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rumah(루마)

by 타프씨

이곳 교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주택 구조는, 역시 아파트다.

나 역시 몰을 끼고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물론 지역에 따라 주변에 살만한 아파트가 없는 경우라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주택에 살 수밖에 없다.


이곳도 다른 외국과 비슷하게 "전세"라는 개념은 없는 곳이다.

사던지, 임대를 하던지, 둘 중 하나다.

임대는 보통 2년 단위로 이루어지고, 협상을 통해 1년이나, 3년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보편적인 경우는 2년 임대를 하고, 이후 재계약을 할지 이사를 할지 결정하게 된다.


집을 구하는 일은 보통 부동산 중개인인 브로커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곳은 보통 집을 세놓는 주인 쪽에서 브로커 비용을 지불하게 되어있다. 내가 지불한 임대료에 그 비용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집 값은 천차만별인데, 월 3000 불 이상하는 값비싼 아파트도 있고, 비교적 저렴한 곳도 있다.

시내 고가 아파트의 경우, 내 돈 내가 다 주고 사는 사람도 있기야 하겠지만

보통은 대기업 주재원으로 나간 가족에게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다.

집 값을 회사에서 해주지 않는 경우라면, 집 값만큼 연봉을 더 높게 책정받는 경우도 있다. 회사마다 사정도 다르고 경우도 다르기 때문에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시내 쪽 아파트 값이 더 비싼 이유는, 기본 관리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곳 아파트는 전기세, 수도세 말고도 인건비며 조경 유지비 같은 아파트 관리비용을 내야 하는데, 내가 사는 지역의 경우, 살고 있는 임대인이 기본 관리비와 매달 사용한 전기, 수도세를 내는 반면, 비싼 아파트의 경우는 그 기본 관리비를 주인이 내고 임대인은 매달 사용한 전기, 수도세만 내면 된다. 따지고 보면 비슷하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그건 아니다. 비싼 아파트의 임대료가 확실히 더 비싸긴 하다.


이곳 아파트 기본 관리비와 그 밖의 세금은, 한국에 비해 꽤 비싼 편이다. 전기, 수도세야 내가 쓴 거라니 그렇다 치고, 세 달에 한번 모아서 받는 기본 관리비는 도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를 위해 쓰이고 있는 건지, 그닥 실감이 나질 않는다.

때문에 세 달에 한번 돌아오는 비싼 관리비를 내는 날이면, 알고 싶고 따져 묻고 싶고 증거를 내놓으라 소리치고 싶은 마음은 벌써 관리실 문 앞에 가 있지만, 그때마다 다행히 이성이 감성을 자제시킨다.


ㅣ우린 외국인이야..

ㅣ이 나라에 빌붙어 살고 있는 중이야..

ㅣ내가 한국인의 얼굴이야..

ㅣ이건 내 집이 아니야..


이번에도 마음만 열두 번도 더 관리실에 보내고 말았다.




이곳의 주택 구조에서 가장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식모방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건 단독주택이건 새로 지은 아파트건 모두 해당된다.


18년 전, 결혼식 다음날 이곳으로 날아와 처음 거주한 신혼집은 단독주택이었다.

주택들도 아파트 단지처럼 이름이 지어져 있고, 꽤 넓은 부지 안에 주택들이 줄지어 빽빽하게 지어져 있다.

한국과 달리 일렬로 벽을 사이에 두고 죽 이어진 형태로, 대문과 주차공간이 되는 앞부분을 제외한 3면이 왼쪽 오른쪽, 그리고 뒤쪽 주택과 접하고 있는 모습이다.

나의 인니 첫 주택도 그런 곳이었다.

'인도네시아'하면, 발리, 보르네오 섬, 자카르타 정도밖에 모르고 왔던 나에게 이곳의 집은 특이한 모습이었다.

거실에서 보면 주택 안채에 작은 정원 같은 공간이 있었고, 거실에서 문을 열고 나가면 부엌이,

그 부엌과 일자로 이어져 정원을 바라보는 위치에 또 다른 방과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그곳이 바로 식모가 지내는 공간이었다.


보통 동남아에서 산다- 하면,

식모에 기사를 두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골프나 치러 다니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처음 왔을 때보다 많이 상승한 물가에 따라 인건비도 높아져서, 최근에는 집에서 거주하는 식모보다 하루 몇 시간씩 파출부를 쓰는 집들이 더 많아졌다.


첫 집에서 함께했던 식모의 월급이 35만 루피아(대략 3만 원 정도)였는데, 18년이 지난 지금 집에 거주하는 식모 월급은 200만 루피아에 육박한다. 물론 월급은 정해진 게 아니라 들이는 사람과 일하려는 사람 사이에 협상으로 결정되긴 하지만, 시세라는 게 있다 보니 보통은 비슷한 가격으로 월급을 책정하게 된다.

한 10년 정도 살던 즈음인가, 이곳의 지인들과 농담처럼 그런 말을 주고받았었다.


"이렇게 식모 월급 오르다가 나중에 백만 루피아 되는 거 아니야?!"

"헐 말도 안 돼. 그럼 못 쓰지~"


헌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 금액에 도달했고, 최근엔 평일에 와서 3시간 정도 일하는 파출부의 월급이 100만 루피아를 넘어서고 있는 상태다.

전반적으로 변화가 느린 이곳이지만, 인건비 상승은 꽤나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솔직히 오래전이긴 하지만 당시 35만 루피아라는 금액이 너무 쌌던 이유도 있겠지만.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의 식모 방을 나는 창고로 쓰고 있다.

이곳의 주택구조는 참으로 단순해서, 한국처럼 요모조모 쓰임 있게 만들어진 공간 같은 건 없다. 거주하는 식모가 없으니 그 방은 잡동사니를 모아 쌓아 둘 수 있는 좋은 창고가 되고 있는 셈이다.



교민들 말고 현지인들의 주택은 그럼 어떨까?

자카르타는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올라온 정말 많은 인구가 밀집한 도시다. 넉넉하지 않은 그들은 같이 모여 월세를 내고 살 수 있는 곳에서 모여 생활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판자촌 정도의 동네는 여기저기에 아주 많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그렇듯, 이곳도 빈부의 격차가 무척 큰 나라다.

공직이나 관직에서 일하는 현지인이라면 그나마 잘 사는 부류에 속하겠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보통 사람들의 생활은 넉넉하지 않다.

올려다보면 목이 아플 정도의 삐까번쩍한 아파트 단지에서 불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동네가 있기도 하다. 그들 가운데는 새로 생긴 그 아파트에 파출부나 거주 식모로, 혹은 기사로 취업하여 생활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같은 현지인이라 해도 중국계 현지인들의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이 나라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 많은 중국인들은 하나같이 궁궐 같은 대저택에 거주한다. 아파트보다는 대저택을 선호하는 그들의 성향 때문이다.

보통 2층에서 3층, 4층까지도 되는 규모이기 때문에, 층마다 식모를 따로 쓴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2명가량의 식모가 거주하는 게 보통이다.

큰 애 친구네 집에는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되어있다고 하니, 그냥 그들과는 비교를 하지 않고 사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다는 게 18년 짠 밥의 결론이다. ^^

(이곳 중국계들의 경제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다루려 한다)




한국은 정말 아파트를 잘 짓는다. 시설이나 편의성 모든 면에서 정말 감탄이 나올만하다.

작년 여름, 새로 입주한 언니네 아파트에 인니 촌놈 세명이 방문했었다.

한국에 가면 머무르는 할머니 아파트도 좋은 줄 알았는데, 새로 지은 스마트 아파트는 정말 신세계에 가까웠다.

우린 정말 없어 보일 정도로 "우와~"를 연발했다. 그것도 셋이 똑같이.

하지만 그렇게 좋은 시설의 그곳도 결국 내 집은 아니었다.

맘 편히 편하게 있었지만, 역시 내 집만큼은 아니었다.


2년씩 3차례 계약을 갱신하여 6년째 살고 있는 이 집은

엄밀히 내 집이 아니다. 하지만, 그 좋은 언니네 아파트보다 맘은 편할 걸 보니

내 집이 맞는 것 같다. 임대 기간 동안만 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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