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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골 Oct 18. 2019

Prologue

22살에 떠난 반년간의 유럽여행, 그 기록에 관하여 


애매한 나라는 사람


여행의 시작이 그렇게 거창했던 것은 아니다. 

모든 걸 버리고 훌쩍 떠나버린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원대한 여행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일관성을 가지고 애매했던 것 같다. 항상 애매한 재능, 애매한 관심사를 가지고 애매한 노력을 들이며 살다보니 어느새 아직도 진로고민을 하고 있는 애매하게 덜 큰 20대 초반의 어른이 되고 말았다. 


요즘은 모두가 자기 정체성을 찾고 드러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시기이다. 특히 디자인과 학생으로서,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는건 몇번이고 땅굴을 파고 들어가 부끄러워 혀깨물고 싶어지는 일인데, 이렇게나 사람이 애매하다니. 


작년 쯤에 같이 밤샘 작업을 하던 친구에게, 아직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 때 친구는 "인스타 들어가봐 인스타. 난 사람들 피드를 보면 그 사람이 뭐 좋아하는지 보이던데"라고 말해주었고, 그렇게 들어간 내 인스타를 보고는 둘 다 함께 숙연해지고 말았다. 


#먹스타그램... 먹으면 좋긴 하지만 그게 내 관심사인가? 맛있는거 먹는거? 그런 일차적이고 생리적인 본능이 내 관심사의 전부라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셀스타그램... 나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귀찮아서 제대로 가꾸지도 않는 내 얼굴이 내 관심사일리는 없었다. #노필터... 예쁜 구름사진 노을 사진... 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지만 모두가 볼 수 있는 풍경이 나를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대학 생활의 초반은 나를 찾겠다는 명목으로 헤매기만 했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진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혹시 다른 사람 중에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여행은 그러던 중에 떠나게 되었다. "나를 찾기 위한 여행", 흔하고도 동시에 허황되어 보이는 이 수식어는 여행을 떠나는 모두가 한번쯤은 대입해 보았을 텐데 나 또한 그랬다. 두번 다시는 오지 않을 장기 여행을 어떻게 보면 어린 나이에 떠나게 되었고, 그래서 실수도 많았지만 동시에 나를 찾고 싶다는 그 거창한 목표를 부끄럽지 않게 얘기할 수 있었다. 교환학생이라는 제도를 붙잡아 시작하게 된 이 여행의 시작은 아주 미약했다. 처음부터 비행기표를 잘못 끊어 날려버렸고, 입국거부를 당할 까봐 조마조마 마음 졸이기도 했으며, 힘들게 구한 방 에이전시가 보증금을 먹어버리기도 했고, 확신이 없이 계획한 일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자로서 돌아다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확신없고 나약한 모습 뿐만 아니라 내가 모르던 새로운 모습이 나를 놀래키기 시작했다. 


반년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속에 오로지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 가슴 뛰는 새로운 것들을 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부터 말이 너무 잘 통하고 편한 사람도 만났고, 이상하게 노력해도 빙빙 돌기만 하는 것 같은 사람도, 내 자존감을 높이는 사람도, 낮추는 사람도, 그 때마다 새로운 모습의 나와, 완벽히 혼자가 되어 낯선 곳에 놓였을 때의 나까지. 새로운 나를 만나게해준 소중하고 낯선 경험들을 모두 기록해보려고 한다. 


여행을 떠나기 이전의 삶 속에도 가슴을 뛰게 한 경험이 있었고, 세상을 넓혀준 사람들과의 대화가 있었고, 마음 속 깊이 남은 책이나 영화가 있었고, 혼자 방에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겼던 시간이 있었을 텐데, 기록되지 않은 시간은 내 곁에 남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오랜 시간 여행자로 살면서 느낀 때론 황홀했고, 때론 두려웠던 22살 낯선 여행의 순간들이 이제 내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글과 사진으로 기록되고 읽어주고 있는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 아주 작은 반동이라도 일으킬 수 있기를 희망하여 이 글을 시작한다.


어렸던 저의 긴 여행기를 함께 해주세요 :) 감사합니다



목차


01. 프롤로그 


02. 해가 없는 런던

런던의 봄학기


03. 우울한 런던을 떠나 만난 스위스 (부제: 스위스 사람들은 도대체 전생에 무슨 착한 일을 했길래)

(로이커바츠, 인터라켄, 그린델발트, 루체른 리기산, 취리히)

+ 선에 대한 고찰 (에세이)     


04. 처음 마주한 열정의 스페인

 1)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당한 소매치기 천국 (바르셀로나)

 2) 4월의 스페인 정원 (마드리드)

 3) 스페인 성당에 관하여 (톨레도 세고비야)

 4) 오렌지에 관하여 (그라나다, 알함브라궁전)

 5) 이방인이라는 건 (프리힐리아나)

 6) 고난주간에 세비야에서 살아남기 (세비야)     


05. 자전거의 도시 네덜란드 (부제친구라는 건)

 1)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야한다. (20대의 관계에 대하여)

 2)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건 (마스트리트)

 3) 대마가 그렇게 몸에 좋다면서요? (암스테르담. 퀴겐호프 –대마, 성매매 등에 관하여)  

   

06. 프랑스 (부제:당신은 어디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가요?)

 1) 두 얼굴의 도시 파리 (노란조끼시위)

 2) 프랑스 남부에서 만난 샤갈과 피카소

 2-2) 사랑에 관하여 (에세이)     


07. Somewhere in Northen Italy (부제르네상스의 중심지 북부 이탈리아)

 01) 물의 도시 베니스 

 01-2) 당장 내일 죽는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건가요 (인생의 의미에 관하여)

 02) Call Me by Your Name 

 03) 꿈만 꾸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 피렌체

 04) 로마의 휴일

 05)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08. 혼자만의 시간

 01) 클림트와 모차르트, 사운드오브 뮤직과 함께라면 외로울 수 없어 (오스트리아)

 02) 런던 밖의 영국의 모습 (브라이튼)

 02-2) LOVE YOURSELF 


09. 여름의 지중해로 더욱 가까이 (크로아티아, 그리스, 남부 이탈리아)

 01) 베니스의 흔적이 남은 크로아티아

 02) 신들이 떠나고 남은 건 (그리스)

 03) 지중해의 수평선을 향한 마지막 항해 (자킨토스)

 04) 마피아의 도시 시칠리아

 05) 폼페이

 06) 아름다운 곳 (포지타노, 아말피, 카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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