^;;
한국에서 잘 살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