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아빠와 빨리 크는 딸

반백살 카피라이터의 초딩 아빠 적응기

by 최영훈

프롤로그....

은채는 2012년 2월에 태어났습니다. 원래 예정일 보다 삼 주 정도 일찍 태어났죠.

출산 며칠 전, 그날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은 아내의 산후 미역을 사러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기장에 갔었습니다. 유명한 전복죽 집에서 죽과 싱싱한 해물 모듬을 곁들여 먹고 품질 좋은 미역을 한 보따리 샀죠.


그날 밤, 아내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전 혼자 맥주를 마시면서 스포츠 채널을 보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새벽, 아내가 이상하다며 잠을 깼는데 뭔가 흐르고 있었죠. 알고보니 양수였습니다. 바로 119에 전화 해서 5분도 안 되어 도착한 응급차를 타고 아내의 직장인 해운대의 한 병원으로 갔습니다. 아내는 바로 진통을 했지만 은채는 쉽사리 나오지 않았고, 결국 며칠을 엄마와 실랑이를 하다가 제왕절개를 통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아내는 산후조리를 겸한 출산 휴가를 삼 개월 사용한 후 직장에 복귀했고 황혼 육아를 거절하신 외할머니와 미국에 살고 있는 친할머니로 인해 당시 프리랜서였던 아빠가 육아를 담당했습니다.


은채는 쑥쑥 자라서 2012년 6월 중순쯤에 뒤집기를 했습니다. 그 해 겨울쯤 걸으려 애를 썼고, 돌잔치 때는 걸어 다녔습니다. 엄마보다는 아빠라는 말을 먼저 했고, 근처 공원에서 꽃의 이름과 나무의 이름을 제일 먼저 가르쳐준 사람도 아빠였습니다. 2014년, 세 살 반 무렵부터 다닌 작은 어린이집을 유모차와 세 발 자전거를 밀며 매일 걸어서 데려다 준 사람도 아빠였고, 첫 번째 여름 방학 때 처음 지하철을 함께 타 준 사람도 아빠였습니다. 여섯 살 때 처음 기차를 타고 원동에 가서 매화를 함께 구경한 사람도 아빠였고, 박물관을 데려다 준 것도, 킥보드와 자전거를 가르쳐 준 것도 아빠였습니다.


사는데 바쁜 아빠들은 좀처럼 경험해보지 못한, 딸이 크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키웠습니다. 엄마는 바쁘게 일하면서도 이유식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놨고, 덕분에 은채는 스테이크에 소스를 바르지 않고 브로콜리와 파프리카, 오이 같은 채소와 상추쌈, 배추쌈을 좋아하고 다시마 채 무침, 콩나물, 참나물, 숙성 연어와 모듬회를 좋아하는 부산 소녀가 됐습니다.


은채는 어느덧 아빠의 명치만큼, 엄마의 어깨만큼 자랐습니다. 그런 은채에게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선물, 어쩌면 카피라이터 아빠이기에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은채의 초등학교 1년을 담담히 담아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