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elsilvere Dec 15. 2018

An Ordinary Christmas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주변의 환경이 대부분 달라졌고 항상 옆에 있던 아빠, 엄마, 남동생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이 언제나 내 옆, 앞, 뒤에서 날 바라보고 있다. 연말이면 잦은 모임들 때문에 귀찮았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모임을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도시는 차분하게 빛나고 있고 우리가 사는 휴스턴 외곽 주거단지는 각자의 취향대로 각기 다르게 불을 밝히고 다양한 장식으로 집을 꾸며 놓았다. 

한국에서 태어난 우리는 이곳의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각기 다른 개성에 놀라곤 한다. 물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한정적이다. 이곳에는 우리가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그저 서로를 보고 가끔 내 친구의 커플을 만나 데낄라를 마시며 2018년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어릴 때 본 “나 홀로 집에”의 기억을 더듬으며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황홀하기 그지없는 겨울왕국과 같은 곳일 거라고 상상했다. 안타깝게도 휴스턴은 눈이 내리지 않는다. 우리는 2주 전에도 수영을 했다. (물론, 러닝을 하고 난 뒤 더운 몸을 식히기 위해 물에 뛰어든 것이지만)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건 12월 중순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도 평균 기온이 14,15도 정도라는 것.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White Christmas를 상상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미국은 워낙 광활한 곳이라 사실, 눈을 보고 싶으면 눈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면 된다. 하지만 올 해는 얌전히 보내기로 암묵적 합의를 했기에 특별하거나 유난스러운 계획은 없이 흐르는 시간을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오후 3,4시면 으레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수영을 하곤 했었는데 11월 말이 되니 수영을 하기엔 물 온도가 많이 낮아져 해가 지기 전 조깅을 다시 시작했다. 집 앞에 있는 작은 호수를 벗 삼아 하루에 3킬로 정도씩 뛰다 보니 오후가 되면 해가 보고 싶어서라도 꼭 문을 나서곤 한다. 

언제부터인가 동네의 풍경이 달라졌다. 작은 장식이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집 앞을 초록과 노란색 조명으로 장식한 집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어떤 집은 커다란 인형이 춤을 추고 있고 어떤 집은 나무 전체에 조명을 설치해 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도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매년 성탄절 즈음이면 엄마는 콧노래를 부르며 오래된 장식들을 꺼내 작은 아파트 한구석에 세워놓고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그 날을 매일매일 기념하곤 했다. 나 역시도 괜스레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신이 난 척 하진 않았었다. 이제 난 다 큰 어른이니 어린아이들처럼 보이기 싫었던 탓일 거다. 

올 해는 들뜬 엄마도 기다려지는 눈도 없다. 그저 따뜻한 날씨와 화려한 장식을 한 이웃들의 집이 있을 뿐이다. 


이곳은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지나면 연이어 모든 곳이 할인을 하는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가 시작되고  사람들은 그 시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쇼핑을 한다. 우리 역시 지난 몇 달 동안 사려고 봐 둔 오븐, 믹서기 같은 물건들을 사놓고 하루는 감자를 튀겨먹고 하루는 스무디를 만들어 먹곤 한다. 기다리던 것들을 직접 만나는 감격 같은 감정들이 연말 내내 지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아직도 이곳에선 이방인이자 관찰 자니까- 추수 감사절과 블랙 프라이데이가 지나면 다시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몇 주 간격으로 굵직한 이벤트들이 연말 내내 연이어진다. 

어느 일요일 아침, 잠에서 깬 그 날은 마침 12월 1일이었다. 11월이 다 지나고 이제 2018년의 마지막 한 달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침부터 나무를 사러 가야 한다는 말을 수십 번 반복한 끝에 남편의 손을 잡고 말 그대로 크리스마스 나무를 사러 갔다. 

한 시간 정도 거리를 달려가면 나무를 고르면 직접 잘라주는 농장도 있었지만 크리스마스용 살아있는 나무를 파는 곳은 집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나무만 전문적으로 파는 곳, 집을 수리하거나 보수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파는 곳, 장식품을 파는 곳 심지어 월마트에서도 살아있는 나무를 볼 수 있었다.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까. 12월 첫날, 홈디포(The Home Depot) 에는 아이들과 함께 나무를 고르는 아빠, 엄마들부터 휠체어에 앉아 하나하나 손으로 잎을 만져보며 나무를 살피는 할머니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있었다. 나무를 팔기 위해 따로 설치한 천막에 들어서는 순간 송진 냄새와 함께 신선한 침엽수의 향이 기분 좋게 번졌다. 여기저기 신기한 망에 곱게 싸여있는 나무를 보며 새삼 문화의 차이가 느껴졌다. 

직접 고른 나무를 집에 가져가 이쁜 오너먼트를 달고 불을 밝히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과 12월 24일 밤이면 밤새 술집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의 차이. 어디에나 문화는 존재하고 물론, 서양의 문화를 동양권인 한국에서 온전히 받아들이는 건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왜곡되어 흡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요즘은 그런 불특정 한 생각의 순간이 아주 짧게 지나기에 그새 지워지곤 한다. 

그저 나는 가장 향이 좋은 나무, 그리고 지금 사는 집에 어울릴 만한 크기의 적당한 녀석을 찾고 싶었기에 손가락에 송진을 묻히며 나무들을 만져보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다 같은 나무 같은데 직접 만져보고 세워보니 조금씩 다른 모양이 보이기 시작했다. 쭉 살펴보며 마음에 드는 나무를 세워 향을 맡아보고 날카롭게 생긴 잎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손 끝으로 번지는 숲의 향이 과거의 어느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어린 나는 엄마와 함께 걸으며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함께 시장에 가면서 이야기를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아빠를 마중하러 나가거나 엄마와 함께 걷는 길은 언제나 내게 큰 즐거움이었다. 기억 속의 그 날은 숲 속 공원에서 미술대회가 열린 날이었다. 엄마와 이모는 내 손을 잡고 그곳에 갔고 우리는 높고 울창한 나무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당시에 가장 재미있던 이야기들-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단어들-을 나눴었다. 나는 나보다 큰 엄마와 이모의 얼굴을 보며 그녀들의 얼굴보다 높이 있는 나무들의 흔들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머리 위로 흐르는 바람과 그 바람에 따라 갸우뚱하며 날 살펴보는 나무들, 어디에서 어떻게 불어오는지 알지 못하는 그 바람으로 인해 어린 나는 경험해본 적 없는 묘한 감정을 품었던 것 같다.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아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러한 바람결에 실린 기억으로 인해 웃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며 때론 서글픈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아주 짧은 그 찰나의 순간, 나의 유년 시절 그리고 나의 엄마를 떠올리며 마음 한 구석에서 그리움의 감정이 마구 샘솟는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찰나를 꾹 삼키고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 다시금 나무를 살핀다. 결국 우리는 한 여름 계곡에서 만난 것 같은 생명력 넘치는 초록의 나무를 골랐고  전구와 몇몇 오너먼트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무를 고정시키고 물을 주는 일이었다. 살아있는 나무는 뿌리가 잘렸지만 여전히 물을 흡수하며 가느다란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에 크리스마스까지 약 한 달, 온전히 서 있을 수 있다. 

나무를 잘 세워놓은 뒤 초록색, 빨간색, 은색의 볼을 달고 200개의 전구를 가지 위에 올리고 난 뒤 불을 켜는 순간, 우리 둘은 다섯 살과 일곱 살 어린아이처럼 온 집안을 신나서 뛰어다녔다. 어두움에서 빛이 생기는 순간, 그리고 그 빛으로 인해 전해지는 부드러운 따뜻함. 


요즘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튤립에게 인사하며 물을 갈아주고 한 사발 물을 받은 그릇에 영양제를 약간 섞어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부어준다. 그리고 밤새 물을 얼마나 먹었는지 슬쩍 살펴본 뒤 나뭇가지를 살살 잡아당겨본다. 잎이 떨어지지 않으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기에 매일매일 잘 살아있는지 확인한다. 

나 역시 아침이면 불을 밝힌 뒤 나뭇잎 한가운데 코를 박고 킁킁 거리며 숲의 냄새를 맡는다. 질척한 흙바닥을 잘 피하며 엄마와 함께 산책하던 그 소나무숲길을 기억하며 오늘도 나도 너도 잘 살아 있으니 어디 한 번 잘 지내보자고 마음으로 이야기한다. 

한 주가 지나면 크리스마스다. 콜롬비아 친구 웬디가 자기 가족은 내 가족, 그리고 자기 집은 내 집이나 마찬가지니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에 초대했고 연말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싫어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을 미리 예매했다. 가끔 다운타운에 가면 여기저기 밝힌 불과 크리스마스 장식이 예쁘게 느껴지지만 춥지 않은 이곳에서 맞이하는 성탄절을 익숙하지 않기에 조금 낯설기까지 하다. 

그래도 우리는 이곳에서 맞이하는 첫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고 지내는 중이다. 그때까지 우리 집을 밝혀줄 살아있는 크리스마스트리와 함께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clich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