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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dal Dec 13. 2020

[브런치 라디오] 제주도의 푸른밤? 하드코어 인생아!

어릴 적부터 라디오를 품에 안고 살았다. 아직 보이는 라디오마저 없던 시절 모든 걸 청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MBC 라디오 채널을 좋아했는데 밤 열두 시 프로그램의 DJ였던, 이름도 멋진 유희열 오빠는 어떤 사람일까 하고 생각했다. 당시엔 미혼이자 서울대학교 작곡가 출신이라는 것밖에 알고 있는 것도 알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머지않아 신문에 작게 나온 그의 증명사진을 보고 난 후 잠시 울었지만, 나는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의 팬으로 남아있다.
 
 라디오 부스는 어떤 공간일까. 오래 꿈꾸었고 잠시 구성작가 생활을 했지만 한 번도 발 들여놓지 못한 곳. 유희열에 이은 나의 두 번째 오빠인 성시경 역시 라디오 프로그램 마지막 방송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의 그런 모습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볼 수가 없다. 대학교 때 MBC 출신인 모 아나운서의 출간 기념 사인회에서 나는 라디오 PD가 꿈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인 중이던 아나운서가 고개를 들고 답했다.
 ”라디오 PD, 정말 좋은 직업이죠.”
 결과적으로 그 좋다는 직업은 나의 것이 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그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궁금증을 채워줄 것만 같은 작가소개 글을 브런치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음악 칼럼니스트 피터팬입니다. (전) 서울 MBC 라디오 PD. (전) 필명 이안 작가로 활동. (현) [한국 뉴스] 음악 칼럼니스트”
 
그렇게 동경하던 라디오 PD의 삶이 무엇일까. 제대로 글을 읽어보기도 전에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여러 권이 발행된 그의 브런치북 가운데 “음악 PD 피터팬의 혼자 사는 제주”를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일까. 내가 그렸던 낭만이 아닌 생존이 이었고 그에 앞서 절망이 담겨있었다. 직장 내 폭언 문제의 가해자가 된 것을 발단으로 회사를 사직하고 가정까지 잃게 된 그의 글은 무려 자살시도 경험담으로 시작해 ‘생활비’, ‘빚’, ‘눈물’ 등의 키워드로 줄지어 있었다. 3탄까지 이어지는 브런치북의 1권에서는 제주도에서의 삶이나 풍경 묘사 등보다 작가의 지난날들에 대한 회고와 반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어릴 적 마을 수유리, 형에 대한 기억, 슬픔이 서린 부모님에 대한 추억 등 가정사를 고백하며 자신이 보내주어야 했던 아내와 자식들에 대해 반추한다. 하지만 작가에게 부디 이 삶을 버텨달라고 말하는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 있어서일까. 2탄이 되어서야 비로소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시야에 들어온 듯 제주도에서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물론 3탄이 되어서도 잔잔한 우울감은 남아있지만 ‘안녕, 제주바다’를 외치는 마지막에서는 한층 밝아짐이 느껴진다. 북한산 인근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 정상에서 브런치 구독자를 우연히 마주한다면 메론바 하나쯤 공짜로 드릴 수 있다는 말을 남긴 작가는 현재 ‘10개월차 돌싱남의 방황기1’라는 테마로 글을 이어가는 듯 보인다. 글의 시작과 마지막에서 점차적인 힐링이 보인다. 그의 브런치에 머물다 보면 내가 기대했던 과거 프로그램의 제작기나 책 소개 등에 대한 글이 함께 있어 여러 가지를 흡수하며 시간을 보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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