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다가오는 만남
사람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정말 그렇다기보다는 변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겠지요. 바쁜 쪽으로 변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그건 그냥 가만히 있어도 가능한 일이에요. 이 불가능할 것 같은 변화는 좋은 쪽으로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마음을 바친 정확한 시각이나 장소를 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가 그리스도께로 인도받은 단계들을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님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하셨다(생애의 빛, 147).
하나님을 만난 증거가 될만한 그런 일이 각자의 인생에서 언제였던가요?
우리는 언제 하나님께 마음을 바쳤나요? 아니면 아직 하나님께 바치지 못하고 때를 기다리는 중이신가요? 그러다가 마땅한 때가 오지 않으면 어쩌지요? 교회 문턱만 밟다가 끝나면 어쩌지요? 하나님께 마음을 드릴 정말 멋진 순간이 모든 것이 다 갖춰진 그런 순간이 올까요? 먼저 돈 벌어 놓고, 먼저 집도 사놓고, 먼저 빚 다 갚고, 우리 애 키워 놓고,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만 마쳐 놓고, 이 일만 끝나면, 이것만 해 놓고...
그러고 나서 어느 날 좋은 날, 그런 날이 오면 그때 하나님께 마음을 드릴 건가요?
우리가 어느 순간 하나님을 만났는지 기억나지 않아도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에게 선한 동기가 발동된 순간, 바로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착하게 살고 싶어진 그 순간이, 말씀을 읽어야겠다고 느낀 그 순간이, 기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순간이 이미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 없이도 착한 일을 할 수 있고 우리의 행동을 올바르게 보이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내 속에서 일어나는 선한 동기는 다르잖아요? 올바르게 보이고 싶다는 것이 좋은 동기는 아니듯, 교만과 이기심을 위해서 착한 일을 했다면 그것이 선한 동기가 아닌 거죠. 매 순간의 선한 동기에서 출발하는 성령의 속삭임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이미 하나님과 만나는 사람입니다. 바람이 불어오듯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아마도 이미 마음에 변화가 시작되었을 거예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며, 누구에 대하여 생각하고 누구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는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드렸는지 그래서 하나님을 만났는지에 대해 말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품성은 선한 행동 하나 혹은 나쁜 행동 하나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말하고 행동하는 태도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으로 소리 없이 만나 주시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