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에 돌아갑니다

by 타프씨

2004년 1월.

결혼식 다음 날 비행기에 올랐다.

8시간의 긴 비행 후,

나는 습하고 끈적하며 후끈한 적도의 땅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이리 오래 머물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길어야 삼 년..?

어느 정도 살다 돌아가겠지..

막연히 생각했지만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오래 살지 않을 계획이어서 별 준비 없이 날아왔었다.

현지에서 아이까지 낳을 줄 알았다면,

질 좋은 한국산 신생아 용품을 바리바리 싸왔을 텐데..

대책 없던 나 자신에게 자주 혀를 차기도 했다.


근데 나는 정말로,

이렇게 오래 살 줄은 진짜 몰랐다.


이나라 말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큰 애를 낳고,

조금 익숙해질 즈음 둘째까지 낳았다.

큰 애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제 늦었구나..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했지만.


나는 그렇게 타국에서

우왕좌왕하고 자충우돌하며

두 아이를 키웠다.


그 사이 남편과 나의 삼십 대가..

사십 대가..

촘촘히 모두 지나갔다.

두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나니,

어느새 우리는 오십 줄에 들어서 있었다.


미혼에서 기혼자가 된 후 이곳으로 날아와

엄마 아빠라는 신분으로

지금껏 뜨거운 적도의 땅을 밟고 있었다.



내 나라, 대한민국.

언젠가 돌아갈 곳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늘 하고 있었다.

제 고향으로 돌아가 죽는 여느 동물들처럼

인간이라는 동물인 나 역시

당연히 고향을 그리워하며 사는 존재였으니까.


그런 미래를 막연히 예상하며 지내긴 했지만

시점을 확정한 건 아니었다.

그러다 이렇게 불쑥,

예측불허의 인생에서 자의 반 타의 반,

그 시점이 들이닥쳤다.


매일 그리워하며 살았던 내 나라로 돌아가기로

남편과 나는 결국, 마음먹었다.



언제나 매정하게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고 얄밉지만

요즘 내게는 특히 더 그렇다.


편도행 비행기 표를 끊어놓고,

끝이 보이는 곳을 바라보며 매일을 보내는 요즘

마음이 파도처럼 자주 출렁거린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이곳을 떠난다는 현실을 자각할 때마다

감정이 솟아오른다.


해외에 나온 후에야 깨달았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였는지를.

그래서 열악했던 이곳을 비난하고

내 나라와 비교하며 자주 헐뜯었었다.


그렇게 미워하고 욕했던 감정 하나하나가

정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남게 될 줄은 몰랐다.


마뜩잖던 이곳을 떠나게 되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요즘 하루하루 깨닫고 있다.



이십여 년 사이 무척 변한 내 나라에 대한 두려움도 솔직히 있다.

오죽 많이 변했어야지..

같은 시간이 흘렀건만

이곳과 한국의 변한 정도는 차이가 크다.


느긋한 이곳의 생활에 적응된 신체와 멘탈이 걱정이다.

또 이십여 년간 느끼지 못한 계절을 맞을 기대에

동시에 설레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겨울이 걱정이긴 하지만.



내 나이가 오십이 넘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다.

내가 이곳에서 이십 년 넘게 살았다는 사실 역시 실감 나지 않는다.

이제 이곳을,

매일 생활하던 이 집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아직 거짓말 같다.

코끝 시릴 차고 건조한 한국 공기를 곧 마시게 될 거라는

근 미래도 아직은 그려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보니,

뭔가를 실감하기도 전에 시간은 바삐 지나갔던 것 같다.

실감은 그 시점에서가 아니라

이후에, 뒤를 돌아보고 나서야 하게 됐던 것 같다.


아마 이번에도

이곳을 떠날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일 년 내내 뜨거운 이 붉은 땅에서 비로소 하늘로 몸이 뜨고 나서야,

실감하게 되지 않을까.



처음 이곳에서 시작한 서툴었던 신혼생활처럼

왠지 이번에도 서툴 것 같은 한국 생활이

때문에 조금 두렵도

때문에 약간 기대되기도 한다.




당분간,

이십 년 넘게 묵은 짐을 정리하는 동안,

그리고 이십 이년 만에 내 나라로 돌아가

새로운 시작의 준비를 마치는 한동안은,

자주 브런치 방문을 못하지 싶습니다.


여기 잘 마무리하고,

거기에 잘 도착한 후,

찾아오겠습니다.


저, 좀..

떨리네요.... ^^;;

한국에서 잘 살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