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소녀의 경계에서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61

by 최영훈

옷장 정리 전문가

딸과 함께 옷을 고른다. 등교 패션, 놀러 가는 패션, 운동 패션 할 것 없이 아빠에게 의견을 물으면 그때마다 성실히 답해주고 함께 고민해준다. 이럴 날도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동안 딸에게 새 옷이 생기면 내가 다 정리를 해 왔다. 계절에 따라 옷장 서랍에 옷을 바꾸는 것도 내가 했다. 애초에 발단은 이렇다. 딸이 막 돌이 됐을 무렵부터 미국에서 옷이 오기 시작했다. 미국에 사는 친할머니와 이모가 번갈아 박스를 보냈다. 특히 이모에겐 은채보다 네 살 많은 딸이 있었기 때문에 옷을 물려 입기 딱 좋았다. 또 몇 년 후 이모가 간호사로 자리를 잡은 후부터는 일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나오게 됐다. 그때마다 사촌 언니가 입던 옷과 새 옷이 들어간 은채 선물용 캐리어를 별도로 들고 왔다.


상식적이고 일반적으론 보통 옷을 사면 한 두벌 사지 않나? 그러니까 새 옷이 갑자기 한 보따리 생겨서 이 많은 걸 다 어디다 넣어두나, 이런 고민을 할 일이 거의 없지 않냔 말이다. 나 또한 그랬다. 어린 시절은 물론이고 요즘도 옷을 한 벌도 안 사고 넘어가는 해가 많다. 특히 요즘엔 새 옷을 사면 헌 옷 하나는 무조건 재활용 수거함에 넣는다는 나름의 철학을 세워두고 있어서 더 신중히 옷을 산다. 그러니 내 옷장을 정리할 일은 거의 없다. 옷장의 정리 스킬은 어디까지나 딸의 옷장을 정리해주면서 터득한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딸은 자신의 패션을 나랑 상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옷이 어떤 색으로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건 아빠밖에 없기 때문에.


취향의 변화

3학년 가을부턴 좀 달라졌다. 딸의 레깅스에는 화려한 것이 많다. 그런 것 중 하나를 골라주면 약간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왜?”

“아... 아빠, 나도 이제 좀 화려한 게 그래.”

“나중에 나이 들어서, 그러니까 아빠만큼 나이 들어서 후회하면서 요란하게 입지 말고 지금, 뭘 입어도 예쁠 때 열심히 요란하게 입어.”

말은 이렇게 했지만 딸이 무난한 레깅스 고르는 걸 말리지 않았다. 현란한 무늬와 도드라진 색이 부끄러운 나이가 된 것이다. 너무 튀는 것이 부담스러운 나이가 된 것이다. 일종의 사회적 주체로 성장해가는 필연적인 과정 아닐까? 개성적인 주체임과 동시에 사회적인 주체로의 자리매김도 서서히 고민하는 나이가 된 게 아닐까?


이 날 아침의 등굣길, 앞에 가는 여중생이 회색 후드 스웨트 점퍼에 검은색 트레이닝팬츠를 입고 있었다. 그 학생을 보며 딸이 말했다. 저렇게 칙칙하게 입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화려하게 입고 싶지도 않다고.


유행에 신경을 쓴다.

날씨가 쌀쌀해진 11월 이후부터, 겨울 내내 딸은 일명 뽀글이 점퍼를 주야장천 입고 다녔다. 딸은 에스파에 빠져 있었다. 그런 딸이 아이더 광고를 그냥 넘어갈 리 없다. 유심히 광고를 보면서 쌈디의 내레이션도 따라 했다. 경주 여행 전 마땅한 바람막이가 없어 쇼핑몰에 갔더니 뽀글이 점퍼를 사 달라고 했다. 마침 적당한 브랜드, 적당한 가격의 제품이 있어 사줬다. 브랜드를 떠나 애들 다 입는 점퍼가 자기도 생겼다는 사실에 만족해했다.

고1짜리 딸이 있는 감독에게 이 얘기를 해줬다.

"아이고 이제 시작 아잉교. 좀 있으면 브랜드도 볼 꺼라."

얼마 전 클래식 음악을 하는 감독의 딸이 귀를 뚫었다. 감독은 "와, 코도 뚫고 다 뚫지 그랬나."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야. 이거 나중에 문신한다카믄 우짜지?" 감독이 불쑥 물었다.

"그러게. 어쩔래요?"

"마. 팍 쫓아내뿔까?"

“하하, 안 보이는데 살짝 하면 시집갈 때까지 모를걸?"


스우파와 쇼미 더 머니

딸은 이제 방송 프로그램에도 나름의 취향이 생겼다. 만화도 졸업했고 디즈니의 공주님들 나오는 영화도 졸업했다. 이 해 가을부터는 Mnet의 열혈 시청자가 됐다. 아무래도 방과 후 교실에서 방송 댄스를 하다 보니 춤과 음악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집에서도 틈나면 춤 연습을 했다. 덕분에 팔다리도 길어진 것 같고 운동도 되고 소화도 잘 되는 모양이다. 공부 스트레스도 적당히 날리고 말이다. 이런 딸이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를 열심히 보는 건 당연하다. 어찌나 진지하게 <스우파>를 보는지 팀원들의 이름이며, 춤 스타일이며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을 다 꿰고 있었다.


스우파가 끝나니 쇼미 더 머니를 본다. 음... 힙합이라. 나도 뭐 대충 한 십 년 전까지는 열심히 들었다. Jay-Z와 Nas를 좋아했고, Nujabes와 Nomak 같은 재즈 힙합을 귀에 꽂고 살았다. 리쌍, 다이나믹 듀오, 에픽하이의 앨범은 거의 다 들었었고, 사이먼 도미닉, 일명 쌈디의 믹스테이프도 열심히 들었었다. 몇 년 전엔 비와이의 쇼미 더 머니 파이널 무대를 보면서 "야, 저 놈 물건이네."하고 감탄도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1회부터 쇼미 더 머니를 챙겨 본 적은 없다. 파이널 무대 정도만, 그것도 재방으로 우연히 보는 게 전부였다. 이렇게 모든 래퍼의 스토리를 알고, 사적인 관계까지 알면서 흥미진진하게 본 적은 없다는 것이다. 딸은 아주 진지하게 본다. 또 나에게 어떤 종류의 랩을 좋아하냐, 어떤 스타일의 힙합을 좋아하냐고 묻기도 했다.


음악 얘기, 대중문화의 취향 논의는 좀 더 커서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르다. 물론 이전 칼럼에도 썼듯이 딸의 취향과 내 취향은 그 간극이 커서 지금은 서로 관망하는 추세다. 하지만 언젠간 내가 간직한 수백 장의 CD와 카세트테이프, LP 등에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러면서 서서히 록과 재즈의 세계로 빠져주면 더 좋고.


그럼에도 마이웨이

재미있는 건 이렇게 트렌드에 민감하면서도, 자기 세계가 분명하다 보니 어쩔 땐 자기가 입고 싶은 데로 입는다. 날씨가 쌀쌀해지자 까만색 트레이닝 바지와 회색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가기도 했다. 방송 댄스 하는 날은 그러려니 했는데, 그렇지 않은 날은 그냥 편한 거 입자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경주와 청송을 갔을 때도 그랬다. 아이에게 제대로 된 가을을 보여주려 했다. 경주에서는 해설사 선생님의 안내로 남산의 유적을 보는 프로그램을 예약해서 올라갔다 왔고, 청송에서는 당연히 주왕산을 갔다. 나나 딸에게는 인생 첫 번째 단풍 구경이었다. 갔다 온 며칠 후, 딸에게 물었다. 어떤 산이 더 좋았냐고. 딸은 바로 답했다. 경주 남산이라고. 이유를 물었더니 주왕산의 단풍도 좋고 가을의 자연이며 암벽, 게다가 다람쥐를 본 것도 좋았지만, 경주 남산은 중간중간 설명도 곁들여져 심심할 틈이 없었고, 절벽마다 새겨진 보물이며 유적을 보려고 험한 코스도 마다하지 않고 올라서 정말 등산하는 기분이 들어서라고 했다.


주왕산은 용추폭포까지는 휠체어도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산책로를 잘 정비해 놨다. 그러니 등산이라기보다는 공원 산책과 같은 기분이 든다. 덕분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을 단풍 때마다 찾는 명소가 됐겠지만 열 살짜리 모험가 딴에는 그 평탄함이 심심했던 모양이다.


딸이 이 모험 정신을 지닌 채 남은 인생을 살아주길 바란다. 경주 남산처럼 인생의 곳곳마다 우린 배울 것이 있고, 때론 그 배움을 위해선 평탄한 길에서 벗어나 험한 길을 가야만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딸은 선생님과 친구들의 시선-반장이니 그건 어쩔 수 없다-도 신경 쓰면서, 동시에 자기만의 개성이라는 영역을 절묘하게 지켜내고 있다. 엄청 사회성이 뛰어난 엄마와 사회성 떨어지는 아빠와의 절충적인 존재라고나 할까? 그 경계선을 그렇게 계속 잘 타 주길 바란다. 세상에 함몰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세상과 싸우지도 않는 그런 존재. 세상의 모든 아티스트들, 아니 어쩌면 모든 주체는 궁극적으로 세상과 싸우고 화해하길 반복하며 사는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