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 준비

어린이집 시절과 작별을 준비하며

by 최영훈

올해, 은채는 학교에 갑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크게 둘로 나뉜다고 하죠. 초등학교를 두려워하는 아이와 기대하는 아이. 은채는 후자 쪽입니다. 이미 작년 초에 주민 센터에 가서 어느 초등학교를 가는 지 물어서 알기에 은채는 대천 초등학교를 일 년 전부터 자기 학교처럼 얘기했습니다. 다른 학교에 가서 헤어지는 친구들을 아쉬워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아빠인 저는 그저 10월부터 설레는 맘으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미국 사람에게 공감 못하듯이, 먼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의 설렘은 막연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의 기대처럼 느껴졌죠. 그러나 연말에 취학 통지서가 오자 우리 모두-아이, 엄마, 나-는 현실임을 자각했습니다. 은채는 더 설레어했죠.


실제로 취학 통지서 안에 있는 학교 안내문에는 절대로 학교를 무서운 곳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너 그러면 학교 가서 선생님한테 혼난다." 이런 말을 절대 하지 말라고 말이죠. 아이에게 학교는 새로운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공부하는 곳임을 인식시켜달라고 그야말로 부탁하고 있었습니다.



예비 소집일을 안내하는 안내문에는 실내화를 새로 준비 해 오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아내나 나나 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으니 실내화에 대한 공감대와 기호적 인식은 동일했습니다. 하얀 캔버스 천에 발에 딱 맞는 발레 슈즈와 고무신을 합쳐 놓은 디자인. 발 등 위에 얹어진 파랗고 빨간 선. 검색을 해보니 그런 실내화는 이미 없었습니다.

아내는 벌써 아이를 초등학교를 보낸 친구들한테 메신저를 돌리고 전화를 하고 은채의 어린이집 친구 중에서 이미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형을 두고 있는 재하네 집에 전화를 걸어 고급 정보를 획득했습니다. 밑창이 꼭 하얀 실내화여야 한다고. 물론 안내문에도 그렇게 쓰여 있었지만 그게 정말 빼도 박도 못할 규칙인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마치 윔블던 테니스 대회의 규정 같다고나 할까요? 아내가 직장 근처 백화점에서 조건에 딱 맞는 실내화를 사 왔습니다. 이로써 은채의 첫 번째 초등학교 준비물이 마련됐죠.


두 번째로, 아내는 교통 카드를 사주자고 했습니다. 매번 걸어 다닐 텐데 무슨 교통카드인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가까운 서점이나 엄마 회사가 있는 해운대 장산역까지 가더라도 지하철을 타야 했습니다.

아내는 자신의 옷을 쇼핑하듯이 신중하게 스마트 폰으로 검색을 했습니다. 괜찮은 디자인은 은채에게 보여주면서 모녀는 신중하게 상의 했습니다. 마치 남자가 새 자동차의 색상을 고르는 듯이 말이죠.

아이들의 교통카드 대부분이 편의점에서 팔고 있으며 그중 특정 편의점에서 파는 것이 예쁘다는 고급 정보도 얻었습니다. 며칠 후 주말, 삼촌 집 근처의 “그” 편의점에서 은채는 보라색에 펄이 들어간 교통카드를 구입했습니다. 아내는 오천 원을 충전해줬죠. 그리고 다음날 일요일 아내는 은채 교통카드를 시험해보고 그 카드를 넣을법한 목걸이 지갑을 사오라며 아빠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은채는 이날 처음으로 교통카드를 찍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아직 초등학생이 안됐으니 밑으로 들어가서 타도된다고 했지만 은채는 한사코 찍고 탔습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그 이유를 들어보니 은채가 이제 곧 초등학교 들어가는데 밑으로 들어가다 아는 친구라도 만나면 부끄러울 것 같았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왕복 지하철 한 정거장을 구지 결제하고 탄 것이죠.


아이는 실내화와 교통카드를 통해 더 큰 사회로 진입하는 규칙과 도구를 터득해 나가고 있습니다. 어린이집은 법적으로 열흘 정도 빠져도 정부 지원을 받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미취학 아이에겐 아직 느슨한 규칙이 적용 되는 것이죠. 그러나 학교에는 개근이 존재합니다. 실내화 색깔 규정이 존재하고 말이죠. 물론 요즘엔 1,2학년 애들에게 시험, 숙제, 받아쓰기 같은 것도 안 시킨다지만 그게 아니어도 학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비하면 거대한 시스템이고 그 시스템은 규칙, 구조, 체계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아이는 본인의 성격답게 그것을 곧이곧대로 지켜나갈 겁니다. 윔블던 대회에 처음 나가는 선수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속옷과 물통까지 흰색으로 준비하듯이 그렇게 온전히 규칙을 따르려 하겠죠.


아이는 본연의 존재감에서 사회적 존재감을 터득하는 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조직과 사회가 원하는 능력과 외적, 내적인 조건을 갖추면 그 조직과 사회에 걸 맞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겠죠. 그러면서 어쩌면 점점 아이는 자기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생답게, 반장답게 사는 법을 깨우치고 궁극에는 사회화 되어 가는 걸까요? 그렇게 사회화 되어 가던 어느 시절, 아빠에게 안기는 횟수가 줄어들겠죠?

이전 01화늙은 아빠와 빨리 크는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