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미루던 일을 했다.
손톱을 깎았다.
손끝이 다시 개운해졌다.
갈라진 손톱 사이로 뭐가 끼일 일도, 걸리적거릴 일도 없어졌다.
내 손톱은 참 못생겼다.
손도 못생겼다.
예전에 누가 나에게 그랬다.
"어, 손이 별로 안 예쁘네...?"
고등학교였고, 같은 학교 아는 남학생이었다.
그때 처음 내 손이 못생겼고, 손톱은 웃기게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
그전까지는 내 손톱에 관심 가질 일이 없었다.
사는데 손톱이 어떤 역할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니까. 불편함을 느꼈다면 이미 알고 있었겠지.
손도 못생긴 줄 몰랐다.
뭔가 손으로 하는 일을 할 때 뛰어나진 않아도 똥 손이란 소리도 듣지 않았다.
손은 무언가를 하는 도구 같은 거지, 그 모양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한두 번 엄마에게 이런 소리를 듣긴 했다.
l 손톱이 왜 이렇게 생겼냐.
l 손바닥은 하루 종일 밭일하고 온 사람처럼 왜 이렇게 거치냐.
l 연애할 때 남자가 손 잡았다가 놀라 도망가겠다.
그때까지만 해도 손에 대한 깨달음이 있기 전이라 난 상관하지 않았다.
l 손톱이 어때서~ 똥그랗고 귀엽구만.
l 손 거칠다고 도망가는 놈이면 만나질 말아야지~
하지만 아는 놈의 그 한마디 이후, 난 다른 사람의 손을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만큼이나 제각각인 그들의 손이 보이기 시작했고
예쁜 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히 피아노를 치는 친구의 손은 정말 예뻤다.
손끝으로 갈수록 매끈하게 좁아지는 손가락이 그렇게 길었는 줄도 몰랐다.
예쁜 손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예쁜 손을 알고부터 난 내 손이 부끄러워졌다.
납작하게 눌린 단추 같은 게 손톱이랍시고 붙어있는 것 같았다.
가능한 처음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에선 손을 꺼내지 않으려 애썼다.
몰랐을 땐 사는데 아무 지장 없던 나의 못생긴 손과 손톱은
꽤나 신경 쓰이고 감추고 싶은 첫 번째 신체부위가 되었다.
한창 청춘이던 시절, 특히 이성을 만날 때는 더 신경이 쓰였다.
밥을 먹든 대화를 하든, 내 손을 쳐다보지 않았으면 마음을 졸였다.
그런 생활을 이어간다는 건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손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입과 더불어 가장 빨리, 그리고 많이 머릿속 지시에 움직이는 신체였으니까.
도저히 손을 덜 쓰고는 되는 일이 없었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봤을 땐 주로 얼굴만 보고 대화하다가, 얼굴이 익숙해질 즈음부터 다른 곳들을 보기 시작한다.
얼굴 다음으로 가장 쉽게 보이는 부위가 손이기에 상대는 금방 뒤통수 맞은 표정이 된다.
일부는 대놓고 말을 하기도 한다.
"어.. 생각보다 손이 안 예쁘게 생겼네요.."
또 일부는 실망한 표정을 한가득 지고서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이전과 달라진 시선도 확 티가 나는데 티 내지 않는 척한다.
나도 그냥 모른 척한다.
엄마에게 말한 것처럼, 난 그런 놈들을 만나지 않았다.
손가락과 손톱으로 날 평가하는 분이라면, 나 역시 그를 평가하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대놓고 내가 먼저 내 손을 도마 위에 올렸다.
"제 손 디게 못생겼죠? 매니큐어도 못 발라요. 못생긴 거 더 티 나서~"
다행히도 세상엔 그런 이들만 있지 않았다.
내 납작한 손톱도 짤막한 손가락도 거친 손바닥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있긴 했다.
이 사람 덕분에 내 손이 못생겼다는 걸 꽤 오래 까먹고 살았는데, 대신 다른 걸 또 알게 되었다.
"무슨 발톱이 이렇게 생겼냐? 개구리야??"
하지만 내 발톱을 보고 막말을 일삼는 그를 만나지 않을 수는 없다.
이미 우린 자식도 둘이나 있다!
그를 만났을 때가 한 여름이어서 개구리발톱이 훤히 보이는 샌들을 신고 있었다면...
그럼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때가 입만 열어도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하얀 입김을 내뿜던 춥디 추운 계절이어서,
참, 다행이었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