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고깃집이며 술집이 죽 늘어선 번화한 길을 지나가는데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코로 들어와 뇌를 찔렀다.
‘돼지갈비 먹고 싶다.’
냄새는 삼겹살 굽는 냄새인데 왜 돼지갈비가 먹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집 앞 골목길이 온통 고깃집이면 뭐 하나. 같이 돼지갈비를 먹으러 가 줄 사람 하나 없는데. 군침만 잔뜩 흘리며 집에 돌아왔다. 그때부터 머릿속은 온통 돼지갈비였다.
오늘 퇴근길에 마트로 향했다. 돼지갈비를 사다가 직접 구워 먹기로 한 것이다. 차를 끌고 마트로 향하는 길, 시원한 비가 내렸다. 갑자기 뜨끈한 칼국수가 먹고 싶어졌다. 갈팡질팡하는 사이 마트에 도착해버렸다. 주차장에서 빈자리를 찾으며 고민했다. ‘도로 나가서 칼국수 집에 갈까?’ 그사이 빈자리를 발견하고 말았다. 일단 주차를 했다. 결국 마트에 들어섰다.
정육 코너는 마트 가장 안쪽에 있다. 과자 코너, 라면 코너, 냉동식품 코너...... 온갖 코너를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돼지갈비를 먹을까, 이제라도 나가서 칼국수를 먹을까?’ 이 치열한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였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정육 코너로 향하는 길, 회를 보면 회를 먹을까 싶고, 밀키트를 보니 부대찌개도 먹고 싶어졌다. 이제 돼지갈비가 정말 먹고 싶은 건지, 먹어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게 되었다.
한참을 방황한 끝에 정육 코너에 도착했다. ‘양념 안창살, 양념 토시살, 양념 LA갈비, 양념 소불고기... 없다...’ 한 번 더 살폈다. 역시 없다.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양념 돼지갈비는 없나요?”
“돼지갈비는 없어요.”
아뿔싸. 돼지갈비가 없다니... 이건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고민한 걸까? 가질 수 없게 되면 더 간절해지는 법이다. 나는 몇 번이나 냉장고를 샅샅이 훑은 후에야 걸음을 돌렸다.
나는 꽤 자주 이런 부질없는 고민을 하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 씻지도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오늘은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결국 집에 머문다든가, 배달앱을 켜서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담았다 빼고 담았다 뺀 뒤 결국 라면을 끓여 먹는다든가 하는. 또 이럴 때도 있다. 밥을 먹으면서 무엇을 볼까 하며 넷플릭스도 둘러보고 웨이브도 둘러보고 티빙도 둘러보다 밥을 다 먹어버리는. 나는 대체 왜 이럴까?
그런데 기이한 것은 그렇게 고민만 하며 허비하는 시간이 꽤 즐겁다는 거다. 결국엔 쓸데없는 일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머릿속이 꽉 차오른다. 그럴 때면 치열한 고뇌와 짜릿한 열정마저 느껴진다. 물론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시간을 허비한 후에는 여지없이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말이다.
정육 코너에서 미련을 거두고 돌아선 후, 속으로는 부대찌개를 점찍어 두고도 네댓 개의 음식을 후보에 올려두고 한참을 더 고민했다. 결국 부대찌개를 결제하고 나서야 모든 상황이 종료됐다. 마트에 들어선 지 한 시간이 지난 후였고, 내 손엔 부대찌개 밀키트 하나가 달랑 들려 있었다.
오늘도 한 시간 잘 놀았다. 내일은 돼지갈비를 사러 다른 마트에 들러야겠다.