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 한 송이를 보았다. 걸음을 멈추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는 무심히 지나쳤다. 한 발, 두 발, 세 발. 다시 멈췄다. 뒤를 돌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한 발, 두 발, 세 발. 눈앞에 떨어진 동백꽃을 조심히 집어 들었다. 반대편 손바닥으로 오목한 그릇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동백을 담았다. 집에 돌아와 작은 플라스틱 케이스에 동백을 옮겨 담았다.
더러운 길바닥에 떨어진 붉은 꽃 한 송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 건, 기어이 걸음을 돌려 그 꽃을 주워온 건, 그 꽃이 꼭 나를 닮아서였다. 꽃잎을 하나씩 떨구지 못하고 통째로 툭, 한 번에 추락하고야 마는 미련한 꽃. 그 모습이 어쩐지 기이하고 불편하면서 애잔하다.
나는 불편함을 잘 참는다.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해도, 서운하게 해도, 심지어 상처를 주어도 잘 참는다. 아니다. ‘잘’ 참는 게 아니라 그냥 참는 거겠다. 하지만 내 그릇은 그리 크지 못해서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새 감정이 쌓인다. 얼마만큼 어떻게 쌓이고 있는지도 모르다가 어느 날 불시에 폭발하듯 터져 나오면 그제야 알아챈다. 괜찮은 줄 알았지만 괜찮지 않았다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감당하지 못할 감정이었다는 것을. 이런 미련한 습관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글을 쓰며 나를 들여다보고, 돌아볼수록 마주하게 되는 것은 나의 어린 시절이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늘 그 애가 가지고 있다. 그러니 한 번은 그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진부한 문장으로 시작해 볼까.
우리 집은 늘 가난했다. 열아홉이 되도록 곰팡내 가득한 반지하 셋방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때는 그마저도 없어서 엄마와 나, 동생은 외할머니 집에 얹혀살았고, 아버지는 혼자 고시원 생활을 했다. 그렇게 1년이 흐르고 우리 네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반지하 셋방이 다시 생겼을 때, 아무리 작고 어두워도 ‘우리 집’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자존심도 세고 책임감도 강한 아버지는 가난에서 벗어나려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주변에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등쳐먹기 바쁜 사람들만 득실거리는 팍팍한 인생에 빛은 쉽게 새어들지 않았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빛이 들지 않는 반지하 방보다 어두웠던 것은 집 분위기였다. 처음엔 늘 사소한 다툼으로 시작된다. 거기에 감정이 더해지면 소리가 커지고 분위기는 삽시간에 살얼음판이 된다. 눈빛이 변하는 순간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고성이 오가기 시작하면 속으로 빌어야 한다. 고성으로 끝나기를. 하지만 내 기도는 번번이 이뤄지지 않았다.
폭풍이 지나가고 아슬아슬한 평화가 찾아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나가서 다행이다.’ 그리고 철저히 숨겨야 했다. 내가 그 숨 막히도록 잔인한 공기를 삼키고 있다는 사실을. 그걸 들키는 순간 평화에 다시 균열이 생기고 나는 그 틈으로 다시 빨려 들어갈 것 같았으므로. 그때부터 나는 ‘척’하는데 이골이 난 것 같다. 아무 일 없는 척, 다 잊은 척, 밝은 척, 상처받지 않은 척.
‘척’으로 쌓아 올린 밝음은 반은 체화되었고 반은 위선이 되었다. 나를 적당히 아는 사람들은 나를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 사랑만 받고 자란 사람, 태생이 밝은 사람’ 정도로 여길 것이다. 그 에너지가 아주 거짓인 것만은 아니다. 상처받은 만큼 사랑도 많이 받았고, 꽤 잘 잊고 제법 낙천적인 성격이기도 하니. 하지만 가끔 방 안에 틀어박혀 우울에 잠기는 내 모습은 나만 아는 비밀이다.
동백꽃을 주워온 다음 날, 꽃송이를 담은 투명케이스 바닥에 동백의 진액이 고였다. 그건 동백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였을까, 죽었다는 증거였을까. 아니면 다 내려놓고 난 후에야 흘려보낼 수 있었던 어떤 것이었을까.
얼마 전, 오래도록 쌓아둔 감정이 기어이 터졌다. 설날이었고, 계기는 언제나 그렇듯 사소한 다툼이었다. 그 익숙한 다툼을 지켜보던 나는 갑자기 견딜 수 없게 되었고, 아무 말에 감정을 덕지덕지 발라 쏟아놓은 채 제주로 도망쳐 왔다.
다시 혼자가 된 방 안에서 나는 케이스에 담긴 미련한 꽃 한 송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진액이 흐르고 가장자리가 검게 변할 때까지. 진액이 빠져나간 꽃송이가 균형을 잃고 스러지고 나서야, 나는 동백을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