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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이 Mar 02. 2020

[아빠편] 아이 보청기 구입, 어떻게 했나요

홍보성 정보는, 정작 중요한 내용은 미고지


'1·3·6 원칙'이 있다. 신생아 난청 선별 검사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생후 1개월 이내 청각 선별 검사를 실시하고 △재검 판정이 나오면 생후 3개월 이내 정밀 검사를 진행하며 △확진 판정이 나오면 6개월 이내 보청기 착용과 재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아내가 남긴 기록대로,  준이는 산부인과부터 난청 판정까지 이 순서를 모두 따랐다. 생후 6개월 즈음, 우리는 2차 정밀 검사를 받았고, 난청 판정이 나오자 곧바로 보청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유소아 보청기는 대부분 귀걸이형이다.


이때 나는 사실 좀 제정신이 아니었다.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난청을 검사 오류 정도로만 여겼다. 준이가 수면 검사에서 잠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차 정밀 검사가 끝나고 보청기 상담을 받으러 갈 때까지도, 나는 내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아내는 나와 달랐다. 1차 정밀 검사 이후부터 인터넷에서 각종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보청기 종류와 성능, 믿을 만한 보청기 센터, 재활 치료, 다른 난청 아동 사례 등등. 벌써부터 갈 만한 센터를 몇 군데 정해 놓고 있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보청기'를 입력하면 다양한 글과 이미지가 나온다. 오티콘, 포낙, 스타키 등 보청기로 유명한 업체와 대표적인 상품 정보가 담겨 있다. 문제는 정보가 너무 많고 내용이 방대해 분별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러한 글을 게시하는 블로그나 사이트를, 대부분 보청기 센터가 운영해서 그런지 정보 전달보다 홍보 성격이 강했다.


가격도 문제였다. 가격을 명시하는 곳이 거의 없다! 국내법에 따르면, 보청기 판매가는 판매업체가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업체가 유통가보다 몇 배씩 마진을 남겨 판매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물론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아깝지 않은 게 부모 마음이지만, 기본 정보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곳을 온전히 신뢰하기 어려웠다(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7월부터 제품별 성능에 따른 적정 가격을 고시할 계획이다).

매일 아침은 보청기 착용과 식사로 시작한다. 

나와 아내가 고민 끝에 상담을 받으러 간 곳은 서울에 있는 ㅂ센터. 난청 아동 부모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여러 사람이 추천해 준 곳이다. 처음 방문한 날, 우리보다 훨씬 젊은 20대 선생님이 계셔서 잘못 왔나 싶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시선이 멈춘 곳이 있었다. 선생님의 귀. 선생님도 고도 난청이 있어 어릴 때부터 보청기를 착용했던 것이다.


우리는 몇 번 대화를 나눈 뒤 그 자리에서 보청기 구매를 결정했다. 커뮤니티에서 본 긍정적인 후기, 보청기를 착용하고 자란 선생님의 경험 등을 보고 이곳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준이가 처음 사용하게 된 보청기는 ㅍ사에서 나온 Sky-b라는 제품이다.


보청기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된 가장 신기했던 기능은 '채널'이다. 나는 보청기가 단순히 소리를 크게 키워 주는 마이크와 같다고 생각했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보청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기술이 집약된 제품이었다.


소리는 여러 주파수로 이뤄져 있다. 그중 20 ~ 2만 Hz를, 사람이 들을 수 있다고 해서 가청주파수라고 부른다. 채널은 이러한 주파수 음역대를 여러 구간으로 분류해, 구간별로 소리 크기를 조절하는 기능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면 상황에 따라 불필요한 소리를 걸러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나 기차를 탔을 경우 보청기가 기계가 내는 소음을 줄이고 대화에 필요한 목소리는 크게 키워 준다. 둘의 주파수 음역대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Sky-b에는 12, 16, 20채널을 지원하는 여러 모델이 있는데, 준이가 사용하는 제품은 16채널을 지원한다. 채널이 많아질수록 가격도 수십에서 백여 만원 정도가 올라간다;;; 물론 20채널이 가장 고성능이지만, 선생님은 16채널과 20채널의 차이가 사람이 구별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씀해 줘서, 우리는 한 단계 낮은 제품을 구입했다. 


참고로 채널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제조사마다 다르다. 특정 채널 수를 유지하는 대신 여러 기능을 추가하는 곳도 있어서, 채널 수만 놓고 제품 성능을 따지기 어렵다. 채널 외에도 보청기에는 밴드, 이득 등 여려 기능이 있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어르신들이 노년에 사용하는 보청기와 달리, 난청 아동들이 사용하는 보청기는 고성능이기 때문에 가격대가 대부분 수백만 원대다. 그래서 준이의 보청기는 우리집 1호 보물이다. :) 아이들은 대개 5년에 한 번씩 교체해 준다고 해서, 아내는 적금 통장을 개설했다! 

인터넷에서 

고양 이케아. 지금은 보청기 착용하고 잘 다닌다.


준이의 귀에는 항상 보청기가 걸려 있다. 처음에 이것을 착용하고 바깥에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스타필드, 롯데몰처럼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아이의 귀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괜히 신경 쓰여 걸음이 빨라지고는 했다.


아내는 부모의 역할이 이럴 때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말한다. 우리가 먼저 보청기를 부끄러워하거나 민망해하면 아이도 같은 시각으로 보게 될 거라면서, 의연해야 한다고 했다. 그걸 알면서도 잘 안 된다. 준이는 또래보다 발육이 좋고 음식도 가리지 않아 '난청만 빼면 다 좋은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못난 생각. 나는 아직 존재 그 자체로 자녀를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지금은 적응이 돼서 그런지 외출하면 있는 듯 없는 듯 여긴다. 교회나 친구 집에 가면 사람들이 묻기 전에 내가 먼저 준이의 상태를 알린다. "아이가 귀가 좀 안 좋아"라고.  


나는 가끔 준이가 언젠가 보청기를 의식하게 될 때를 생각한다. 지금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참 좋겠지만, 한참 외모에 신경 쓰는 나이가 되거나 사춘기가 찾아올 때, 거부감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친구들이 아이 상태를 놀리거나 짓궂은 장난을 해서 마음이 상하면 어떻게 하지. 지금부터 조금씩 아이를 달래고 기운을 북돋을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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