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3
나이가 들면 뭐든 다 알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안다. 특히 함께 오랜 산 배우자의 속내나 심리는 더 그렇다. 현상은 있는데 그 원인을 찾을 수 없어 황당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뭐, 다들 그런지 모르겠다. 우리 부부는 오래됐다. 1999년에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우스갯소리로 세기말과 21세기의 위기를 함께 넘어왔다고 말하곤 한다. 그렇게 난 쉰이 넘었고, 아내도 40대 중반을 넘었다. 당연히 섹스의 열정은 사라졌다. 애를 낳고 키우면서 더 그렇게 됐다. 우리는 전형적인, 그러니까 각종 통계에서 인정하는 전형적인 섹스리스 부부였다. 한 달에 한번 할까 말까 한...
그렇다고 뭐, 둘 다 전형적인 아저씨, 아줌마가 된 것도 아니다. 난 아직 식스팩이 있고 최근 수영을 하면서 군살이 더 빠졌다. 아내 또한 고운 피부에 지적인 외모,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솔직히 남자라면 한 번쯤 안아보고 싶은 여자다.
9월 한 달, 인테리어를 하고, 10월에 다시 집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아내가 뜨거워졌다. 10월 어느 주에는 3일 연속으로 한 적도 있다. 한 달 반짝 그러고 말았다면, 요즘 애들 말로 인테리어 버브 빨이라 여기고 넘어갈 텐데, 11월에도, 12월에도 그 뜨거움은 식지 않고 있다.
뭐, 덕분에 술 마실 때마다 그 주량에 신경을 쓰고 최소한 일주일에 서너 번은 수영을 하고 있다. 그것도 가장 빡센 마스터 A반으로 옮겨서 말이다. 나야 뭐, 술만 안 마시면 아직 그 정도 체력은 있는 사람이라 그저 고마울 뿐인데 갑자기 왜 이렇게 변했는지 알 길이 없어서 그 이유를 생각해내고 있다.
인테리어 버프일까? 실제로 인테리어를 하고 나서 처음 온 아이의 수학 학습지 선생님 - 40대 여자다 - 은 “아이고, 좋습니다. 둘째 보시겠네요.”라는 덕담 아닌 덕담을 했다. 그때 난 속으로 “아니 인테리어 바꿨다고 무슨 둘째를...”했는데, 역시 아줌마는 뭔가 다르긴 다르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수학 선생님이라 그런가?
일단 분위기가 화사해졌다. 거실은 벽은 흰색, 원색의 꽃 그림, 깔끔한 원목 식탁, 천장엔 실링팬이 장식하고 있다. 안방도 깔끔해졌고. 얼핏 호텔 같기도 하고 고급 부티크 모텔 같기도 하고 그렇다. 특히 조명이 달라져서 밤이 되면 그 분위기가 더 산다. 아내가 더 예뻐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두 번째는, 딸이 자기 방에서만 자려고 한다. 예전에는 추워지거나 주말에는 종종 안방에서 자고 싶어 했는데 지금은 일주일 내내 자기 방에서만 자려고 한다. 게다가 문을 꼭 닫고 잔다. 물론 우리도 문을 꼭 닫고 자고.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섹스하는 모습을 들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아내 같이 보수적인 사람에겐 더 심각한 문제다. 나 같이 개념 없는 인간은 “뭐, 그것도 다 애정 표현 아니야?”하고 생각하지만, 평범한 엄마들에겐 용납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특히 딸을 둔 엄마들에겐 절대 들켜선 안 되는 장면이다. 그래서 집 안의 모든 문을 바꾸고, 아이가 자기 방에서만 자고, 여기에 창고로 쓰던 안방의 욕실을 깨끗하게 고친 것이 안방에서의 섹스를 편하게 여길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다.
세 번째는, 그 시기가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주 상투적으로 여자의 성적 욕구의 절정기는 삼십 대 중반이라고 하는데, 그 계절이 어디 사람마다 같겠나? 식물마다 꽃과 열매가 열리는 시기가 다르듯 사람 또한 그럴 것이다. 아니 사람은 더하겠지. 어쩌면 아내의 전성기는 지금 아닐까?
또 하나의 시기에 대한 인식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바로 갱년기와 폐경기. 물론 그 시기가 임박했음을 인지한다고 해서 갑작스레 섹스가 땡기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이 <인생학교-섹스>에서 넌지시 얘기했듯이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섹스의 기회, 열정적인 시간, 이성이 꺼지는 장소에 대한 갈망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 기능이 다하고 있음을 체감하기 때문이다.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람 구실하는 것과 남자나 여자구실을 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야말로 하나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자 그 욕망을 육체를 통해 발산할 수 있는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백 세 시대라고 해서 그 시간도 함께 늘어나는 건 아니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어떤 초조함이 아내에게 열기를 불어넣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기 마음에 쏙 들게 인테리어를 잘해서, 그래서 잃어버렸던 성적 감수성이 되살아 났는지도 모른다. 더불어 아이가 자기 방을 좋아하고 그 방에서만 자게 되면서, 또 안방의 인테리어와 문과 같은 여러 조건들이 완성되면서 성적 욕망이 새어 나올 틈새를 만들어줬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여러 예상 답안들이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당신 요즘 왜 그렇게 분발하는 거야?”라고 물어볼 수 없다는 말이다. 그저 만져주고 안아주면 감사히 생각하고 받아들일 뿐이다. 잘해놓은 인테리어가 오래 유지되고 독 보이도록 자주 청소하고.
이런 공간 및 실내분위기와 섹스 및 불륜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글을 예전에 써 놨었다. 그 글을 밑에 이어 놓았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는 날이구나. 미리 내놓자. 어쩌면 오늘도...
2022. 12. 28.
김정운 교수가 집과 호텔의 차이점을 생각해보니 두 가지였다고 한다.
하나는 빠삭빠삭한 침대보와 이불... 다른 하나는 간접조명...
모텔이나 호텔을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형광등 같은 허연 조명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간접 조명이다. 그런데 숙박업소 중에서 펜션, 콘도 등은 직접 조명이 제법 있다.
그건 왜일까? 아마도 가족 단위가 관광객이 많아서 일 것이다.
어찌 됐든... 어젯밤 어둠 컴컴한 안방에서 거사를 치른 후 잠들기 전...
모텔은 왜 조명이 여러 개이고 곳곳에 거울이 많은지 새삼 생각해보게 됐다.
근본적인 이유는 부부의 섹스와 불륜의 섹스는 그 출발점과 그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부의 섹스는 그 자체가 우발적이다. 행위 자체가 우발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우발성은 익숙한 공간에서 펼쳐진다. 바로 집. 그러니까 일상의 행위들이 주욱 이어지다가 어쩌다 마음이 동해서 우발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조명이나 의상이나 음악 따위로 전반적인 섹스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기 어렵다.
돌이켜보면 80년대까지만 해도 한 가족이 한 방에서 자는 풍경이 흔했다. 지금도 애들이 어리면 안방에서 다들 모여 잔다. 커다란 매트리스 몇 개 붙여서 애들과 부대끼며 자는 것이다. 우리 집도 그렇다. 물론 애는 하나지만...
이런 상황에서 "섹스"자체가 일상과 동떨어진 "이벤트"로 계획되긴 힘들다. 이벤트란, 말 그대로 극적인 효과와 목적을 위해 계획된 사건이다. 그러나 부부의 섹스는 극적인 맥락이 아니라 일상의 맥락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반면 불륜의 섹스는 그 자체가 이벤트다. 물론 불륜도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주변에 아는 사람이거나 동호회에서 알거나 심지어 교회나 절에서 알던 사람이다. 그러니 불륜 그 자체는 절대 우발적이지 않다. 그리고 당연히 그 불륜의 섹스도 우리의 상식과 달리 계획적이다. 즉 쾌감을 목적으로 한, 섹스 자체를 만끽하기 위한 철저히 계획된 이벤트인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 이벤트의 무대 또한 그 효과와 목적을 위해 세팅되어야 하는 것이다. 조명, 인테리어, 욕실, 거울 등등.... 그래서 모텔의 공간은 주거나 숙박의 공간이 아니라 이벤트의 공간인 것이다. 또 이벤트의 공간 이어야지만 그 고유의 상품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혹시 모텔업을 하는데 장사가 잘 안 된다... 그러면 우리 모텔의 객실이 섹스라는 이벤트에 적합한 무대장치인지 점검해봐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거 하나.... 불륜의 섹스가 부부의 섹스와 다른 점 하나는 바로 이 공간에서 서로가 관음의 대상이 되느냐의 문제다. 즉 섹스를 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신체의 각 부위를 탐색하고... 더 나아가 섹스를 하는 두 사람을 거울과 같은 매개체를 통해 볼 수 있느냐의 문제다.
물론 집에서 거의 그럴 일이 없다. 형광등 불빛은 너무 적나라하니 당연히 끄고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면 당연히 섹스는 몸의 부대낌 수준에 머문다. 관음의 쾌락, 시각적 흥분이 배제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텔은 섹스를 위한 시청각실이다. 시각적으로 상호 간 가장 분위기 있고 에로틱하게 보이는 장소이고...
그와 동시에 일상이라는 공간, 외부로부터는 철저히 차단된 곳이다. 일종의 섹스를 위한 영화관 같은 곳, 연극의 무대 같은 곳이다. 그래서 모텔의 섹스, 불륜의 섹스는 철저히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아니 모텔을 가기로 명시적, 암묵적 합의가 이뤄진 그 장소, 그 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 다시 김정운 교수의 얘기로 돌아오면... 집이 하나의 섹스의 이벤트 공간이 되려면 조명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를 예약해야 한다. 즉 부부간의 섹스 자체를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계획된 사건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조명, 음악, 장소 등등..... 그리고 서로의 옷차림까지...
기왕이면 애들도 잠시 할머니 집에 맡기고... 아님 일찍 재우던가... 그래서 그 예약이 성사된 순간부터 섹스에 대한 기대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를 관음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된 조명, 음악, 술, 겉옷, 속옷을 세팅해야 한다. 마치 크리스마스이브에 연인과의 데이트를 앞두고 철저히 점검하는 남녀처럼 말이다.
이것이 모두 번거롭다면 예약만 하고 장소를 모텔로 바꾸는 것이 가장 간편하다. 굳이 밤까지 갈 필요도 없이 그냥 점심시간에 모텔로 들어가서 창문만 닫으면 그곳은 밤이 되니까.
<알쓸신잡>에서 황교익 씨가 함흥냉면을 먹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인생 뭐 있어? 인생 그냥 냉면처럼 슴슴한거야."
그러나 그 슴슴한 인생, 너무 심심하지 않은가? 모텔은 그렇게 그 슴슴한 일상을 벗어나는 일탈의 장소다. 왜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의 섹스가 고리타분해지는지 모텔과 집의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대충 답을 얻지 않을까? 우리의 인생엔 슴슴함 맛에 자극을 주는 겨자와 식초가 필요한 것이다.
2017.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