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학과 학생은 어떻게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되었나 - 3
때는 2017년 3월,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당시에는 아직까지 유튜브가 그렇게 활성화된 시기는 아니었다. 언론사에서 따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는 사실도 생경했던 때였다. 지금은 '문명특급' 유튜브가 굉장히 유명하지만, 독립하기 전 '스브스 뉴스'는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하루는 17학번 간호학과 동기들이 모두 들어와 있는 단톡방에 모집글이 하나 올라왔다. SBS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할 출연자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인턴이었던 제작진의 지인이 우리 학과 선배였고, 선배가 단톡방에 들어와서 모집글을 올린 것이었다. 나는 관종끼가 매우 있고 (...) 또 방송계에 진출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관심이 갔다.
마침 출연자의 조건이 딱 나였다. 경상도에서 상경한지 한 달이 되지 않는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대구 출신이고 대학 입학을 위해 올라왔으니 딱 들어맞았다. 그 때문에 신입생들이 모인 단톡에 모집글을 올린 것이겠지. 바로 선배에게 카톡으로 출연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스브스 뉴스 제작진에게서 카톡이 왔다. 촬영 날짜에 맞춰 목동 SBS 건물로 오라고 해서 알겠다고 말씀드리고 촬영일만을 기다렸다.
뭐 딱히 준비할 건 없고 편하게 오면 된다는 말에 정말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ㅋㅋ 실제로 내가 쓰는 말투인 사투리가 주제라고 하니 준비할 게 없긴 했다. 지금이라면 옷도 좀 사고 살도 좀 빼고 할 텐데, 그 당시에는 아직 20살이라 그런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그냥 내 눈에 예쁜 옷 입고 갔다. 머리는 누가 봐도 20살인 걸 알 수 있을 정도의 금발이었다. 하하...
같은 과에 친했던 친구랑 같이 출연하게 되어서 회기에서 함께 출발했다. 서울에 올라온지 한 달도 안 됐던 터라 지하철도 어색했다. 더군다나 5호선은 처음이었다. 네이버로 가는 길을 검색해 여행하듯 걸어갔다. 회기는 사실 서울의 느낌이 많이 없는데 목동에서 방송국 건물도 보고 하니 서울에 온 게 확 실감이 났다.
정문으로 들어가니 괜히 방송국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위축이 됐다. 사람들은 다 바빠 보이고 멋있어 보이고 똑똑해 보였다. 연예인도 봤다. 붐, 김창열 등등... 라디오를 하고 돌아가는 길 같았다. 붐은 키도 크고 잘생겨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여기저기 바쁜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니 스브스 뉴스 제작진 두 분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그 중에 한 분이 재재님이셨고...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의 나라면 그 소중한 인연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말도 좀 붙여보고, 전화번호도 받아놓고 했겠지만 그때는 그런 사회생활의 개념이 없었다. 우리에게 되게 친절하게 대해주셨는데 그냥 대답만 했다. 기회도 준비된 사람이 잡는다는데 그때의 나는 정말 준비가 안 되어있었다.
시간이 애매한 밥 때여서 우리를 지하 구내식당에 데려가 주신다고 했다. SBS 지하 구내식당에서 밥 먹어본 일반인이 된다니 괜히 신기했다. 제작진 분들과 함께 엘리베이터 옆 계단으로 내려가려는데 경호원 분들이 우리를 막아섰다. 일반인은 출입이 안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출연자라고 설명을 해도 경호원 분들도 난처해보이셔서 결국 팀장님 같은 분이 내려와서 해결해주셨고,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맛있었던 것 같다.
밥도 먹었겠다, 이제 진짜 촬영할 시간이다. 예능 같은 곳에서 많이 봤던 유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올라가니 편집실이 쭉 있었다.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조금 걸어가니 스튜디오가 나왔다. 스튜디오는 굉장히 큰 철문으로 닫혀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생각보다 크고, 생각보다 작은 (?) 공간이 나왔다.
스튜디오의 크기는 내 생각보다 컸고, 조명도 정말 많았다. 카메라 개수는 생각보다 적었다. 그리고 놀랐던 건 팀장님이 같이 촬영에 참여하시는데 나이가 꽤 많았다는 점이다. 유튜브 촬영이고, 인턴 분들이라고 해서 나이 많은 사람이 없을 줄 알았던 건 내 좁은 식견이었다. ㅋㅋ
경상도 팀, 서울 팀 나눠서 촬영을 진행했다. 자기소개 하고 사투리에 관한 퀴즈를 풀었다. 처음 듣는 사투리도 있었고, 정말 익숙한 사투리도 있었다. 대사를 듣고 진짜 사투리 쓰는 사람을 찾아내는 퀴즈도 있었는데 우리에겐 다 들리는 게 서울팀한테는 안 들린다고 해서 웃기기도 했다.
경상도 사람이어서 생긴 에피소드도 몇 개 얘기했다. 엄청 떨릴 줄 알았는데 긴장은 별로 안 했다. 정말 친구한테 얘기하듯 술술 말했던 것 같다. 내 착각일 수도... 허허.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의 지역감정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냐고 물어서 엄마아빠에게 들은 얘기를 했는데 수위가 조금 세다고 생각했는지 편집본에서는 잘리기도 했다.
아쉬운 건 내가 내 소개를 할 때 머리를 만지작거려서 그림이 안 예쁘게 나왔다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촬영해봤다면 그런 사소한 것도 신경을 썼을 텐데... 앞으로 카메라 앞에 설 기회가 있다면 손은 가만히 둬야겠다...
촬영이 끝나고 제작진 분이 정문까지 데려다 주셨다. 그때 바로 출연료를 주셨는지 계좌로 주셨는지 여튼 3만원을 받았다. 돈 때문에 간 건 아니었지만 꽁돈이 생긴 것 같아 좋았다. 친구랑 지하철 타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내가 진짜 SBS에 갔다 온 게 맞나? 싶었다.
며칠 지나고 편집본이 유튜브에 올라왔다고 해서 나도 보고 엄마아빠한테도 링크를 보내줬다. 카메라에는 내 모습이 이렇게 나오는 구나... 너무 어색하고 내 목소리를 못 듣겠어서 일시정지했다 재생했다 계속 반복했다. 나는 아무도 나를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아빠한테 회사 동료분이 '이거 네 딸 아니가?' 라고 물었다고 한다.
내 인생에서 잘한 경험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경험이었다. 내가 언제 방송국에 들어가서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해보겠어... ㅋㅋ 낯선 사람 만나서 할 얘기 없을 때 아이스브레이킹 할 소재로도 좋고(?). 이 경험으로 새로 만난 인연을 대하는 법, 카메라 앞에서 단정하게 보이는 법 등등의 교훈을 얻었으니 조금 더 성숙해졌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새로 들어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되었다. 도전은 조금 두려워도 즐거운 일이니까.
앞으로도 누군가 내게 출연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면 꼭 할 것이다. 그때는 살도 좀 빼고 옷도 좀 사고 화장도 내 얼굴에 맞게 잘 해서 나가야지. 얘기할 내용도 어느정도 정리해서 나가고 싶다. 언젠가 또 내게 올 기회를 위해서 평소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