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피아노 치는 여인의 뒷모습에서 무엇이 느껴지나요?
힘들고 지친 삶이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것 같다.
나는 가끔 피아노 앞에 앉아서 한숨을 쉰다.
과연 이렇게 힘든 나에게 피아노가 위로를 줄까?
뭐라도 위로받고 싶은데......
음악에 상처받고
음악에 위로받고
러시아, 미국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이며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아주 큰 손을 가진 피아니스트로 13도, 도에서 옥타브 위의 라까지 닿는 아주아주 큰 손
내 손은 도에서 레까지 닿는데,
라흐마니노프는 도에서 라까지 닿는단다.
오른쪽 사진을 보면 라흐마니노프의 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작곡가로서도 러시아의 낭만주의 전통을 계승한 마지막 위대한 인물이다.
1904년부터 1906년까지 볼쇼이 극장의 지휘자를 지냈는데,
1917년의 러시아 혁명 이후, 가족과 함께 러시아를 떠나 뉴욕에 정착하게 되었다.
귀족 가문 출신인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혁명 때 재산을 몰수 당했다.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피아니스트로서 연주 활동에 집중하며
작곡가로도 사랑받았다.
연도를 보면 현대곡을 작곡했을 것 같은데
정말 낭만적인 곡들을 작곡했다.
1942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캘리포니아주 베벌리 힐스로 이주,
이듬해 1943년 흑색종으로 사망했다.
지금도 비벌리힐스에는 라흐마니노프의 집이 있다.
영화 '파리의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에 피아니스트 후지코 헤밍이 미국 비버리힐즈에 있는 집으로 가서 지내면 꼭 라흐마니노프의 집을 방문한다.
그 집 앞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생각을 느껴보는 그녀는
그러고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더 잘 연주하려고 한다.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을 작곡하고 발표했는데
폭망!!
엄청난 혹평에 우울증이 깊어지면서 더 이상 작곡을 하지 못했다.
지휘를 했던 글라주노프는 술에 취해서 지휘를 했다는 말이 있고,
리허설을 할 시간이 부족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어찌 되었던 혹평은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만 들었다.
너무 심한 우울증으로 니콜라이 달 박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달 박사님의 모든 지시를 따르며
음식, 수면 등 생활 전반에 걸쳐서 관리받으면서 달 박사님의 치료가 성공적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하게 되고,
이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달 박사님께 헌정했다.
그래서 나에게도 위로가 되는 걸까?
1악장 시작부터 진짜 심장을 친다.
내 마음을 뒤흔드는 것 겉은 오케스트라의 주제,
2악장에서는 나를 완전히 휘감아서 위로해 주고,
3악장에서는 나를 위로해 줘서 내가 새 힘을 얻는 것 같다.
카를 홀소의 피아노 치는 여인도 나 같을 것 같다.
콜럼비아 출신의 지휘자 오르츠코-에스트라다
남미의 흥이 한 스푼 살짝 들어서 연주가 즐겁다.
탄탄한 기본에 흥 한 스푼이 나를 기분좋게 해준다.
우리의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말모!
벌써 7년이 지난 연주지만, 너무 좋다.
멋진 연주다.
https://youtu.be/fr976_FAFs4?si=Qk3RafRc8Ptwa-t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