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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골 Feb 05. 2020

우울한 런던을 떠나 만난 스위스

스위스 사람들은 도대체 전생에 무슨 착한 일을 했길래







스위스는 영국에서 만난 수(가명)라는 친구와 함께 떠났다. 비행기에서 스위스가 내려다보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난 스위스와 사랑에 빠져서 수에게 이미 이 여행은 최고의 여행이라고 얘기했다. 내가 좋아하는 눈 덮인 숲, 그리고 아기자기한 마을, 여러 갈래로 흐르는 에메랄드빛의 호수와 끝없이 이어지는 눈 덮인 산맥이 완벽히 따스한 햇볕을 받아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특히 마을이 가까워질 때는 내 쪽 창가가 해를 등져, 우리가 탄 비행기의 그림자가 마을에 드리워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는 기차를 타고 거의 세 시간을 이동했는데 그 시간 중에 창가에서 눈을 뗄 수 있는 순간이 없었다. 


런던의 겨울 하늘은, 비 오고 구름이 잔뜩 껴 모든 것이 칙칙한데, 이곳을 오니 모든 순간이 해를 받아 아름다웠다. 우리는 도시 여러 개를 포함하는 아주 큰 호수 (Lac Léman)을 따라서 달렸는데 여기 호수는 에메랄드빛으로, 해를 받으면 투명하게 반짝이곤 한다. 알프스 산맥 위의 얼음이 녹아서 내려오는 물이라서 색이 그렇다고 수가 알려줬다.      


옛날에 독일이 스위스를 점령했을 때, 온천이 있던 지역에는 다 바트라는 단어를 붙였다고 한다. 스위스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간 곳은 그중 하나인 로이커바트라는 온천이 있는 마을. 마을을 가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끝없이 올라갔는데, 가는 내내 창밖의 풍경이 황홀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산 정말 높은 곳인데 그곳에 마을이 펼쳐져 그것도 너무 신기했다. 마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에 나오는 마을 같았다. 산속 눈에 잔뜩 덮인 집들이 있고, 집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하나같이 스키가 지나간 자국이 나 있었다. 내가 생각해봐도 저 집에서 걸어서 내려올 방법은 보이지 않았기에, 집에서 외출은 모두 스키를 타고 나오나 보다고 생각했다. 온천은 너무 좋았다. 특히 일부러 해가 지는 걸 보고 싶어 일몰 시간을 끼워서 갔는데 하늘색이 천천히 바뀌면서 달이 점점 더 선명해지는 걸 보는 게 기분이 좋았다. 물에 둥둥 떠서 하늘과 눈 덮인 산을 보는데 내가 이러려고 이곳에 왔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달, 물, 자연이 합쳐져서 신선놀음한 듯했다.     


그날 온천을 마치고 나서 우리는 배가 너무 고파, 모든 것이 고요하게 잠든 스위스 작은 마을의 밤거리를 헤맸다. 그렇게 겨우 찾은 식당의 문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식당이라기에는 동네 펍 같은 느낌이었고, 모두가 모여 앉아 술을 마시며 카드게임을 하거나 축구 게임을 보고 있었다. 우리가 주저하며 들어가서 종업원께 혹시 먹을 게 있냐고 (거의 조난당한 사람들이 도움을 구하듯이) 묻자,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셰프분이 나오셨다. 의사소통이 완벽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아마 시간이 너무 늦어서 음식은 팔지 않고 음료만 파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먹을 것을 찾자, 그분은 클럽 샌드위치를 해주시겠다고 하셨고 우리는 스위스 물가가 너무 겁이 났기에, 샌드위치를 하나만 주문했다…. 스위스에서 버거킹 세트를 하나 주문하면 우리나라 돈으로 2만 원가량이 나간다. 이날의 샌드위치 또한 삼만 원가량이었다. 그리고 셰프분이 그럼 두 명이 나눠 먹는 거냐고 하셔서 창피하지만 그렇다고 했는데 나온 음식을 보니까 샌드위치랑 샐러드랑 감자튀김을 세트로 각각 하나씩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덕분에 밤 중에 주린 배를 안고 자지 않을 수 있었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인터라켄으로 이동한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원래는 수현이가 패러글라이드를 타고 나는 동행을 구해 보드를 타러 가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수현이와 패러글라이딩 하는 곳에 갔는데 거기서 설득을 당해서 정신을 차려보니 함께 벤을 타고 산을 올라가고 있었고, 신발을 갈아 신고 있었고, 패러글라이더와 함께 통성명을 하고 있었고, 어쩌다 보니 패러글라이드 장비를 차고 언덕을 달리다가 날았다!      

사실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높이 올라가야 하는 일들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나는 건 내 꿈에 너무나 자주 등장하는 일이기도 했고 언제 또 친구랑 같이 날씨 좋은 스위스 겨울날에 패러글라이딩을 할까 싶기도 했다. 패러글라이딩 경험은 굉장히 황홀했다. 그리고 너무 짧아서 정말 찰나의 꿈같기도 했다. 수현이랑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서로의 느낌을 공유했지만, 너무 빠르게 그 순간이 잊혀지고 벌써 어제의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인터라켄은 호수 두 개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마을 위를 날았다. 산을 끼고 날면서 마을과 양옆의 호수를 다 볼 수 있었는데 정말 너무 예뻤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기분은 나는 기분이라기보다는 하늘 위를 천천히 걷는 기분이랑 더 비슷한 것 같았다.

뒤에서 패러글라이더분이 같이 하늘을 날았는데, 그분이 마을 풍경을 보면서 자기 어렸을 적 얘기를 해주셨다.      

'저기 보이는 마을은 내가 자란 마을인데, 항상 저기 보이는 학교로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서 갔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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