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되는 일에 대한 기록
매일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지나온 일을 기록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했다. 그리고 그 후회를 잊어버리고 또 같은 실수를 할까 두렵다. 기록은 지나간 일뿐만 아니라 내일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부쩍 요즘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우리 할매는 글을 모르셨다. 전쟁이 끝나고 야학에서 잠깐 배운 게 다였다. 치매로 텅 비어버린 기억에 남은 건 막내 삼촌 이름과 할매 이름이 다였다.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아파트 문을 열쇠로 여는 것이 불가능하셨던 할매는 밖에 나가시는 걸 꺼리셨다. 집에만 계시던 할머니는 치매가 급속도로 심해져 아파트로 이사온 이듬해, 요양병원으로 가셨다. 그리고 석달 뒤, 돌아가셨다.
병원에 면회를 가면 나를 기억도 못 하시고 "옷 참 곱다, 어디서 샀어요?"라고 텅 빈 눈으로 물어보셨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김혜자가 아들 이병헌에게 글씨를 써달라고 하는 장면에서 우리 할매가 생각이 났다. 언젠가 할매가 사업 실패로 고향에 내려오지 않는 삼촌 이름을 몇 번이고 써 달라고 하셨다. 두어 번 가르쳐 드리고 자꾸 알려달라 하셨지만 나도 미루기만 했고, 서울로 진학한 뒤 집에 자주 못 내려갔다. 신입생 때니 부어라 마셔라 신나게 술마시고 노느라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셨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요즘 아이가 글씨를 배우고 쓰는 걸 보면서 그때 할머니가 생각났다. 그때 한글을 가르쳐 달라던 할머니한테 살갑게 한글도 가르쳐 드리고 함께 산책도 할 걸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할머니는 막내아들에게 그렇게 편지를 쓰고 싶어하셨는데, 나는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 그땐 왜 그랬을까.
그때 삼촌은 알고 있었을까. 할매가 얼마나 삼촌을 그리워했는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장례식장에 나타난 삼촌이 얼마나 밉던지. 그리 오래 된 일인데도 잊히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그 시절 할매들은 다 왜 글도 모르고 아들 편만 들고 며느리인 엄마에게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할매들, 엄마들은 다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남편이 하늘이라니 그런 말을 정말 믿고 산 할매들이 어이없고 불쌍했다.
잘난 아들, 잘난 남편 모시느라 평생이 다 한숨처럼 날아가버렸다. 자기 몫의 집 하나 없이, 글자도 모르고, 그렇게 사라졌다. 아들 편만 드느라 며느리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맨날 늦게 들어오는 아들, 살가운 말도 하지 않는 아들, 사업하느라 다 떨어먹은 아들이어도 그리워만 했다.
분명히 나는 그 시절의 할매들이랑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나를 말로 글로도 당당히 표현할 수도 있고,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알아달라 떼를 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상처받고, 인정받지 못하면 안달복달한다.
모자란 사람이지만 후회되지 않게, 사랑하는 이들을 더 사랑하고, 나를 더 아껴주는 일. 부족하고 모자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기. 이 모자란 글쓰기의 최종 목적지도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