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 OFF THE MAP

by 은도

오랫동안 좋아해 온 가수가 있다. 수년 전, 마음 둘 곳 없이 힘들었던 시기에 그의 음악은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었다. ‘파도가 거센 밤, 한 줄기 빛으로 지켜줄게’라고 따스하게 속삭이던 목소리는 내게 위로였고, ‘슬픈 꿈을 꾼 듯이 눈을 뜨면 사라졌으면’ 한다던 쓸쓸한 목소리는 ‘세상에 너 혼자가 아니’라는 다독임이었다.


3월이 되었다.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낯선 땅에 도착했던 바로 그 3월, 나는 다시 한번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내게 위로를 주었던 그는 3월의 시작과 함께 ‘OFF THE MAP’이라는 새 앨범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또 한 번의 시작을 앞둔 내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다.


[036] 흔들리는 노을.jpg


지난 1년 동안 내가 느낀 제주는 이런 곳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고, 그래서 사회적 기준과 시선에서 조금 자유로운 곳. 이곳에서라면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나만의 속도로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이곳을 떠나지 않기로 한 가장 큰 이유다. 세상의 소음이 되도록 닿지 않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글을 쓰며 사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하지만 그 결정 뒤에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있었다. 바로 일을 구하는 문제였다. 육지에서 내가 하던 일은 교육 회사에서 수학 교재를 만드는 일이었다. 교육 회사는 서울에 밀집되어 있기에 제주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기란 불가능하다. 제주에서 계속 살겠다는 건 그러니까 커리어를 포기하겠다는 말과도 같다. 제주에서 일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구인 공고를 열어볼 때마다 세상의 쓴소리가 머리를 때렸다. 30대 후반이라는 나이, 8년간 조금씩이나마 애써 쌓아 올렸던 연봉, 내 꿈의 불안정성... 이 모든 조건들이 나를 자꾸만 육지로 등 떠밀었다.


우여곡절 끝에 평일 일자리를 구했다. 이로써 3월부터 평일에는 수학을 가르치는 파트 강사로, 주말에는 카페 아르바이트생으로 투잡러의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학원 첫 출근을 앞두고도 머리가 어지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길이 맞는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다가도 내 선택에 대한 의구심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머리를 스칠 때면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뜬구름을 잡겠다고 허공을 떠다니다가 갑자기 시멘트 바닥에 쿵, 떨어지는 것 같은 현실감이 느껴졌다.


[036] 길.jpg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바로 그때 내 길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새 앨범 ‘OFF THE MAP’에 그는 이런 메시지를 담았다.


‘Off the map. Onto my path.

지도 밖으로 벗어나 나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는 팬들과 소통하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앨범에 담긴 어느 수록곡에 대해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많은 분들이 꼭 세상의 압박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꿈을 조금씩 이뤄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그의 제주의 자연 속에 놓인 어느 카페에 앉아 난생처음으로 단편 소설을 쓰다가 그 메시지를 받았다. 나보다 먼저 꿈을 꾸어보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꿈을 이뤄 이제는 다른 이의 꿈을 응원하게 된 그의 말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036] 해안동 노을.jpg 제주시 해안동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의 노래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가 깊어질수록 제주의 탁 트인 하늘은 따스한 색으로 물들어 갔다.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걱정도 의구심도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다. 나는 지도 밖을 벗어나 충만한 행복을 느끼며 오래도록 나의 길을 달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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